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 한 잔 연재를 시작하며
샤워실에서 마주친 그녀는 나이 들어 골반이 아파서 더는 운동을 미룰 수 없어 헬스를 한다고 했다. 그녀는 자신의 늘어진 뱃살을 한번 꼬집더니 처음 본 나를 보며 말을 건넸다.
“수영을 해서 뱃살이 없나 봐요.”
수영과 뱃살의 상관관계는 1더하기 1은 2라고 단박에 답할 만큼 간단치가 않다. 뱃살의 이력을 설명하자면 어린시절 부터 꺼내야 하니 헬스를 마치고 샤워실에 들어선 그녀에게 수영을 마친 내가 할 짓은 아니다. 나는 잠시 뜸을 들이다 웃음을 띠며 말했다.
“아, 네… 그렇게 생각하셔도 괜찮아요.”
뱃살을 줄이는 데 수영의 공이 없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수영을 시작할 때의 내 배는 누가 봐도 뱃살이 출렁거렸고, 3년을 넘어선 지금은 나름 평평한 뱃살을 유지하고 있다.
화장품을 광고하는 예쁜 연예인을 보면서 ‘나도 저 화장품을 쓰면 저렇게 예뻐지겠지’라는 기대처럼, 나의 평평한 배를 보며 ‘수영을 다니면 뱃살이 빠지겠구나’라는 기대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썩 나쁘지 않았다. 약간의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나는 말했다.
“다른 운동보다 수영이 재미있게 살을 뺄 수 있어요.”
샤워실에서 알몸으로 만난 처음 만난 사람에게 이렇게 선의의 거짓말을 보태며 능글맞게 호객행위를 하고 있는 나를 보니, 수영이 재미있긴 한 것 같다.
수영이라는 공통분모만 있다면 친해지는 것도 순식간이다. 수영으로 말할 수 있는 소재는 넘치고 넘쳐서, 대화를 나누는 시간조차도 흥분으로 가득 찬다. 마치 말로 수영을 하는 것 같다. 반대로 수영으로 만나 친분을 갖다가 수영을 그만두게 되면 공통분모가 날아가 지루한 관계가 되고 만다.
때로는 모른다는 것이 용기로 치장되곤 한다. 뭣도 모르고, 전라도 광주에서 열리는 전국수영대회에 참가했다. 누가 보면 창피할 정도로 월등히 실력차이가 나는 꼴등을 했지만 좌절하기는커녕, 수영이 더 좋아졌다. 40대의 허들을 넘어 청년이라 말하기에는 좀 늙었고, 중년이라 표현하기에는 좀 젊은 나이가 되도록 나를 사로잡았던 운동은 없었다. 운동은 필수이다, 라고 말하는 시대에 여러 운동을 찔끔찔끔 맛봤지만 지속되진 못했다. 금세 심드렁해지고 기대에 차지 못했다. 수영은 달랐다. 물이라는 특별한 요소가 한 몫 한 것도 있겠지만, 수영을 하면서 ‘나’를 마주하게 되었다.
‘나’라는 세계에 대해 호기심이 일었고, 수영을 하면서 오랜 시간 모른 채했던 내가 떠올랐다. 물속에서 발견한 새로운 ‘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수영을 즐기면서 비로소 나에게 솔직해지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수영을 말하며, 커피 한잔을 즐기는 여유를 맛봤으면 하는 기대로 글을 쓰게 되었다. 그 여유 속에서 우연히 발견하는 내가 있다면 더 없이 기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