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닌 다른 것은 쓸 수 없다
궁금하다. 도대체 나란 사람이 쓸 수 있는 글이 무엇일지 말이다. 쓰지 않고서는 모르기에 무작정 써 내려갈 뿐이다. 완성된 글을 보자면 허점 투성이어서 자괴감으로 막을 내리곤 하지만 그럼에도 또 글을 쓴다. 글을 쓰지 않기 위해, 별의별 노력을 해보지만 이제 그 노력도 통하지 않는 걸 보면, 정말 마지노선 이기라도 한 걸까.
더 이상 한눈팔 수 없음을 직감적으로 느끼지만, 그럼에도 이 미친 짓을 왜 이어나가고 있는지 갸우뚱해진다. 아마도 내가 나를 믿지 못하는 순간이거나 도무지 어떤 글을 쓰고 있는지 방향을 잃어버릴 때마다 의심의 눈초리는 여지없이 나를 향한다. 도무지 재능도 보이지 않는 이 짓을 이어나가고 있는 그 이유를 난 설명할 수 없다.
무엇을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다는 논리는 거짓이다. 자기만의 해석을 그럴듯하게 꾸며낸 하나의 창작품에 지나지 않는다. 독자들은 자신이 믿고 싶은 허상을 쫓아 글을 읽는다. 내 생각이 옳다고 부추겨주는 그 책에 동조해서 나의 확신을 굳히기한다.
나만이 쓸 수 있는 글이 있다는 것은 그럴듯한 논리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경험한 것이 다르고 그 경험의 조합이 다른 글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러니, 백 사람이 있다면 백가지의 이야기가 창조된다. 그러므로 나만이 쓸 수 있는 글이라는 논리는 원칙적으로 반박할 수가 없다.
일단, 내가 글을 썼다면 이미 나만이 쓸 수 있는 글인 것이다. 나와 똑같은 글은 이 세상에 어디에도 없다.
기승전, 결론은 써야 한다는 것이다. 나만이 쓸 수 있는 글은 이미 내 몸에 새겨져 있다. 그것을 믿고 천천히 한 자 한 자 빈 공백을 채워나가야 한다. 그 길이 평탄치도 않고, 심히 흔들거려 어지럽기도 하겠지만 잠시 멈추어 속을 달래고 오르며 그렇게 써 내려간다. 내가 할 일은 이것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