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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시 Mar 14. 2022

결혼을 하기로 했다

 연차였다. 텅 빈 하루의 시간이 오롯이 나의 것이었다. 날씨가 쾌청한 날이었다면 옥탑방 문을 열고 바라다 보이는 아차산으로 향했을 것이다. 딱히 정상까지 오르지 않아도 산책 삼아 다녀와도 좋은 곳이다. 하지만 그날의 하늘은 온통 잿빛으로 칠해놓은 듯 꾸물꾸물했다. 집 근처 분식집에서 떡볶이 세트로 점심을 먹고, 집으로 돌아와 이불을 폈다. 날씨 탓을 해보자면 해가 숨어 아무리 찾아봐도 찾아지지 않을 그런 날에는 낮잠이 제격이다. 얼마나 잠들지 모르지만, 이후에 딱히 일정이 있는 것도 아니다. 

 뱃속은 적당히 차오르고, 몸의 기운은 적당히 다운되고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진다. 이대로 낮잠에 빠진다. 여기까지는 괜찮다. 얼마나 잠이 들었던 걸까. 정신은 깨어나는데 몸이 따라주질 않는다. 정신과 몸이 하나가 아니다. 정신이 아직 꿈속을 헤매고 있다. 명확해지고 있다고 느낀 건 착각인지도 모른다. 키가 크고 덩치가 큰 남자 여럿이 나를 에워싸고 있다. 위협하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제각기 자기 할 일을 하지만 나는 이미 공포감을 느끼고 있다. 그 자리를 피해 달아나야겠다고 맘은 먹지만 몸이 꼼짝도 하지 않는다. 발바닥은 바닥에 달라붙어 떼어지지 않는다. 발바닥에 강력한 본드가 붙여져 있는 게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렇게 한 발자국도 떨어지지 않을 리 없다. 소리를 내면 남자들이 나를 쳐다볼까 봐 공포에 질린 표정을 안으로만 삼킨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한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이 모든 것이 꿈이란 걸 알아차렸다. ‘이건 꿈이야!’ 이 공포감도 꿈만 깨면 사라질거야. 깨어나기만 하면 된다. 목에 힘을 주어 있는 힘껏 소리 내보지만 공간에 퍼지는 건 무거운 침묵이다. 어디서 본 건 있어서 팔뚝을 한 움큼 손가락으로 잡아서 비틀어본다. 피부의 겉면을 최대한 얇게 잡아서 꼬집는다. 비명이 나오면서 깨어나길 기대한다. 피부에서는 아무런 통증이 느껴지질 않는다. 아무 감각도 없는 몸은 내가 아니다. 깊이 침잠한 채 아무런 요동이 없다. 별 수 없다, 라는 체념이 들어선다. 나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다는 그 무력감은 순식간에 생의 의지마저 꺾게 만든다. 이 시간에 나를 찾아올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남자 친구가 있지만 평일에, 그것도 한낮에 찾아올 가능성은 없다. 이대로 잠들어 버린다면, 나는 죽는 것인가. 다시 깨어나지 못한다면, 나는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

 죽음에 초연하지 못하다. 그러기엔 스물아홉의 인생이 억울하다. 엄마의 말마따나 아직 꽃도 피워보지 못한 인생인 것이다. 엄마는 여자인 내가 20대가 되어 대학에 들어가도 치마 한번 입지 않으며 꾸밈에 관심을 보이지 않자, “너는 언제 꽃을 피울래?”라며 농담 삼아 좀 꾸미고 다니라고 꾸준히 잔소리를 하던 차였다. 아직 꽃다운 꽃을 피우지 못해서 아쉽지는 않았다. 그보다 인생의 허무함이 더 컸다. ‘이게 인생이지’라고 말할 수 있는 나의 역사가 없었다. 공기 중에 떠다니는 미세한 먼지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하찮게만 느껴지던 내 삶에 그 순간, 얼마간의 무게가 실렸다.

 정신과 몸의 분리가 몇 번 계속되자, 꿈속에서 깨어나지 못할 수 있을 거란 두려움은 내 안에 내장되었다. 더 이상 혼자서는 안돼, 라고 결론짓자 내 인생 리스트에서 지웠던 ‘결혼’이란 단어를 새삼스럽게 적어 넣었다. 그것도 상위에 또렷하게 정자로 써 내려갔다. 결혼 말고도 친구와 동거하는 방법도 있었겠지만, 내 의식에는 다른 것은 없었다. 오로지 ‘결혼’ 이 두 글자가 선명하게 박혔다.

 결혼에 필요한 돈도 없고, 집도 없었지만 6년 동안 사귄 남자 친구 현준이 있었다. 나보다 두 살 아래로 대학을 졸업해서 인터넷 언론사 기자로 취업했다. 말이 좋아 취업이지만 수습생 신분이었다. 70만 원의 급여로 서울에서 방 한 칸 얻을 수 없어 사무실에서 기거하는 중이었다. 수중에 돈이 모이기는커녕 4년 동안 대학을 다니기 위해 빌렸던 학자금 대출이 눈덩이처럼 불어 있었다. 나에게는 현금으로 이 천만 원, 그리고 월세지만 나만의 보금자리 서울의 옥탑방이 있었다. 매달 정기적인 월급이 나오는 직장도 있었다. 신영이는 현준이에게 ‘결혼하자’라며 다급한 목소리를 숨기지 못한 채 뱉어냈다. 

 “결혼?” 현준이는 다소 놀라는 듯했다.

 “왜 갑자기?” 현준이는 이 상황이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아 신영에게 이유를 따져 물었다. 

 신영이는 그날의 낮잠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없었다. 있는 그대로 이야기해봤자 웃고 넘어갈 게 뻔하다. “그게 뭐야~”라며 대수롭지 않은 듯 넘길 것이다. 신영은 현준이 이해할만한 그럴듯한 이유를 재빠르게 찾았다. 

 “내 나이 벌써 스물아홉이야. 지금 아니면 애를 낳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어.” 현준이는 신영이의 나름의 이유 있는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두 살 연상의 여자 친구가 나이 들어가고 있음을 그제야  납득하는 눈치였다. 현준이는 가진 게 아무것도 없다며 자신 없어하는 표정을 했다. 신영이는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또한 진심이었다. 죽음이라는 문턱을 넘을 수만 있다면 그 무엇이 중요하랴 싶었다. 혼자만 아니면 된다. 진심이 통했는지, 현준이는 신영이의 마음을 받아들였고 일사천리로 결혼식을 준비했다. 

 간소하게 결혼식을 준비하고, 지인의 재능을 최대한 활용해서 들어가는 돈을 줄였다. 신혼여행은 항공권 마일리지를 사용해서 제주도 왕복 티켓을 한 푼도 들이지 않고 끊을 수 있었다. 돈 없이도 결혼식은 충분히 치를 수 있었다. 방법은 많았고, 그중에 가장 맘에 드는 방식을 선택했다. 

 가을의 볕 좋은 일요일, 대학교 교정에서 신영이와 현준이는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전통한복을 입은 채 결혼식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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