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님이랑 웬수로 지내서 뭐해!
갑작스러운 코로나 급증자 확산으로 전국이 비상이다.
마스크는 이제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고, 사람들이 많이 모였던 공간들이 텅 비어 간다.
생계에 큰 타격을 받는 이들은 절규의 탄성을, 어린 영유아를 키우는 가족들은 집콕 생활로, 모든 이들이 오랜 기간 이어져온 갑갑함과 답답함으로 한숨이 더욱 커졌다.
"코로나 때문에 장사도 안되고, 죽겄어."
"사람들이 돌아다녀도 문제고, 안 다녀도 문제고!"
"손자는 어린이집도 못 가고, 언제까지 이럴랑가."
"이놈의 코로나 끝나야 하는데, 에휴!!"
코로나가 종식되었으면 하는 바램은 누구나 같을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라는 신종 바이러스는 어떻게 생겼는지 알길이 없고,
개인도, 정부도, 지역도 최선의 방역을 하고 있지만 새는 구멍을 모두 메꿀 수 없는 노릇이다.
이런 시대에 마음까지 코로나에 전염된다면 우리는 찡그린 채 일상을 보낼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예민한 시대가 되었다.
서로가 적정거리를 유지한 채 그렇게 개인생활을 이어나간다.
이것도 나름 적응하면서 지내고 있는데, 코로나 확진자는 늘어만가고, 이 적정거리도 맘 놓고 있을 수가 없다.
더운 여름 마스크로 답답한 호흡을 하며 얼굴은 일그러지고, 잠재적 두려움이 마음에 쌓여 얼굴은 어두워진다.
백발이 성성한 이웃 할머니는 코로나로 푸념을 하는 사람들에게 가벼운 미소로 툭! 한 문장을 내려놓는다.
하늘님이랑 웬수로 지내서 뭐해~
그녀의 나이는 80세가 훌쩍 넘었다. 그녀의 깊게 패인 주름들이 그동안 통과한 세월의 풍파를 말해준다.
그녀는 두려움으로 쏟아내는 말들에 경험으로 얻은 문장 하나를 툭! 내려놓는다.
'코로나'를 하늘님의 뜻이라 말한다. 하늘님이라 하여 종교적인 색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우리가 어찌 할 수 없는 현상을 '하늘님'이라 부른다.
웬수로 지내면 힘든 것은 바로 '나'이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라면 푸념하고 투정하기보다는
받아들이는 자세를 취하면 세상살이가 조금은 편하지 않겠냐라는 그녀의 말.
그럼에도 여전히 툴툴거리는 목소리가 들린다.
오랜동안 지친 마음이 까칠한 말이 되어 서로를 찌르기도 한다.
태평한 소리라고 나무라기도 한다.
가만히 손 놓고 있지 말고, 뭐라도 더 노력해서 하루빨리 코로나를 물리쳐보자는 '전사'의 마음을 요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린 이미 '전사'가 되어서 싸워왔다. 가만히 손 놓은 적은 없었다.
긴장하며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느라 지친 자신의 마음을 돌볼 여력도 없었다.
오늘 하루만큼은 그녀의 한 문장을 천천히 곱씹으면 어떨까.
"하늘님이랑 웬수로 지내서 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