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다

스스로 한계를 만들었던 나를 만났다

by 홍시

“숨을 쉬지 않고 수영을 해야 폐활량이 좋아집니다. 자, 숨 쉬지 않고 끝까지 가봅시다!”

수영 강사는 25m 거리를 호흡을 하지 않은 채 자유형으로 유유하게 끝까지 도달한다.


보통 자유형을 할 때는 왼팔을 돌리고, 오른팔을 돌리며 빼꼼히 고개를 내밀어 호흡을 한다. 아가미가 없는 인간이 물속에서 헤엄치기 위해서는 호흡은 필수이다. 육지에서는 딱히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이루어지는 숨쉬기. 친구와 수다 삼매경에 빠져도, 가스렌지 앞 뜨거운 불 앞에서 분주히 움직일 때에도, 책가방도 매지 않고 학교를 가려하는 아이를 다그칠 때도, 호흡을 따로 고려해본 적은 없다. 그냥 알아서 된다. 기억나진 않지만 엄마의 자궁을 빠져나가 제일 먼저 터득한 기술은 으아앙~ 울음으로 터뜨려지는 호흡이 아닐까.


호흡이 정말 중요하다고 느끼는 순간은 숨쉬기를 멈출 때이다. 가령 심심해서 “우리 숨 누가 오래 참나 해볼까?” 숨참기 시합을 한 적이 있다. 어릴 때 이런 장난 한번쯤 다 하지 않나. 준비, 시~작! 한 친구는 숨을 쉬나, 안 쉬나 검사를 해보겠다며 두 번째 손가락을 콧구멍 아래에 대본다. 공기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는다. 몇 십초가 흘렀을까, 얼굴은 울그락 불그락 폭발 직전이다. 그래도 한 번 더 참아본다. 오기가 있지. 이대로 질 수는 없는 것이다. 한 친구, 또 한 친구 숨을 헉헉거리며 시합의 우승은 점점 다가온다. 하지만 나의 폐는 거기까지는 아닌가보다. 입을 벌려 참았던 숨을 몰아쉬면서 그제야 느낀다. 숨을 쉴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하고.


호흡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죽음’과도 같다. 어릴 적 숨참기 놀이는 어쩌면 죽음의 공포를 맛볼 수 있는 기회였을지도. 그러니, 다시는 숨참기 같은 것은, 죽음 같은 것은 가까이 가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그 고통스러움은 충분히 몸에 각인되어 영원히 잊히지 않는 기억이 된다.


강사가 호흡을 하지 않고 수영하는 시범을 보이자, 갑작스레 어릴 적 잠깐 맛보았던 공포가 기억나 몸서리를 쳤다. 나는 자유형으로 수영하는 게 조금씩 편해지고 있었고, 양 쪽 팔을 한번 씩 돌리면서 오른쪽이 돌아올 때 숨을 쉴 수 있는 기술을 터득한 참이었다. 이 정도면 수영장의 물속에서 두렵지 않았다.


강사는 신체 건강해 보이는 20대 후반의 젊은 남자였다. 수영으로 다져진 체력이 있을테고, 젊음이라는 에너지가 있을테고, 강사니까 깡따구도 있겠지. 나는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하고 ‘나이 많은 내가 당신하고 같나! 난 못해’ 마음속 혼잣말을 했다. 표정은 쉬이 거짓말을 못하는지, 강사는 단박에 나의 혼잣말을 알아차렸다. 강사도 마찬가지로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다만 표정으로 말을 했다. ‘일단 해보세요, 할 수 있습니다!’


미묘한 신경전이 오고갔다. 레일에 서 있는 수영인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니가 먼저 해, 암묵적이지만 눈으로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말이 아니어도 소통할 수 있는 도구들은 참 많다. 눈짓, 몸짓, 얼굴짓 별별 수단을 이용해서 뒷걸음질을 치고 있는 풍경이란.


강사도 기다림이 지쳤는지, 독려하던 눈빛이 매섭게 변했다. 흥! 그래도 내가 가나보다. 여전히 ‘난 못해!’라며 사뭇 당당했다. 왜냐하면 난 강사보다 나이도 많고, 여자이고, 운동도 한 적 없고, 할 수 없는 이유들은 많았다. 그리고 결정타는 절실함이 없었다. 내가 강사처럼 호흡도 하지 않고 레일을 끝까지 간다고 해서 변할게 뭐람, 싶었다.


해보지도 않고 주저앉았고, 해보지도 않고 한계를 만들었다. 내가 만들어놓은 한계는 꽤나 견고했고, 부서지지 않을 듯 보였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예외는 없었다. 한 명의 예외는 전체의 예외나 마찬가지였다. 다른 이를 위해서라도 포기하면 안 되었다. 강습의 분위기를 망치기 위해 먼저 나설 사람은 없었다. 결국, 아니 도망갈 곳이 없어 제일 먼저 출발선에 섰다.


강사의 외침이 들린다. “출발!”


왼팔을 돌리고, 오른쪽 팔을 돌리며 물 밖으로 들어 올렸던 고개를 들어 올리지 않는다. 낯설다. 매번 습관적으로 했던 동작이 사라지니, 마치 빈공백이 생긴 것 같다. 물속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부드러운 감각만 남는다. 고개를 드는 동작이 사라지니 간결해진 것이다. 생각했던 것처럼 어렵지만은 않다. 오히려 숨을 쉬던 자유형보다 더 편하다. 또 왼팔, 오른팔 돌리며 가까스로 숨을 참았던 입을 터뜨려야 할 때가 다가온다. 가슴이 답답해져오고, 보이진 않지만 내 얼굴은 울그락 불그락 하다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 1초, 2초 조금 더 버텨볼까, 아~ 이제 끝. 드디어 아가미가 없는 인간이 물 밖으로 고개를 드러내는 순간이다. 25m레일의 끝은 아니다. 하지만 2/3 정도는 나아갔다. 막상 해보니,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해보지도 않고 온갖 핑계를 대며 ‘못한다’고 푸념했던 내 마음이 창피해졌다. 나는 핑계 대며 스스로 한계를 만들었던, 나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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