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뿌연 수영장의 문을 열었고 수영인이 되었다
치앙마이에서 트레킹도 하고, 마사지도 받고, 쇼핑도 하고, 맛집도 가고, 멋진 카페도 가봤지만 결국 수영장이었다. 지치고 달궈진 몸을 야외수영장의 찬물에 담그는 순간, 나라고 여겨지는 모든 것이 녹아내렸다. 높은 하늘 위에서 날아다니는 커다란 새의 매끈하고 하얀 배를 보면서 물위에 둥둥 떠 있는 것이 좋았다. 바람에 흔들리는 가벼운 잎사귀가 된 듯 했다.
치앙마이에서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수영장에 대한 설렘이 사라지지 않도록 곧장 동네에 유일하게 있는 실내수영장을 찾아 수영강습을 등록했다. 무다리에 대한 공포는 나에게 별달리 영향을 미칠 수 없었다. 내 무다리를 사람들이 보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조차 끼어들 틈이 없었다. 머리로 한 일이 아니라, 몸이 재빠르게 선수치고 날아가 일을 벌렸다.
일을 벌려놓으니 두려움보다는 수영갈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게 급선무였다. 6시에 시작하는 새벽수영은 무리였다. 아침에 일어나 아이들을, 남편을, 식사를 챙겨야 했다. 오전 수영은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패스, 저녁 시간만이 남아 있었다. 제일 마지막 저녁 8시 강습만이 남아있었다. 부랴부랴 저녁 챙겨 먹이면 그 뒤처리는 알아서 할 수 있을 거였다.
수영장은 동네에서 목욕탕과 겸하는 곳이었다. 10년을 그 목욕탕을 다녔던 터였다. 그러면서도 그곳이 수영장이었다는 것을 10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관심이 없는 것은, 눈에도 보이지 않고 현실에서도 없는 존재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알게 됐다. 목욕탕의 친숙한 카운터 언니에게 수영 강습 등록에 대한 상세한 안내를 받으니 익숙한 목욕탕이 낯설게 다가왔다.
내가 알던 세상이 맞는가 싶다. 외국 여행 탓인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다시 돌아오기 위해서라고 누가 말한 것 같다. 현실은 변한 게 없는데 모든 게 변한 것처럼 느껴졌다. 수영을 시작한다는 들뜸이 새로운 기분을 만들었다. 우연한 기회에 물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고, 좋아하니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드디어 수영 강습 첫날이다. 매주 찾아가던 목욕탕 건물이건만 수영장으로 들어서기 위한 입구를 찾지 못해 헤맸다. 허둥대는 내 모습을 보고 덩치 큰 한 남자가 “수영장은 저 쪽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친절하게 안내한다. 낯선이의 친절함에 긴장감이 조금 줄었다. 첫날이라 그런지 나도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수영장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샤워실을 거쳐야했다. 사물함에 옷가방을 넣어 두고, 머리도 감고 몸도 닦아야 했다. 초보인게 눈에 띄는지, 옆에 있는 아주머니께서 선배가 후배 가르치듯 말씀한다.
“수영장에 들어가기 위해 꼭 샤워해야 해요. 수영복은 그냥 입으면 뻑뻑해서 안 들어가니까 비누로 수영복을 문질러서 입으면 쭉 들어가요.”
아주머니의 말씀대로 하니, 피부가 쓸리면서 입었던 수영복이 미끄러지면서 몸에 착 달라붙었다. 머리에 수모를 쓰고, 수경까지 장착하니 거울에 비친 내가 개구리 왕눈이처럼 보였다. 피식 웃음이 삐져나온다. 샤워실에서 나와 수영장 입구에서 멈칫했다. 강사의 외침소리와 강습생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문틈사이로 새어나오니, 심장이 콩닥거렸다. 내 뒤에는 수영장에 들어가려고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 뿌옇게 김이 서린 유리문을 열어젖힌다. 나는 문을 열었고 수영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