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선택은 기분 좋게 만든다
수영에 입문하는 사람들의 수영복은 검정색으로 엇비슷하다. 수영복과 수모, 수경의 세트 구성만 봐도, ‘저, 이제 수영 배워요’라고 말하는 것 같다. 과감한 노출은 노! 과감한 색깔도 노! 튀는 디자인도 노! 그러다 보면 검정색 수영복에 검정수모, 검정수경까지 온통 블랙인 것이다. 물론, 요즘은 수영이 많이 대중화 되어서 처음이어도 패션의 흐름에 민감한 젊은 세대는 유행하는 디자인과 고운 색감의 수영복을 입기도 한다.
나는 패션에 민감한 젊은 세대가 아니어서인지, 쇼핑몰에서 가장 많이 팔린 세트구성을 주문했다. 올 블랙으로 된 세트 구성, 가격도 저렴하다. 나에게 돈 쓰는 게 아까웠다. 아이들을 위해서, 남편을 위해서 쇼핑을 할 때는 무조건 저렴한 것을 선택하기보다 질 좋고, 오래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을 신중히 고민해서 구매를 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나를 위해서는 질 좋은 물건보다는 일단, 저렴한 것이었다. 결혼을 하면서부터 ‘나’를 챙기는 것은 언제나 맨 꽁찌였다. 남편, 아이들, 그리고 나였다. 지갑이 넉넉지 않은 경제적 상황 속에서 나까지 챙기기에는 여력이 없었다. 그렇게 핑계를 대고 있었다.
수영복은 2~3달에 한 번은 바꿔야 했다. 염소성분이 섞여 있는 수영장 물은 수영복을 삭게 만들었다. 보통 엉덩이 주변이 색이 바래고, 더 입으면 그 부분의 천이 얇아진다. 더 입다가는 뽀얀 살색의 엉덩이가 그대로 비춰질 수 있으니, 그전에 주변에 있는 수영 동료들이 먼저 알아봐준다. “너~ 수영복 바꿔야겠다.” 나는 이 말이 나오기 전에 수영복을 바꾸곤 했다. 수영복의 엉덩이 천이 늘어나면서 그 사이로 들고나는 물살이 무척이나 간지럽게 했다. 그 간지러움 때문에 수영에 집중이 안됐다.
쇼핑몰에 들어가 어떤 수영복을 살까? 주춤했다. 검정색 수영복은 아니었으면 했다. 난 검정색 수영복을 좋아하지 않았다. 칙칙한 색깔의 수영복은 기분까지 칙칙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에게 좀 더 선심을 쓰기로 했다. 무조건 저렴이만 찾던 그 습관을 과감히 뜯어 고치기로 맘먹은 것이다. 맘에 드는 수영복을 구입하기로 했다. 어떤 수영복을 선택해야 할지 결정장애가 찾아왔다. 입어보지 않고서는 맘에 드는지 알 수 없다. 이것저것 고른 뒤, 제일 처음에 눈에 들어왔던 파랑색의 줄무늬가 들어간 수영복을 선택했다. 이번 기회에 분홍색 수모도, 분홍색 수경도 구입했다.
새로 구입한 수영복과 수모, 수경을 착용하고 샤워실의 거울을 바라봤다. 음~ 나쁘지 않군. 한술 더 떠서 기분이 바람에 살랑이듯 나부꼈다. 나를 위한 선택이 좋은 기분을 만들었다. 그날의 수영은 기분 탓인지 더 잘 되는 것 같은 착각도 일으켰다. 수경을 쓴 채로 눈물이 찔끔 나왔다. 물속이라 내가 눈물을 흘리는 것을 눈치 챈 사람은 아무도 없다. 수경을 벗고 얼른 눈물을 훔쳤다.
야박하게 굴었던 과거의 나에게 미안했다. 무엇 때문에 나를 하찮게 대했는지 당황스러웠다. 기껏 수영복 하나 원하는 것을 선택했을 뿐인데…. 찔끔 흘러내린 눈물은 나를 위한 용서이고, 화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