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을 참 좋아했구나

치앙마이 여행에서 내가 얻은 가장 큰 수확

by 홍시

7월의 치앙마이는 한국의 여름보다 덥다. 습도도 높아 거리로 나가면 찜질방에 가만히 앉아도 송글송글 땀이 맺히는 것처럼 얼굴에서 땀이 흐른다. 날씨 탓에 사람들의 옷차림은 가볍다 못해 안 입은 듯하다. 간만에 혼자 떠나는 여행이었다. 40살의 생일을 맞아 내가 나에게 준 선물이었다. 그동안 아이들 키우느라, 남편 내조하느라 고생했으니 일주일의 시간만큼은 온전히 나를 위해 사용하고 싶었다.


대충 집에 있는 여름 옷 몇 벌을 작은 여행가방에 꾸겨 넣었다. 반팔 티셔츠에 헐렁한 긴바지면 되지 않을까. 외국에 나왔지만 나의 모양새는 집 근처 편의점을 나서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걷는데 날씨가 적응되지 않는다. 숙소에만 머무를 수도 없었다. 가까운 관광지를 찾아가는 길은 불에 타는 마른 오징어처럼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물속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달리 방도가 없다. 이틀을 게스트하우스에 묵다가 야외수영장이 있다는 숙소로 예약을 했다.


뜨겁게 달구어진 몸을 이끌고 새로운 숙소로 들어서자 마당 한가운데 커다란 수영장이 눈에 띄었다. 숙소 후기를 살펴봐도 수영장 수질관리를 잘해서 깨끗하다는 말이 많았다. 파란색깔의 타일 때문인지, 푸르른 하늘이 비춰서인지, 마음이 파래서인지 유독 수영장의 물은 파랬다. 저 물속에 당장이라도 뛰어들고 싶었다. 수영을 하지 못해도 괜찮지 싶었다. 기껏 해봐야 가슴 정도의 물깊이라면 걷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햇볕에 달궈진 몸을 시원한 수영장 안에 담그면 된 것이다. 하지만, 옷을 입고 들어갈 수는 없었다. 원칙이었다. 어디나 공용의 공간에는 공용의 원칙이 존재하고, 그건 지키라고 있는 것이다. 급하게 검정색 수영복 세트를 구입했다. 검정 수모에 검정 물안경, 검정 원피스 수영복.


한국에서는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일들이 치앙마이라는 외국에 가니, 놀랍도록 쉬웠다. 노출하고 싶지 않았던 내 무다리는 그들에게 전혀 관심 대상도 아니었고, 무더운 더위에 나처럼 덥게 입고 다니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오히려 나처럼 입으면 튈 수 있었다. 그들과 비슷하게 입는 것이 눈에 덜 띄었다. 근처에서 얇은 상의와 긴 치마를 구입해서 입으니 한결 숨통이 트인다.


숙소에 들어가 수영복을 처음 입어봤다. 물기가 없는 몸에 타이트한 수영복을 입으려니 피부가 쓸린다. 욕실에 들어가 거울을 보며 수영복에 다리 하나를 집어넣으니 허벅지에서 막힌다. ‘으윽!’ 우스꽝스런 내 얼굴 표정이 고스란히 거울에 비친다. ‘내가 어쩌다가 수영복을 입겠다고~ 휴~’ 후회가 밀려왔다. 수영장에 들어가겠다는 설렘은 사라지고 우울함만 남았다.


이대로 후퇴하기에는 한발 늦었다. 애 딸린 엄마가 혼자만의 여행이 얼마나 귀한지 난 알고 있었다. 비행기를 타고 한국을 떠난 것은 나름의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수영장에 들어가 보겠다고 쇼하는 나를 간신히 어르고 달래서 야외수영장으로 향했다.


같은 숙소에 묵는 외국인 여행객이 몇 명 있었다. 그들의 수영복은, 비키니다. 원피스 수영복을 입은 사람은 한국인인 나뿐이다. 얇은 끈으로 간신히 걸친 비키니 수영복이 몸에 달라붙어 있는 것이 마냥 신기했다. 한 여자는 수영장에 들어가더니 인어가 된 듯 물속을 자유자재로 다니면서 수영을 했다. 두 명의 남자는 친한 친구인지 장난을 치며 다이빙을 해댔다. 그 옆에서, 아니 저 멀리 끄트머리에서 난간을 잡고 천천히 걷는 소심한 여자가, 그렇다 바로 나이다.


외국인 여행객은 한참 놀고 난 뒤 수영장을 나갔다. 야외수영장에는 나 혼자만 남았다. 용기를 내어 배를 하늘을 향해 뒤집어 물 위에 띄웠다. 제법이다. 둥실 떠있는 것이 가능하다니. 어릴 때 바닷가에서 놀았던 경험이 있어서인지 물에 뜨는 방법은 몸이 알고 있었다. 하늘을 향해 누워있으니 흘러가는 흰 구름이 내 시야에 펼쳐진다. 흘러가는 구름 따라, 물 위의 내 몸도 함께 흘렀다. 한참을 떠다니다 문득 깨달았다. 난 물을 참 좋아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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