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자석처럼 끌렸다

콧속으로 들이치는 매운 맛에도 결국 하고야마는

by 홍시

내가 수영장의 물속에 빠진 것은 배영 때문이다, 라고 말하면 억지를 부리는 것 같지만 한편으론 충분히 일리가 있다. 치앙마이 야외수영장에서 둥둥 떠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그 기분이란, 아직도 몸에 새겨져있어 기억을 꺼내보면 생생하게 그때의 장면이 떠오른다.


수영장에서 수영 강습을 받으면 어느 수영장이나 대체적으로 순서가 정해져있다. 자유형, 배영, 평영, 접영 순이다. 자유형이 얼추 이해가 된 것 같다, 싶으면 자세가 부자연스럽다해도 일단 배영으로 넘어간다. 자유형이 완벽하게 습득되기를 기다렸다 배영으로 넘어가야 한다면, 어쩌면, 어쩌면 배영을 익힐 수 있는 사람은 몇 명 안 될지도 모른다. 수영은 ‘완벽’이란 말이 잘 어울리지 않는다. 어디까지 해야 완벽할 수 있는지, 명확하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수영 잘하는 사람도 한결 같이 하는 말, “아직 배워야 할 게 많아요.”


가끔 물속에서 날아다니는 것 같은 감탄사를 불러일으키는 선수들의 시합을 보노라면, 과연 그들은 스스로 완벽하다고 느낄까, 의구심이 든다. 시합을 끝난 선수들의 표정은 ‘뭔가 아쉬운데’ 싶은 것이다. 강사는 자유형을 가르치면서 강습생들이 지레 포기하기 전에 얼른 다른 영법을 가르치며 호기심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한다. 자유형을 배우면서 한 달도 채 버티지 못하고 떠나는 강습생들을 얼마나 많이 보아왔던가. 그렇게 얼렁뚱땅 배영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나는 나름 배영에 대해 자신만만해 하고 있었다. 단지, 누울 수 있다는 것만으로. 여기서 또 수영 고수들의 코웃음이 들리는 듯하다. 그럴 만도 하다. 자유형보다는 호흡이 쉬워서 왠지 더 편하게 배울 것이라 예상하지만, 예상은 늘 빗나가는 법. 누워 있는 것까진 쉬웠는데, 한 팔을 뒤로 넘길 때마다 코로 들이치는 물 때문에 정신이 혼미하다. 수영을 배우다보면 물을 안 먹을 수는 없다. 물을 몇 컵을 마셨느냐에 따라 수영 실력이 향상된다는 우스갯소리를 하는걸 보면. 몇 컵이 아니지, 몇 병, 아니 병보다 큰 게 뭘까.


그나마 입으로 먹는 물은 ‘꿀꺽’ 삼키면 그만이다. 물맛도 영 나쁘지만도 않다. 어떤 날은 감기약을 물에 푼 것 같은 쓰디쓴 인생의 맛이라면, 어떤 날은 무미건조하게 맹맹한 무기력한 하루의 맛이 난다. 어떤 날은 ‘꿀맛’처럼 달달하게 느껴지는 맛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꿀맛은 없다. 쓰디쓴 맛만 아니라면 다행이다. 문제는 코로 들이키는 물이다. 콧속으로 들이치는 물은, 정신까지 들었다 놨다 한다. 배영을 하다가 중간에 서버린 사람을 만난다면 그는 분명 코로 물을 마신 것이다.


코로 들어가는 물 때문에, 배영을 배울 때는 다른 수영을 배울 때 보다 혼비백산의 분위기가 짙다. 천장을 보면서 움직이는 배영은 앞이나 뒤를 전혀 볼 수 없다. 앞에서 수영하는 사람의 발등을 손으로 치고, 발차기 하는 내 발은 누군가의 손등과 강하게 부딪힌다. 센스 있게 잘 대처하지 않는다면 마음이 상할 수도 있는 일이다. 이럴 때 어떻게 센스 있게 대처하느냐, 묻는다면 “죄송합니다”라고 말할 수밖에.


제법 물을 먹는 탓에 배영의 팔 돌리기가 두려워졌다. 강사는 과감하게 팔을 던지라고 말하지만, 이미 콧속으로 들어가는 물의 매운 맛을 알아버렸다. 매운 맛이 무서워서 더 소심하게 팔을 던진다. 그럴수록 몸은 더 가라앉고, 발차기는 더 무겁다. 25m레일의 끝을 가까스로 찍으면 100m를 전속력으로 달린 것 같이 숨이 가쁘다. ‘헉헉~’ 다시 돌아가야 하는데, 발은 바닥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궁여지책으로 다른 강습생들이 도착 할 때까지 숨을 고른다. 강사는 눈썹을 산처럼 만들어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강습생들에게 빨리 오라고 외치지만, 안 들리는 척 눈을 피한다.


매운맛을 느끼면서도, 정신이 혼미해지면서도, 배영에게 끌렸다. 가끔은 그런 적 있지 않은가. 어렵고 힘든 길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이상하게 피할 수 없었던 마력 같은 힘. 사람이 사람에게 끌릴 때도 비슷하다. 내가 싫어하는 점은 모두 다 갖고 있는 사람에게 묘한 호기심을 느끼고, 마치 자석처럼 끌려가는 것 같은.


배영이 나에게는 그랬다. 콧속으로 들이켜는 물맛은 도무지 적응되지 않고, 사람들과 부딪힘도 많아서 서로 껄끄러워 해야 하는 상황이 많았지만, 수영장에서 난 배영을 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수영을 시작하기 전에 워밍업으로 자유형을 할 때도, 난 배영으로 워밍업을 했다. 물 위에 떠서 몸의 중심부인 허리부터 위로, 아래로 온 몸을 일자로 쭉 뻗어낼 때, 관절이 열리면서 그 시원함을 느낀다. 물속에서 스트레칭을 하는 격이다. 하다 보니 물을 먹는 일도 점점 줄어들었다. 고개를 어느 각도로 해야 물을 먹지 않는지, 몸이 알아냈다.


물만 먹지 않아도 좀 살 것 같다. 이제 천천히 팔도 던져보고, 발차기도 하다보면 유유히 흐르는 배영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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