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뺀 인생은 어떨까
“어머, 저 사람 봐~ 쉬지도 않고 벌써 몇 바퀴를 도는 거지?”
“워밍업으로 열 바퀴 돌 걸.”
수영이 좀 원숙해지면 수영인들은 자유형을 쉼 없이 돈다. 턴을 하면서 자유형을 계속 이어가는 것을 “뺑뺑이 돈다”라고 말한다. 보통 수영을 본격적으로 하기 전 몸풀기로 10바퀴는 기본이고, 운동하겠다 맘먹고 하면 50바퀴도 돈다. 이제 자유형 한 바퀴를 가면서 헉헉대는 사람에게는 쉼 없이 수영하는 사람들이 마치 오르지 못할 높은 산처럼 대단하게만 보인다.
5개월이 지나 초급반에서 고급반으로 이동했다. 초급반과 다르게 고급반은 뺑뺑이를 하면서 체력을 키운다고 했다. 그러니, 맘 단단히 먹으라고! 자유형은 어설프게나마 겨우 할 수 있지만, 쉼 없이 도는 것은 아직이었다. 25m레일을 2바퀴만 돌아도 숨이 차서 죽을 것만 같았다. 강사는 말한다. “죽을 것 같다고 느낄 때, 딱 한 바퀴만 더 도세요!” 힘든 그 순간을 넘어서야 실력도 향상된다는 말일테지만, 몸은 그 말을 따를 용의가 없어 보인다. 끝의 도착점이 보일 때, 턴을 할 마음보다는 저기서 쉬어야지 하는 안도감이 드는 것이다.
달콤한 안도감 때문에 바퀴 수가 늘어나지 않았다. 도대체 얼마나 체력을 길러야 뺑뺑이를 할 수 있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자기 날씨가 쌀쌀해졌다. 기온 차이 때문인지 감기몸살이 났다. 아침에 쌀랑하고 으스스 떨리는 게 ‘감기가 오겠구나’ 싶었다. 머리는 지끈하고 두들겨 맞은 것처럼 살이 아팠다. 몸살이 나면 수영을 쉬어야지. 그래, 맞다. 쉬어야 한다. 그런데 수영장으로 갔다. 정 안되면 씻고 와야지, 하는 생각이었다. 목욕탕이 있는 수영장이라 그런지, 샤워실의 물살은 어디와 비교해 봐도 묵직하고 세찼다. 수영을 하지 않고 샤워만 하러 오는 경우도 많았다. 추운 날씨에는 집안의 화장실보다 따뜻하고, 기운찬 샤워기의 물살로 온몸을 마사지 받으면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다.
수영하기 힘들면 개운한 샤워나 하고 갈 참이었다. 몸은 환경에 따라 아픔의 강도도 다른 건지. 수영장의 차가운 물속에 들어가자 지끈거렸던 두통은 약해지고, 맞은 것처럼 아팠던 살도 언제 맞았냐는 듯, 아무렇지 않게 느껴졌다. 고통이 느껴지지 않자 신이 났다. 자유형을 했다. 하지만 팔을 움직이고, 고개를 움직이자 골이 흔들렸다. 몸살은 몸살이었다. 차가운 물 탓에 통증을 못 느꼈을 뿐, 몸이 움직이자 아픔이 밀려왔다.
자유형을 하면서 어깨에 들어갔던 힘이 나도 모르게 빠졌다. 아프니까, 힘이 들어갈 수 없었다. 배영을 하면서 손에 잔뜩 들어갔던 힘이 빠졌다. 마치 관절 하나가 빠져나가 흐느적 거리는 모양새다. 어깨에, 손에 힘이 빠지니 이상하게도 수영은 한결 편해졌다. 편해지니, 한 바퀴 두 바퀴, 다섯 바퀴 뺑뺑이를 하고 있다.
몸살이 걸려 나는 힘을 빼고 있었다. 빼고자 하는 노력이 아닌, 저절로 힘이 빠졌다. 힘이 빠진 채로 수영을 하니 호흡이 가쁘지 않았다. 죽을 것 같던 헐떡거림이 사라지고, 육지에서 숨을 쉬듯 호흡이 편안했다.
끝이라는 도착점이 보여도 쉬어야겠다는 안도감보다는 턴을 하고 있는 내가 있었다. 일부러 의지를 내서 ‘턴을 해야지’ 했던 것이 아니었다. 몸이 힘들지 않으니 자연스레 턴으로 이어졌다. 힘이 빠지고 나서야, 그동안 내가 얼마나 힘주어 수영을 하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난 단지 열심히 했을 뿐인데, 그 ‘열심’이 과도한 힘이 되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몸은 힘들고 그럴수록 더욱 열심히 해야 한다고 스스로 채찍질을 했던 것이다.
몸살은 나에게 힘을 뺄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주었다. 아픔이라는 포장을 하고, 힘이 들어갈 수 없도록. 이보다 더 명확한 몸의 메시지는 없을 것 같다. “힘을 빼세요!” 잔소리처럼 수영장에서 자주 듣는 소리 중 하나이다. 하지만 어디에 힘이 들어간 건지, 힘을 뺀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경험하지 않으면 이해하고 싶어도 이해되지 않는 말들이 있다. 힘을 빼라는 그 말이 나에게는 그랬다. 그동안 나는 힘을 뺀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빠르게 비디오테이프를 돌려 영상을 보는 것처럼 나의 40년 인생도 빠르게 스쳤다. 힘을 주면서 살아왔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누구나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노력해서 살라고 했고, 다만 그렇게 성실하게 살아왔을 뿐이다. 힘을 빼고 산다는 것이 어떻게 사는 것인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경험되지 않으니, 이해될 수 없는 세상이다. 그럼에도 궁금해졌다. 힘을 빼면 어떤 인생을 살게 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