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속에서 가볍게 방방 뛰어오르며 여고생이 되었다
“물속에 있으니 너~~무 좋다.”
수영장에서 초짜의 동질감으로 쉬이 친해진 한 언니가 물속에서 방방 뛰어보이며 연신 ‘좋다’를 남발하며 웃고 있다. 웃음은 전염력이 강해서 한 배를 탄 초짜들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어난다.
길을 걷다가 삼선 슬리퍼에 교복 치마를 입은 여고생들의 고개가 넘어갈 듯한 웃음소리가 들린다. ‘까르르~ 꺄르르르륵~’ 나뭇잎 떨어지는 것만 봐도 소리 내어 웃을 수 있는 여고생들. 도대체 뭐가 그리 재미있을까? 궁금해져 뭔 말을 하나 소심하게 귀를 기울여본다. 친구가 건넨 ‘야!’ 한마디에도 소스라치게 웃어버리는 여고생.
나도 그런 때가 있었다. 길가에 나부끼는 나뭇잎을 걷어차면서도 친구들끼리 배꼽을 잡고 웃었다. 나는 내성적인 성격에 수줍음이 많았다. 친구가 많지는 않았지만 2명의 친구만으로도 충분했다. 친구와 함께라면 어떤 말에도 웃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세상은 온통 웃음거리 천지였다.
언젠가부터 가벼운 웃음이 사라졌다. 30대가 넘어가면서부터 진지한 성격이 더 심각해져만 갔다. 웃을 일이 있어도 좀처럼 소리 내어 웃지 않았다. 개그로 사람들을 펑펑 웃게 만드는 개그콘서트를 보아도 ‘저게 왜 웃기지’ 심드렁했다. 여느 어른들처럼 걱정의 무게는 점점 무거워졌고, 그 무게 때문인지 웃을 꺼리가 많지 않았다. 날선 비판과 판단이 섞인 의견들이 내 입에서 나불거렸고, 늘 날카롭게 날을 세워야했다. 그래야 사람들이 날 무시하지 못할 테니까.
어른이 된다는 것은 뭘까. 사뭇 어떻게든 진지하려고 애를 쓴다. 뭐하며 돈을 벌 수 있는지, 아이는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재테크는 어떻게 해야 잘하는 건지, 노후는 어떻게 준비해야할지, 고민할 숙제는 머릿속에 가득 찬다. 사람을 만나도 가벼운 농담보다는 현실을 살아가기 위한 조언을 하는 사람이 점점 많아졌다.
진지하고 무거운 삶으로 어른의 몫을 다하면서 ‘나’를 잃어가고 있었다. 하고 싶은 일보다해야 하는 일이 인생의 우선순위가 되었다. 해야 하는 일에 모든 에너지를 쏟았다. 나름 인정도 받고, 안정적인 삶이 되어갔다. 남에게 보이기에 그럴듯한 삶이 되어갈수록 가슴속에 공허감이 썰물처럼 밀려왔다.
처음 배우는 수영은 두려웠다. ‘잘 못하면 어떡하지.’ ‘남들이 못한다고 흉보면 어쩌지.’ 줄곧 남의 시선을 신경 쓰는 나. 두렵지만 물속에서 허우적 댈 수밖에 없다. 수영을 함께 시작한 사람들은, 서로에게 웃음이 되었다. 20대, 30대의 몸이 아니다. 내가 40대로 막내였고, 다른 이들의 연령은 50대였다. 수영강사가 시범을 보여줘도 비슷하게 해내기가 신체적으로 불가능했다. 초급반의 수영은 대부분이 어설펐고, 나 또한 다르지 않았다.
서로의 어설픈 수영 동작이 걱정되기보다 ‘피식~’ 웃음이 터지려 했다. 서로를 잘 모를 때는 웃음 때문에 기분이 상할까봐, 꾹 참았다. 한 달쯤 지나자 이름으로 부르게 되고, 수영 강습이 끝나면 차도 한잔 마실 관계가 되어가자 우리는 대놓고 웃을 수 있었다. ‘꺄르륵~ 꺄르륵~’ 오랜만에 들어보는 커다란 웃음소리에 나도 얼굴이 일그러지게 웃고 있었다.
시작은 누구나가 엉망진창이었다. 초보들이 사용하는 레인은 아수라장이 따로 없다. 앞사람의 발을 치고, 앞사람의 발에 머리도 맞고, 그럼에도 모두 ‘처음이니까’라며 서로를 다독인다. 고만고만한 실력들이 모여 있으니 비교될 대상도 없다. 내가 막내라는 게 얼마나 위안이 되던지, 언니들이 운동신경이 없어서 얼마나 맘이 편했던지.
언니들이 수영에 입문한 사연을 모아 보면 모두들 절실하다. 50대가 넘어가서 수영을 배우는 경우는 열에 아홉은 ‘건강’ 때문이다. 이미 건강을 어느 정도 잃고 여러 가지 약물치료와 운동을 거쳤다. 여러 가지 이유로 운동을 포기했고, 마지막이라 생각해서 찾은 것이 수영이다. 그러니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여기서 포기하면 건강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 100세 시대에 이제 겨우 반을 살았는데, 쉽사리 건강을 포기할 수는 없다.
어떻게든 수영만은 놓지 않으리라는 다부진 결심이 언니들의 마음속에 서려있다. 그러니, 오늘 안 된다고, 오늘 힘들다고 이내 포기하지 않는다. 언니들은 오늘의 재미를 흠뻑 느끼는 재주를 가졌다.
“오늘은 내가 팔을 제대로 돌린 것 같아.”
자신을 칭찬하며 자랑한다. 남들이 보면 도토리 키재기 하듯, 우스워보일지 몰라도 자랑하는 언니 때문에 또 ‘꺄르륵~ 꺄르륵’ 잇몸이 드러나게 웃어재낀다.
수영을 배우는 동안, 우리는 여고생이 되었다. 아무것도 아닌 것에도 마냥 웃었다. 얼마나 웃었던지 그동안 사용하지 못한 입 근육이 뻐근했다. 그래, 뭐 인생 별건가. 이렇게 웃어재끼면 되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