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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시 Nov 19. 2020

힘 빼기의 기술

드디어 자유형 뺑뺑이를 돌다

수영을 배우면서 강사에게 제일 많이 듣는 말 중에 하나가 "힘을 빼세요!"이다. 초급반 시절에는 이 말을 귀에  딱지가 생길 정도로 들었다. 그만큼 잘 안된다는 소리. 도대체 힘을 뺀다는 게 뭔지, 어떻게 해야 힘을 뺄 수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초급반이 되어 제일 처음 배우는 영법이 '자유형'이다. 말이 자유형이지, 자유롭게 맘대로 해도 되는 영법은 아니다. 팔을 하나씩 휘저으며 추진력을 내는 '크롤'영법이라 표현하는 것이 적절하다. 어쨌든 자유형을 가까스로 배우고, 배영, 평영, 접영을 순서대로 배워나간다. 그 사이 자유형을 하면서 25m 레일을 몇 바퀴를 돌 수 있는가가 그 사람의 수영 실력이 된다.


초급반의 눈에는 자유형을 쉬지 않고 뺑뺑이 도는 사람이 제일 부럽다. 힘 하나 들이지 않고 물을 가르는 저 늠름한 자태에 수업 중에도 '멍'을 때리곤 한다. 그리곤 마음속으로 '나도 언젠가 저렇게 할 수 있겠지'라는 희망 하나를 새기며 쉭~ 쉭~ 거친 호흡으로 한 바퀴를 마치고 숨을 헐떡인다.


언제쯤이면 저렇게 힘을 뺄 수 있을까! 

도대체 어떻게 해야 저렇게 힘을 뺄 수 있을까?


수영 강습을 시작한 지 5개월이 지나 초급반에서 중급반으로 월반했다. 이제 몸풀기로 자유형 4바퀴를 쉬지 않고, 뺑뺑이로 돌아야 한다. 25m 레일을 2바퀴만 돌아도 숨이 차서 죽을 것만 같다. 그대로 벽에 붙어 다른 강습생이 피해받지 않도록 착 달라붙어 있다. 수영 강사는 죽을 것 같을 때, 서지 말고 다시 돌아가라는데... 그게 말이 쉽지, 몸은 이미 돌아갈 힘을 낼 수가 없다. 월반을 하고, 수영이 예전만큼 재밌기보다 뺑뺑이 때문에 두려워졌다. 결국 한 달가량 강습을 받다가 그만두었다.


'쉼'이 필요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낯선 환경에 적응하느라 마음과 몸이 지쳤다. 지친 몸은 뺑뺑이를 감당할 수 없었다. 몸무게가 7kg 이상 빠졌다. 수영으로 빠진 것은 아니다. 수영은 거들었을 뿐, 글 쓰는 일을 시작하며 신체는 완전히 다르게 바뀌고 있었다. 감기 몸살이 났고, 약을 먹지 않아 몸살을 그대로 앓아야 했다. 그렇게 수영 강습은 일시정지 상태가 되었다.


강습은 멈췄지만 수영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더욱 짙어졌다. 강습이 아닌 자유로운 시간에 찾아가 원하는 만큼 할 수 있는 자유 수영을 선택했다. 체력이 되는 만큼만 수영을 했다. 죽을 것 같은 그 순간을 극복하기보다는 죽을 것 같은 느낌이 들기 직전까지만 팔을 휘저었다. 몸살이 완전히 낫지 않아 머리를 움직일 때마다 골이 흔들렸다. 몸은 힘을 줄래야 줄 수가 없었다. 자연스럽게 힘이 빠졌다. 수영이 이전보다 편했다. 자유형을 할 때 어깨에 들어갔던 힘이 빠지고, 배영 할 때 손에 잔뜩 들어갔던 힘이 빠지면서 팔도 훨씬 자연스러워졌다.


감기몸살을 앓으면서 몸이 알아서 힘을 뺐다. '이런 게 힘 빼는 수영이구나'하며 아픈 와중에도 마음속에서는 조용한 환호성이 울렸다. 힘이 빠진 채로 자유형을 하다 보니 '어! 호흡이 가쁘지 않네.' 죽을 것 같던 호흡이 사라지고, 물 밖에서 숨 쉬듯 자유형 호흡이 편안해졌다. 호흡이 편안해지니 나도 모르게 뺑뺑이를 돌고 있는 게 아닌가! 몇 바퀴를 돌았는지도 모른 채 팔을 뻗어 물을 잡았다.


호흡이 잘 안되어 헐떡 거릴 때는 머릿속에서 '언제 끝인 거야?' 하며 조바심을 냈다면 호흡이 편안해진 후에는 '벌써 끝이네'라고 머릿속에서 말하고 있었다. 자유형 한 바퀴가 금세 돌아왔고, 그렇게 두려웠던 자유형 뺑뺑이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렸다.


애씀도, 

노력도 없이 어느 순간


자유형 뺑뺑이를 하기 위해 그렇게 애쓰고 노력할 때는 '좌절'만 남았다. 수영 강습을 포기했고, 나의 저질체력과 나이 듦을 탓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노력'만이 답이라고 믿었다. 너무 애쓰고 노력하느라 제일 중요한 '힘 빼기'가 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이제 뒤돌아가려고 마음먹을 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주저앉고 싶을 때. 기회는 상상치도 못한 방법으로 온다. 이제는 더 이상 안 되겠다며 몸은 아파했다. 그 '아픔'이 힘 빼는 기술을 알려주는 스승이었다니.


수영은 나에게 일상의 소중한 한 페이지다. 하루라도 수영을 하지 않으면 몸이 근질근질하다. 하루라도 수영을 하지 않으면 퇴보할 것 같은 걱정이 앞선다. 그런 조바심 때문에 오히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불상사를 경험하곤 한다. 애쓰다가도 노력하다가도 한 번쯤은 아무 이유 없이 '공백'을 만들어줘도 좋을 것 같다. 그 사이 '아픔'이 찾아올 수도 있고, 그동안 보지 못했던 다른 해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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