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다리 컴플렉스

상상밖의 영역이었던 수영복

by 홍시

8살 즈음이었다. 엄마가 큰맘 먹고 사준 원피스를 입고 기분 좋게 집을 나섰다. 위에는 하얀색으로 레이스가 약간 달렸고 아래는 찐분홍색의 치마인 원피스였다. 바지를 입을 때는 성큼성큼 팔자로 걷던 내가, 무릎이 훤히 보이는 원피스를 입으니 걸음걸이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얼떨결에 조신한 여자가 되어 샤방하게 동네를 활보하는 중이었다.


평상시에도 치마를 즐겨 입는 편은 아니었다. 엄마는 나의 옷 취향 따위는 고려할 만큼 세심할 형편이 못됐다. 편하고 때가 타지 않으면 외출옷으로 충분했다. 잘 늘어나는 츄리닝 바지에 티셔츠가 내 옷차림이었다. 동네 친구들은 난생처음 입어본 원피스 차림을 보더니 대뜸 놀려대기 시작했다.

“재봐라~ 무다리다!”


밖에서 줄곧 뛰어 놀아 종아리에는 제법 단단한 알이 배어 있었다. 내 눈에도 또래 친구들보다 내 다리가 훨씬 두껍고 퉁퉁해 보였다. 친구들이 "무다리!" 외치며 놀려도 딱히 반박할 수 없었다. 그 자리에서 눈물을 터뜨렸다. 처량한 모습이 더욱 재밌는지 놀림을 멈추지 않고 더 세차게 몰아쳤다.

“무다리를 내 놓고 다니네!”


눈물 바람으로 집까지 달려가 원피스를 벗어 던졌다. 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었던 치마의 기억. 그 이후로 무릎 아래를 내보이는 옷을 입은 적이 없다. 무더위가 한창인 한여름에도 긴 츄리닝 바지를 입었고, 꽃다운 20대에도 치마를 입지 않았다. 입을 엄두도 내지 않았다. 대학 4학년을 마치고 졸업사진을 찍기 위해 동기들은 백화점에서 구입한 정장 치마를 입고 뽐낼 때도 난 꿋꿋했다. 긴바지를 입었다.


집에서 잠옷으로 입는 바지를 제외하고, 외출할 때 다리 노출은 절대 안됐다. 다리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는 내가 다리를 훤하게 내놓는 수영복을 입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주변에서 수영을 한다고 말할 때도 마치 이승이 아닌 저승의 이야기처럼 전혀 실감되지 않아, 아무말없이 있었다.


내 인생에서 ‘수영’이 가능한 일일까. 수영복을 입고 다른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은 어린 시절 ‘무다리’라고 놀림 받던 그날의 수치스러웠던 기억을 떠올려야 했다. 기껏 8살의 기억임에도 40살까지 이어진다니. 컴플렉스라는 것은 이리도 무서운 것이다. 8살의 내 몸과 40살의 몸이 분명 같지 않다. 종아리의 두께도 절대 같지 않다. 그럼에도 내 종아리는 8살의 무다리로 멈춰있었다.


‘그래, 다짐했어! 콤플렉스를 극복해보겠어!’ 라며 굳은 결심을 한 여자를 기대했다면 그건, 인간극장의 휴먼스토리를 꿈꾸는지도 모른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자기계발서를 보면 콤플렉스를 극복했다며 용기 있게 나서보라고 어르고, 달래지 않던가. 누군가에겐 아무것도 아닌 일이, 누군가에겐 치를 떨게 힘든 일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그 계기가 때로는 너무 유치하다고 해도, 그로인해 한 사람의 인생이 통째로 비틀어지기도 한다는 것을, 수영복을 보면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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