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애가 수영도 잘한다
수영을 배운지 6달쯤 지났다. 자유형, 배영, 평영, 접영까지 수영의 영법은 4가지로 나뉘고 강사는 강습생이 지루하지 않도록 비교적 빠르게 진도를 빼는 편이다. 물에 뜨지 못할 정도의 공포감만 아니라면 어설프게나마 4가지 영법을 흉내 낼 수 있다. 그렇다, 흉내를 낼 뿐이지, 물을 가르며 유영하게 수영하는 폼은 아직 멀고도 멀었다.
수영 영법이 흉내 낼 정도의 수준이 되자, 이전처럼 웃음이 터져 나오진 않는다. 제법 그럴듯한 자세로 몇 바퀴를 돌 수 있는지 스스로 확인한다. 나이가 어린 만큼, 체력이 강한 만큼, 유연성이 좋은 만큼 그 외에 뭐 때문인지 몰라도 개인마다 편차가 조금씩 생긴다. 같은 시기에 배운 초보들은 이제 초보딱지도 뗀다. 초보들이 우글거리던 첫 번째 레일에서 옆 레일로 옮겨갈 차례이다. 상급반이라 이름 붙이지만, 굳이 상급반이라 내 입으로 말하진 않는다. 뒤에 들어온 초급반 강습생들이 ‘우와~’하며 쳐다보는 눈빛만으로 어깨가 으쓱한다.
나이가 한참이나 많은 언니들의 체력은 나보다 못했다. 운동과는 담쌓고 지낸 게 고스란히 티가 났다. 수영에 필요한 한 동작을 배우는 데 나보다 시간이 배가 걸렸다. 상대적으로 내가 ‘에이스’가 되었다. 언니들이 먼저 나에게 이름 붙여준 ‘에이스’라는 애칭이 얼마나 달콤한지, 불러줄 때는 손사래를 치며 “그러지 마요!” 겸손을 떨었지만 내심 기분 좋았다. 입꼬리가 쭉 올라가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언니들 옆에 찰싹 붙고 싶었다. 수영을 잘 못하는 언니들 틈에 끼어 잘 하는 ‘에이스’로 불리고 싶었다. 욕심도 지나치면 화를 부른다 했던가. 새로운 강습생이 우리 쪽 레일로 합류했다. 수영을 배우다보면 처음부터 배우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예전에 배웠다가 다시 강습을 시작하는 사람도 많았다. 들고나는 사람들이 우후죽순 생겼다. 처음의 어설픔을 공유한 친밀함은 쉬이 생기지 않았지만 뭐 어쩌겠는가. 함께 레일에서 부딪혀가며 수영해야 할 사람이다.
그녀는 강사에게 수줍게 평영까지 배웠다고 했다. 우리도 막 접영을 배우고 반복적으로 해보는 참이었다. 기존 강습생들이 출발하고 난 이후에 그녀는 강사의 가르침을 받았다. 시범동작을 보여주고 그녀가 출발할 때, 자세를 잡아주었다. 처음이라면, 잘 못해야 했다. 처음이라면, 좀 망가져야 했다. 그러면 나는 웃어줄 참이었다. 예상은 어긋났다. 그녀의 접영은 완벽하진 않지만, 제법이었다. ‘처음인데 저렇게 잘한단 말이야?’ 처음이어도 충분히 잘할 수 있다는 것을 그녀를 통해서 알았다. 처음이어서 어설픈 것은 운동에 잼병인 언니들이었기에, 힘이 없었던 나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고등학교 학창시절이 떠올랐다. 나의 성적은 비교적 우수한 편이었다. 개인과외나 학원을 다니지 않고 줄곧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는 나를 대견스러워 했다. 머리가 좋은 편인가 싶었지만, 아이큐를 보면 그건 아니었다. 평범해도 너무 평범한 중간이었다. 노력으로 얻어진 성적이었다.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반에서 1, 2등을 해보진 못했다. 바득바득 공부해도 1, 2등은 나의 차지가 아니었다. 가까스로 3등을 하거나 5등, 그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어떻게 하면 1등을 할 수 있을까? 1등 하는 애를 유심히 봤다. 그 애는 옷을 그럴싸하게 입거나, 머리를 치장하진 않았지만 예뻤다. 머리를 빗은 건지 만 건지 부수수한데도 이상하게 예뻐 보였다. 성격은 활달해서 친구들이 많았다. 늘 그 애가 먼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나는 그 애와 친해지고 싶지 않았다. 옆에 있으면 내가 쪼그라들었다. 나는 체육과목을 유독 좋아했다. 40대에도 튼실한 허벅지를 갖고 있는 것은 학창시절의 운동 덕이다. 달리기, 농구, 축구, 멀리뛰기, 피구 종목을 가리지 않고 즐겼다. 대체적으로 운동신경도 있어 못하진 않았다. 그럼에도 그 애는 나보다 더 운동을 잘했다. 어떤 종목을 해도 반 아이들보다 월등했다. 나는 간신히 친구들을 앞서는 반면, 그 애는 체육선수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잘했다. 선생님의 사랑을 듬뿍 받은 것은 말 안 해도 알테다. 공부 잘하고, 운동 잘하고, 성격도 활달하고, 거기다 예쁘기까지. 이건 불공평해도 너무 불공평하다.
인생을 조금 살아본 사람은 불공평함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곤 한다. 세상은 절대로 공평하지 않다,는 그 단순한 진리를 몸소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수영장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그녀는 수영이 시작되기 전 얼굴을 마주치는 모두에게 상냥한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인사했다. 강사가 한번 시범을 보이면 곧잘 따라했다. 그 진귀한 광경을 지켜본 사람들은 모두 칭찬한마디를 아끼지 않았다. “너무 잘하네~” 나는 그녀에게 칭찬의 말을 하지 않았다. 대수롭지 않다는 듯 무표정으로 일관하며 그녀를 대했다. 그녀는 키도 크고 늘씬했다. 군살은 없고 뽀얗고 매끈한 피부를 지녔다. ‘그래, 젊으니까 그렇지.’ 젊음이라면 용납이 되었다. 언니들보다 내가 나이가 어려서 잘한 것처럼 느꼈듯이, 그녀도 젊으니까 잘하는 거겠지, 억지로 이해하려 들었다. 언니가 호기심으로 그녀에게 나이를 묻자, 모두 기겁했다. 깜놀 하는 표정을 나도 숨길 수 없었다. 탱탱한 피부를 봐서 나보다는 10살 어리게 봤는데, 아이쿠 2살 어리단다. 얼추 비슷한 나이의 내가 심하게 비교되는 것처럼 느껴져 어디로든 사라지고 싶었다.
솔직히 고백하건데 그녀의 얼굴은 정말 예뻤다. 갸름한 계란형의 얼굴 형태에 짙은 눈썹, 오똑한 콧날, 균형 잡힌 입술까지. 어디 흠잡는 게 어려울 지경이다. 거기다가 전문직의 직업을 갖고 있다. 그 완벽한 예쁜애가 수영까지 잘하는 것이다.
배가 아팠다. 인생의 불공평함을 수영장에서까지 맛봐야 하는 지, 수영이고 뭐고 그만두고 싶어졌다. 내가 그동안 언니들의 틈바구니에서 얼마나 우월감을 맛보고 있었는지, 언니들에게 미안하고 고마웠다. 철든 마음은 딱 그 정도까지, 예쁜애와 같이 수영을 하니 내가 쪼그라들었다. 잘되던 수영 동작도 잘 되지 않았다. 언니들도 점점 싹싹한 그 예쁜애에게 마음이 향하는 것 같았다. 예쁘면 성격은 좀 까칠해야 하는 거 아닌가! 까칠한 사람은 바로 나였다. 예쁜애가 다가와서 “왜 접영 할 때 팔이 안 돌아가죠?” 물어도 “힘 좀 써 봐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나는 수영장을 갈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