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달팽이는 느릴까
한바탕 비가 쏟아졌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하늘이 개였다. 희뿌연 구름이 걷힌 자리는 그대로 푸르름이 자리한다. 곧이어 햇볕이 사방으로 뿌려져 발을 딛는 바닥 곳곳에까지 이른다. 바짝 바짝 말라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뽀얗고 강렬한 햇살. 반팔 티셔츠를 입고 살갗 그대로 노출된 팔은 햇볕이 닿는 순간, 따갑다. 얼른 시원한 공기 속으로 침투하기 위해 가방을 메고 가까이 있는 카페로 돌진한다. 휴~ 난 살았다.
그래, 난 아직 살아남았다. 그닥 어렵지 않게 햇볕을 피했다. 햇볕을 피하지 못한 놈들이 있다. 피하지 않은 건지, 피하지 못한 건지, 인간의 마음으로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분명 흠뻑 비를 맞기 위해 당당히 길 위로 행진했을텐데, 비가 그친 길가에는 달팽이가 지나간 흔적만이 투명한 액체의 줄로 확인될 뿐이다.
유독 비가 내리고, 비가 그치고, 햇볕이 쨍쨍한 날이면 수풀 근처의 길가에는 속살은 이미 사라진 달팽이 껍질이 숱하게 흩어져 있다. 바닥을 보지 않고 급하게 내달음치면 바사삭 달팽이 껍질 부서지는 소리가 귓가에 쨍하고 박힌다. 아! 달팽이가 머문 집을 부쉈구나. 달팽이는 어디갔을까? 인간의 언어로, '죽음'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
매번 햇볕에 바짝 타들어가면서도 달팽이는 비가 오는 날이면 여지없이 길 위로 나선다. 마치 죽기 위해 떠나는 여행처럼,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은 채 홀로 길을 나선다. "떠나지마!" "길 위로 나서지마" "그곳은 위험해." "죽을 수 도 있어." 그 누구도 말리지 않는 듯 하다. 제각기 위치한 달팽이들이 일제히 시원한 비를 맞기 위해 그 머나먼 여정을 떠나는 걸 보면.
숱한 달팽이의 껍질을 피해 요리조리 한발짝 디디면서 문득 '달팽이는 행복했을까?'란 의문이 들었다. 바보 같이 왜 길 위로 떠났는지가 아니라, 한 순간의 자유를 위해서라면 죽음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달팽이의 생은 햇볕에 말라 사라졌지만, 달팽이의 영혼만큼은 쉽사리 사라지지 못했을 것이라는 느낌.
누가, 달팽이를 느리다고 말하는가.
달팽이는 누구보다 빠르게, 전속력으로 살아갔음을 나는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