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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시 Feb 25. 2021

특별한 기회만을 기다렸다

눈 맞춤의 순간, 그 순간이 가장 특별했음을 

말보다 더 강력하고, 더 빠르고, 더 순간적인 소통방법이 있다. 말이나 글은 '눈빛'에 비하면 하수이다. 눈빛에는 언어 이전과 이후가 있고, 언어를 벗어난 느낌, 에너지가 있다. 1초도 안 되는 짧은 찰나에도 진심은 눈빛을 통해 전달된다. 


그동안 특별한 만남을 기대하고, 상상하고, 기다렸다. 매일을 이러한 기다림으로 시간을 보냈다. 특별한 기회가 나에게 향하고 있음을 믿으면서 기다리고 기다린다. 그 특별한 기회라는 것은 무얼까? 나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 나에게 일거리를 건네는 사람,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사람 이런 식으로 무언가 나에게 주는 사람의 이미지를 만들어놓고, 그 이미지를 외부에서 찾기 위해 두리번거렸다. 두리번거릴수록 돌아오는 것은 빈 마음뿐이었다. 돌아오는 실망감, 그리고 내일에 대한 또 다른 희망을 품는 것이 전부였다.


매일 향하는 그곳은 나에게 진부한 일상이 되었고, 오늘은 이곳에서 벗어나기를 꿈꾸며 다른 곳을 상상했다. 그러다가 이내 또다시 이곳으로 향한다. 갈 곳이 없다. 매일 똑같은 사람과 마주치고, 똑같은 말만 주고받았다. 그렇게 1년을 보냈는데, 오늘에서야 알았다.


그의 눈빛을 바라보자, 그동안 애써 외면했던 '나'를 보았다. 그의 눈빛은 언어로 표현되지 않은 색깔로 치자면 분홍빛과 노란빛과 주황빛을 섞은 듯 따스하면서도 기분 좋았다. 1초도 안 되는 찰나에 느껴졌다. 나의 눈빛은 그를 향하지 못한 채 급하게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내가 찾던 그 특별한 기회가 바로 '여기'있음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누군가와 교감하고 싶은 마음, 누군가와 연결된 느낌, 누군가와 진심으로 나누고 싶은 마음을 그토록 찾아 헤맸다. 영혼의 친구가 있을 거라며 그 친구는 꽤나 멋진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날 것이라 기대했다.


공상과 환상이 바로 지금 '여기' 있음을 보지 못하게 했다. 그의 눈빛으로 알았다. 내가 보지 못한 기회들이 사실은 늘 나를 향하고 있었음을. 내가 눈을 맞추고, 바라봐주기를 원했다는 것을. 거창한 말, 그럴듯한 선물, 멋들어진 커리어로 다가가는 것이 아닌, 그 모든 껍데기를 내려놓고 오로지 '존재'만을 향하는 그 사랑스러운 눈빛.


뭐가 그리 바빴던가! 뭐가 그리 중요했던가! 네가 지금 이루려고 하는 것이 사실은, 너무나 보잘것없는 일이란 걸 나는 안다. 그럼에도 진지하게, 중요하게, 열심히 임한다. 무엇을 위한 것인 줄도 모른 채. 




당신에게 고백한다. 미안해요. 당신에게 상처 받은 '나'만 보였어요. 나로 인해 당신이 상처 받았을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어요. 입장을 바꿔보니, 상처를 먼저 준 것은 바로 '나'였어요. 물론, 일부러 그런 건 아닐 테지만 내 행동이 당신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음을 충분히 인정해요. 이미 지나간 시간은 돌이킬 수 없어요. 그렇게 또 배우는 과정이 되었는걸요.


대신, 이제부터에요. 당신의 눈빛을 피하고 있었음을 인정합니다. '나'라는 이미지 때문에 애써 모른 척, 연기했던 점 인정합니다. 자신이 없었습니다. 내 마음에 대한 확신, 단지 내가 꾸며낸 이야기라 여겼기에 현실의 상황은 애써 모른 척했어요. 그럴 수도 있겠죠. 그러나 그 무엇이든 우리는 서로의 눈빛을 피할 이유는 없습니다. 존재가 존재에게 건네는 가장 확실한 '눈빛'은 어떤 이야기나 어떤 해석이 필요 없습니다. 그저, 의식한 채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봅니다. 


인사할 때, 그 사람의 눈빛을 볼 수 있도록 1초의 여유를 갖게 하소서. 바쁜 길을 나설 때에도 그 어느 것도 그 사람과 마주치는 눈빛보다 더 바쁜 일은 없음을 알아차릴 수 있도록 해주소서. 지금 '여기' 있는 모든 이들이 거대한 우주에서 펼쳐지는 아주 특별한 기회임을 알아채게 하소서. 그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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