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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옴 Mar 04. 2019

이렇게 출근만 하다가 죽는 게 아닐까

#4. 지난 3년의 중 - c

‘그만.’

 나의 사수가 된 셀 파트장과 나는 업무 진행 스타일과 성향이 매우 달랐다. 사적인 교류가 전혀 없었을뿐더러 업무 공유도 잘 되지 않았고, 한 사람의 공석으로 인해 나의 이슈량(업무량)은 날이 갈수록 늘어났다. 전화 한 통하면, 메신저 두 개가 와 있었고, 화장실이라도 갔다 오면 눈치 없는 메신저 창은 깜박거리며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하루는 출근하자마자 울리는 전화 소리에 아침부터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었다.


'직급이 무슨 상관이야?'

 금융서비스의 IT부서 특성상(?) 전화로 갑질 당하기가 일수였고, 사수나 팀장 그 누구도 이런 갑질에서 나를 보호해주지 않았다. 말도 안 되는 일정을 들이대는 직원에게 대신 한 마디 해줄 마음조차 없어 보였다. 처음에는 '내가 사원이니까. 어쩔 수 없지.'라는 마인드로 일을 받았지만 이런 일이 반복될수록 '내가 왜? 대리고 과장이면 다야?'라는 반박심으로 언성이 높아지는 날이 많아졌었다.


그런데. 한참을 쏟아내면 홀가분 하기는커녕 내 속이 뒤집어기만 하여 점점 나에게 지쳐갔다. 내가 맡은 서비스에 활용되는 기술이 재미있긴 했지만 대화가 단절된 사수와 감정 소모, 눈치 야근이 많은 곳에서 점점 몸도 마음도 피폐해졌다.






내 나름의 기준은 1년이었다.’

 그저 나약해서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버틸 만큼 버텼다는 것을 인정받고 싶어 세웠던 기준. 부모님이 말했던 ‘사회는 원래 그런 거야. 너만 그런 줄 아니?’라는 말에 대한 반항과 오기였다. 내가 나약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더 버티면서 증명하고 싶었고 나에게는 그 기준이 1년이었다.


1년이 된 12월에 나는 드디어 팀장에게 부서를 옮겨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그 회사는 부서 간 이동이 자유롭지 않던, 소위 말하는 꼰대 회사 같은 곳이라 내 요구는 사업부 총괄자 선에서 거절당했고 나는 각오했던 대로 사직서를 쓰게 되었다.


'(띠리리링) 어, 내 방으로 와.'

 퇴사 전 날, 오후에 내선번호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그제야 퇴직서가 전무한테까지 간 모양이다. 그렇게 전무 방으로 들어가서 면담을 하였고, 결국 나는 이 팀에서 버틸 수 없을 것이며 팀 이동을 시켜달라고. 생각해보면 떼를 쓴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내년에 있을 전무의 승진을 위해 부서 이동을 시켜주면 퇴사를 안 하겠다고 반협박을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전무는 내일까지 고민을 해본다고 하여, 우선 알겠다고 하였다. 다음날 아침 8시 반쯤, 다시 전화가 왔고 또다시 면담을 한 끝에, 퇴사의 문턱에서 결국 부서 이동에 성공했다. 드디어 버티고 버틴 보람으로 이렇게 팀 이동을 하는구나 싶었다. 두 번째 퇴사는 아빠도 직장인 대선배로서 엄청나게 뜯어말렸다. 그래서 부서를 옮겨 준다는 이야기를 들은 날 부모님은 엄청 기뻐했었다. 물론 나도 이제 걸을 꽃길만 생각하며 엄청 기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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