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바로 이 맛이야'
9살 둘째 아들은 가끔 음식을 손으로 먹는다.
비빔면을 젓가락이 아닌, 손으로 '후루룩~' 집어 먹는다.
부침개도 손으로 뜯어먹는다.
그것을 바라보는 엄마로서는 '손도 지저분한데, 찝찝하네', '젓가락 있는데, 귀찮다고 손을 쓰네'
아이의 게으름을 속으로만 탓했다.
다만, 손으로 먹는 아이의 표정이 '행복해', '맛있어'라고 말하고 있어서 '잔소리'를 할 수 없었다.
오랜만에 김치를 듬뿍 넣은 부침개를 부쳤다.
아이들은 제 몫의 젓가락 한쌍을 들고 식탁에 앉았다.
초등학교 2학년, 6학년 아들과 남편은 게걸스럽게 젓가락으로 부침개를 뜯었다.
쉴 새 없이 가스렌지 앞에서 불 조절을 해가며 부침개 반죽을 부어야 했다.
기름진 냄새에 나도 모르게 젓가락을 챙길 새도 없이 손으로 부침개를 크게 찢어 입속으로 넣었다.
'우왕~ 너무 맛있는데...'
고소하고 기름진 김치전의 맛이 색다르게 다가와서 좀 놀랐다.
내가 반죽을 잘해서, 맛있는 줄 알았다.
아이들이 배를 채우고 빠져나간 자리에 그제야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여유 있게 부침개를 젓가락으로 뜯어먹었다.
'엥! 그 맛이 아닌데.'
똑같은 반죽이고 분명 내가 부쳤는데, 맛이 같지 않았다.
배가 불러 그런 거겠지, 생각하고 젓가락을 놨다.
이튿날 집에 홀로 있는 시간, 배가 고파 어제 남은 부침개 반죽으로 또 부쳤다.
의자에 앉아 젓가락이 있지만 손으로 부침개를 찢어 먹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혼자 있으니, 체면을 따지지 않아도 되고, 누가 뭐라 할 사람도 없다.
그 순간, 나의 본능이 살아난 것일까!
그렇게 손으로 찢은 부침개를 한입 가득 입에 물고 씹는다.
'맞아, 이 맛이야!' '바로 이거야!'
우리는 언제부터 문명인이 되어 위생을 강조하고, 체면을 강조했을까.
젓가락이 아닌 손으로 먹는 음식은 원시시대부터 내려져온 아주 자연스러운 음식 섭취방법이었다.
지금은 그때처럼 손이 비위생적인 것도 아니고, 오히려 공용으로 사용하는 젓가락이 찝찝하다면 더 찝찝할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린 이제 너무나 당연하게, 의심도 없이 젓가락을 쥐고 음식을 먹는다.
음식을 손으로 먹는 그 맛은 모른 채.
손으로 찢어 먹는 부침개의 맛이 이런 것이었음을, 아주 오랜 시간 모른 채 살아왔다.
20대에 떠났던 인도에서의 여행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곳에선 여전히 손으로 음식을 먹는 문화가 일반적이다.
오른손으로 음식을 먹고, 왼손으로 뒤처리(똥꼬 닦기)를 한다.
한국사람의 입장에선 미개한 인간이며 비문명인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경험하지 않은 외부인의 섣부른 판단일 뿐,
그 행위의 자유와 나름의 법칙을 이해한다면 그들의 문화가 부럽기까지 하다.
실제로 뒷일을 물로 닦으면 훨씬 깨끗하고, 민감한 똥꼬가 휴지보다 부드럽게 닦여 다양한 염증을 예방할 수 있다.
손으로 밥을 쥐어 먹는 인도인들은 맛나게 카레를 먹는다.
그때의 나는 그저 인도의 카레가 맛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똑같은 카레를 숟가락이나 젓가락을 사용해도 똑같은 맛일까!
절대 아니다.
절대 그렇지 않았다.
맛은 보이지 않는 다양한 요인의 결과인데, 그중 '손'이 작용하는 힘은 생각보다 컸다.
헬스 유튜버이자 유명한 방송인인 양치승의 '걸뱅이'스러운 먹성이 신기하게도 맛스럽게 보이는 이유는 그저 그가 복스럽게 먹기 때문이 아닐 수 있다.
그는 본능적으로 알 뿐이다.
손으로 먹는 음식의 맛이 얼마나 맛있는지,
그 맛을 체면 때문에 포기할 이유가 없음을 그는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