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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시 Sep 24. 2020

어머니와 외식

좋아하는 음식이 뭐야? 그 대답이 그리 어려운 것인 줄...

기억이 시작되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어머니는 늘 '나'를 존중했다. 기분이 조금만 안 좋은 내색이 비치면 "뭐 먹고 싶어? 좋아하는 김치찌개 해줄까?" 라며 순식간에 보글보글 끓여진 냄비가 상에 올라왔다. 칼칼하고 붉은 빛깔의 김치찌개 국물 한 숟가락이면 어떤 나쁜 일도 녹아내려갔다. 어머니가 나를 치유해주었던 많은 방법 중 단연 으뜸은 '음식'이리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나도 조금은 어머니의 입장이 되어 그녀를 바라본다. 아이를 위한다는 마음 때문에 자신의 음식취향 따위는 고이고이 접어 어딘가로 숨겨놓았다. 누가 찾을세라 꼭 꼭 숨겨두어 웬만해선 찾을 수가 없다. 어머니는 위장이 약했다. 소화력이 좋지 않아 한약을 챙겨드셨던 모습이 떠오른다. 한약 때문이었는지, 소화력 때문이었는지 밀가루 음식은 싫다고 말씀하셨다. 가끔 가족들이 짜장면을 시켜 먹으면 어머니는 소화가 안된다며 집에 있는 밥솥에서 밥 한 숟가락 떠서 물에 말아 김치랑 드시곤 했다.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라는 GOD의 노랫말 가사처럼. 그때의 기억으로 어머니는 짜장면을 못 먹는 사람으로 철석같이 믿었다. 




결혼을 하고 어머니와 멀리 떨어져 살게 되었다. 그동안 어머니는 몰라보게 살이 여위었다. 허리가 아파서 약을 먹고 있었는데, 약의 후유증으로 입맛이 사라진 것이다. 도통 먹고 싶은 것이 없으니, 먹는 게 곤욕이었고 잘 먹히지도 않았다. 어떤 음식도 넘길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어머니 때문에 옆에 있는 아버지도 끼니를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아버지라도 살리자는 생각으로 집 가까운 중국집엘 갔다. 아버지는 밀가루 음식을 좋아했다. 연세에 비해 소화력도 건장하셔서 더욱 즐기셨다. 짜장면 집은 맛으로 유명한 맛집이었다. 어머니도 함께했다. 짜장면을 사람 수대로 시키고, 탕수육도 하나 주문했다. 짜장면은 쫄깃하고 구수한 옛날식 맛이어서 감칠맛이 났다. 어느덧 한 그릇을 비우게 되는 맛이었다. 아버지도 오래간만에 딸이 사주는 짜장면을 기분 좋게 드시고, 배가 불러도 탕수육까지 클리어했다. 어머니는?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은 것이 아니었다. 그 당시엔 소화력이 좋지 않고 못 드셨을 뿐, 어머니는 짜장면을 좋아하셨다. 짜장면 몇 젓가락 입안으로 넣으면서 도망갔던 입맛이 돌아왔다. 어머니는 자신의 모습이 낯선지  "오랜만에 먹으니까, 맛있네"라고 짜장면 한 그릇을 순식간에 비우며 수줍게 말씀하신다. 


짜장면 그릇을 비우면서 내 마음은 철렁했다. 어머니는 평생을 자식을 위해, 남편을 위해 살아오셨다. 그 오랜 시간 동안 자식의 입맛에 맞추어, 남편의 입맛에 맞추어 음식을 만들었다. 그 음식이 어머니의 소화력과 입맛과는 맞지 않았음에도 꾸준히 남을 위한 음식을 차렸다. 그러면서 음식이 아닌 어머니의 소화력과 입맛을 탓했다. 어머니의 음식취향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날 이후로 짜장면이 아닌, 제대로 된(?) 음식을 사주고 싶었다. 나름의 장녀 노릇 좀 해볼 요량이었다. 특별한 음식으로 어머니의 잃어버린 입맛을 제대로 소환해보고 싶은 욕심이었다.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먹고 싶은 거 미리 생각해둬요. 내가 맛있는 거 쏠 테니까. 아무거나,라고 말하지 말고!" 이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어머니는 '장어'가 먹고 싶다고 말했다. 그 대답을 듣고서 기대되는 마음으로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나는 장어집으로 향했다. 이왕 먹는 거, 잘 요리하는 곳을 찾았다. 주문을 했고, 음식이 나왔다. 아버지는 역시나 흐뭇한 미소로 장어를 즐겼다. 어머니는? 어땠을까?


어머니는 몇 점 드시다가 이내 젓가락을 놓으셨다. 직감적으로 눈치를 챘다. '어머니는 자신이 아닌, 아버지가 좋아하는 음식을 선택했다.' 그 사실을 확인하고는 화가 났다. 왜 어머니는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도 제대로 말 못 하냐고 따지고 싶었다. 식당에선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버지라도 맛있게 드셔야 했다.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가 밖으로 나간 틈을 타서 그제야 따져 물었다. "어머니가 좋아하는 음식 없어? 장어는 아버지가 좋아하는 음식이잖아." 어머니는 "별로 없어, 집에서 먹는 게 가장 맛있지." 더 이상의 대화는 의미가 없었다. 어머니의 말이 정답이었다. 음식도 먹어본 사람이 먹고 싶은 것이다. 그동안, 몇십 년을 지내면서 특별한 음식을 먹어볼 기회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가끔 사회적인 관계 속에서 먹는 회식자리의 음식이란 대부분 돼지고기나 오리고기가 전부였다. 


어머니를 내가 살고 있는 집으로 초대한 적이 있다. 어머니의 색다른 취향은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을 이미 알았기에 여러 종류의 음식을 준비했다. 결론적으로 어머니는 육고기보다는 해산물, 특히 살아있는 회를 좋아했다. 회가 어머니의 음식취향이었다. 


종종 어머니를 찾아가 그동안의 수고를 위로할 겸, 아픈 몸을 위로할 겸, 잃어버린 입맛을 살릴 겸, 외식을 하자고 꼬실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좋아하는 음식을 당당히 말하지 않을 것이다. 딸이 좋아하는 음식, 아버지가 좋아하는 음식을 말씀하실게 뻔하다. 다그친다 해도, 어머니는 그것이 자신의 음식취향이라 확고하게 믿은 탓에 똑같은 대답을 되풀이한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어머니를 다그쳤던 나의 철없음을 이제야 돌아본다. 시대가 변했다고, 여자들도 아니 결혼한 여자들도 자신의 주장을 확실히 펼쳐도 된다고 투정한다. 어머니는 나의 이런 주장들을 들으며 웃는다.  "그래, 너는 그렇게 살아. 그래야지~"라며 어머니는 그렇게 살지 못해 가슴에 한이 맺혔지만, 딸은 그리 살라고 말씀하신다. 어머니는 더 이상 다른 삶은 없다고 체념한다. 


마흔이 지나 중년을 넘어서니, 어머니의 음식취향이 없다고 다그칠 게 아니라 인정해주는 것이 필요함을 깨닫는다. 자식을 위해, 남편을 위해 사느라 애쓰셨느냐고. 몸에 병이 생길 때까지 자신을 소외시키고 사느라 얼마나 아팠냐고. 어머니의 희생이 가족의 평화를 위해 너무 당연한 일상이 되어 투정 부려 미안하다고. 


당장 바뀌지는 않겠지만, 지금이라도 어머니의 음식취향을 찾기 위해 조금씩 도전해보려 한다. 그저 조용히  손 꼭 붙잡고 가면 된다. '맛있는 어머니의 음식을 찾아서~' 오랜만에 꼭 잡은 어머니의 손이 차갑고, 딱딱하다. 할머니들의 살이 없는 겉가죽뿐인 손. 어머니는 내 손을 꼭~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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