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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옴 Mar 09. 2019

이렇게 출근만 하다가 죽는 게 아닐까

#5. 지난 3년의 중 - d

‘ㅇㅇ씨 자기소개해봐.’

 새롭게 옮겨진 팀에서 팀장님이 제일 먼저 하신 말이다. 업무가 아예 바뀌었으니 신입의 자세로, 결국 다시 막내의 위치에서 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나의 노고가 사라져 버리는 듯했지만,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 그래도 오갈 곳 없던 나를 옮겨준 조직에 대한 보답으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에 어느 정도의 각오가 되어있었다.


그 부서에서는 야근도, 금융부서 직원의 말도 안 되는 일정 협박도 없었다. 야근은 길어야 30분 정도. 그 마저도 일 없이 적당히 눈치 보다가 일찍 퇴근했었다. 갑작스럽게 들어오는 일들은 시스템 상 위험도가 높았기 때문에 윗 선에서 알아서 다 커트 쳐졌다.






‘좋아 정말?’

 회계 파트로 이동된 지 2주째에 erp 프로젝트 막내로 투입되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전산회계 분야에서 경력을 잘 쌓으면 전 팀에서의 경력보다 더 가치 있겠구나 싶었다. 한편으로는 옮겨진 팀에서 내가 잘한다는 소문이 나서, 그 팀이 조금이나마 날 놓친 것을 아쉬워하길 바랬던 거 같다. 정말 열심히 일 했었으니까. 내 공백을 뼈저리게 느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방관한 점이 있었다. 보통 프로젝트란 커다란 개편을 위해 진행되는데, 그를 위해서는 기존의 시스템이 어떠했고 어떻게 변화할지를 빠르게 파악해야 했었다. 그러다 보니 회계지식이 zero 인, 기존 업무 담당자도 아니었던 나의 주 업무는 프로젝트 진행 도우미 정도였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외주직원분들의 보안관리뿐이었다. 예를 들어 출입증 신청, 보안 프린터기 연결, 보안문서 사용을 위한 매개체의 역할이었다. 아, 한두 번은 경영진들이 두세 시간씩 자신의 생각을 한껏 쏟아낸 회의록도 작성해 공유했다.




‘멍청한 인간이여,’

 생각지도 못했던 팀으로의 이동은 첫 번째 회사에서, 내가 뜻이 없는 곳에 갔을 때의 결과가 어땠는지를 상기시켜주는 계기가 되었다. 거의 한 달 동안  차/대변 원천징수 영수증 등을 보고 있으니, 내가 하고 싶은 업무가 전혀 아니라는 것을 느꼈고 ‘이 업무를 해서 내가 뭘 하고 싶은 거지’라는 노답의 구렁텅이에 빠졌다.


그러던 찰나 퇴사와 부서이동이 불확실할 때 알게 된, 학교 동기가 다니는 금융 IT 스타트 업에 넣었던 이력서 메일에 회신이 왔다. 시간이 될 때 회사에 한 번 방문해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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