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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옴 Mar 26. 2019

이렇게 출근만 하다가 죽는 게 아닐까

#6. 지난 3년의 중 - e

'Lab실 같은 회사'

 스타트업 담당자와의 면담은 기업 설명회 같은 느낌이었다. '우리 회사 이런 거 해요, 어때요 비전이 넘치죠? 연봉은 보너스 합치면 더 많이 줄게요. 하고 싶은 분야 공부하면서 편하게. 자율적으로. 근무하시면 됩니다.' 이런 면접을 할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신입인지 중고 신입인지 모를 경력의 지원자인 나를 존중해 주었다. ‘그래 내가 아직 겪지 않았던 회사였을 뿐이야, 내가 너무 찌들어서 이런 회사도 있다는 걸 까먹고 있었네’라고 생각하면서 나의 가치를 알아봐 주는 것 같았다.


‘아무리 돈을 많이 줘도, 작은 회사는 가는 게 아니야’

 중소기업 아니. 정직원 20명 남짓한 스타트업에서 제안이 와서 면담을 하고 왔다고 아빠에게 알렸을 때 돌아온 대답이었다. (참고로 아빠는 30년째 사기업 회사를 다니는 이사진 급의 직장인 대선배이다) 자율 출퇴근에 내가 하고 싶은 분야 눈치 보지 않으면서 공부도 할 수 있고, 특히나 나를 이끌어 주겠다는 부장이 굉장히 열성적으로 보였다. IT 기술적으로 나의 경력을 잘 쌓게 해 줘서, 결국 나를 대기업 경력직으로 이직하기 좋게 만들어 줄 것 같았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래서였는지, 아빠의 말에 강한 의구심을 품었다. 아빠는 그저 내가 지금 다니는 금융권이 좋으니까 남아있으라는 거겠지. 금융권의 IT가 어떤지 실상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타이틀이 중요하니까 남아있으라고 하는 거겠지. 이런 반발심으로 결국 아빠를 설득하기에 이르렀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는 이직도 안되고, 나는 회계업무가 아니라 개발을 하고 싶다는 둥, 컴퓨터 분야는 원래 1년만 경력 있어도 이직이 된다는 둥, 이렇게 연봉도 맞춰서 많이 주는 곳에서 컨텍이 올 때 가야 한다는 둥. 그렇게 한 일주일 정도 평소에 하지 않던 장문의 갠톡을 한 결과.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대로 맘대로 하라고 해서 정말 내 맘대로 이직을 했다.


“안녕하세요, 새로 들어온 직원입니다.”

 스타트업으로의 첫 출근날 이렇게 인사했던 것 같다. 출발은 좋은 것 같았다. 복잡해 보이는 프로그래밍 코드와 구조를 이리저리 파악해 가는 게 나름 어렵지만 배울 게 많다고 생각했다. 나를 이끌어 주던 부장도 잘 알려주려는 모습이 나쁘지는 않았다. 게다가 열 시 출근이라니. 8시까지 1분도 허용되지 않던 전 직장에 비해 돈도 나름 많이 받고 시간도 자율에 내가 하고 싶던 개발 분야니까 너무 좋은 생활이 될 것 같았다. 마치 내가 진짜로 컴퓨터 분야에서 뭔가를 이룰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좋았는데, 괜찮았는데.'

 출근한 지 이삼일 째, 그 부장과 함께 일하던 직원들의 사이가 업무적인 이유로 틀어졌다. 부장은 대표한테 쪼임을 당했다며 직원들을 그대로 쪼아댔고, 직원들은 인턴 중이라 보다 편하게 그만둘 수 있어서 부장한테 자신들의 입장에 대해 할 말은 하였다고 한다. 그러자 부장은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기분 상한 게 있었는지 새벽 2-3시에 단체 채팅방에 뭐라는지 모를 정체불명의 장문의 메신저들을 보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다. '자기도 뭐라도 해서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이었겠지'싶었다. 그때는 어쩌면, 나에게 불똥이 튀길 줄 모르고 방관했던 것 같다. 그러기를 2주째, 부장은 나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너는 인턴들한테 뭔가 들었다고 빨리 아는 걸 말하랬다. 도대체 뭘 원하는 건지 몰라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고, 나한테도 밤 10시가 되어서 메신저를 해댔다.


어느 날은 내가 다른 동기의 업무를 도와주는 것을 보고 자신이 시킨 일을 하지 않는다며 그 쪼그만 회사에서 언성을 높였다. 심지어는 다른 팀원들과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대표한테 나를 자르겠다고 말하겠다며 협박?을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바로 면담을 했던 담당자에게 전화를 해서 더 이상은 참을 수 없고 이런 말까지 들으면서 같이 일하기 싫다고 내가 그냥 나가서 해결된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마음에도 없는 무서운 소리를 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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