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싹 달라붙어 있던 나를 떨어져 보았다
‘수’라고 적힌 기다란 행렬이 늘어선 하얀 성적표를 집으로 가져가면 엄마는 버드렁니를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그리고 “아이쿠~ 내 새끼”하며 내 엉덩이를 톡톡 두들겨주었다. 말수가 적고 무뚝뚝한 성격의 엄마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이었다. 뿌듯했다. 공부를 잘한다는 것은 부모에게 사랑 받을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었다. 난 학교에서 어떻게 공부하면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는지, 본능적으로 찾아냈다. 그쪽으로는 나름 소질이 있었던 것 같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시험성적을 잘 받을 수 있는 능력이지, 공부에 흥미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가령 공부를 하면서 호기심이 생기고, 그 호기심을 풀고 싶어 끈덕지게 물어지는 집념 따위는 없었다. 나는 어떤 부분이 시험에 나올지 예상했고, 그 예상은 비교적 적중했다.
엄마는 파마를, 나는 귀밑 단발머리로 자르기 위해 함께 미용실에 갔다. 뱃살이 유독 두툼하게 살집이 있던 뽀글머리 미용사 아주머니는 나를 볼 때마다, 칭찬했다. “넌 공부 잘하니, 선생님 하면 되겠네.” 엄마는 그 말을 듣고는 별 대답을 하지 않았지만, 흐뭇해하는 그 표정만큼은 숨길 수 없었다. 미용사 아주머니의 칭찬에 “네~”라고 고개를 숙이며 수줍게 대답했다. 엄마와 손을 잡고 시장에 가도 단골 아주머니들은 비슷한 말을 했다. “공부 잘한다며~ 여자는 선생님이 최고 좋은 직장이지.” 학창 시절 내내 들었던 레퍼토리.
철모르던 시절 꿈꾸던 장래희망은 빵집 주인이었다. 부드럽고 달콤한 빵맛에 흠뻑 빠져 동네 빵집만 지나치면 난 행복해했다. 내 지갑에 돈 같은 건 없으니, 아빠가 사오는 빵 봉다리만 기다렸다. ‘빵집 주인이 되면 매일 빵을 먹을 수 있겠지.’ 분홍빛 상상을 하곤 했다. 학교에서는 매년 정기적인 행사처럼 장래희망을 적게 했다. 다소 형식적이었지만 빵집 주인이라고 쓸 수는 없었다. 장래희망 란에는 ‘선생님’이라고 적고 있었다. 한번 그렇게 적고 나서부터는 매년 별 고민 없이 ‘선생님’이라고 장래희망을 적어 냈다.
실내 수영장의 분위기는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사람들의 조잘거림이 뒤섞여서 적당히 시끌하다. 적당한 소음은 완전한 정적보다 때로는 위안이 되기도 한다. 사람들이 있고, 나도 그 안에 속해 있는 것만 같은 안정감. 정적은 조용하지만 위압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혼자만 도드라져 보이는 그 뻘쭘함에 몸은 안절부절 한다.
물속으로 들어가면 바깥의 소음은 점차 잦아든다. 내 안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머릿속은 구름처럼 흐르는 생각들이 시끄럽게 떠들어댄다. 멈추지 않는 생각 탓에, 다른 소리를 찾게 된다. 누군가는 물속에서도 음악이 들리는 이어폰을 끼고, 누군가는 수영의 바퀴 수를 때마다 들려주는 스마트 워치를 애용한다. 지껄이는 생각들에 질식당하지 않기 위해서 나름의 방법들을 찾는 것이다. 나도 처음에는 생각들이 시끄럽고, 듣기 싫었다. 온통 나를 헐뜯는 것만 같은 잔소리들. 그 끝없음에 절로 고개가 흔들어졌다.
수영이 몸에 배고 편안해지면서 시끄러웠던 생각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마치 나와 내안의 내가 대화를 나누는 격이 되었다. 대화도 힘들어지면 떠들어대는 생각들을 지켜본다. 생각은 한 순간도 멈춤 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온갖 잡동사니 쓰레기들이 집안에 어질러져 있는 끔찍함처럼 외면하고만 싶다.
생각의 흐름을 한참 지켜보다가 감각을 몸으로 옮겨본다. 팔, 팔목, 다리, 발목, 배 등으로 옮겨 몸으로 느껴지는 물의 감각을 느끼는 것이다. 머릿속의 생각은 비어간다. 수영이 이어지면 몸의 감각도 점차 흐릿해져간다. 어디에 힘을 두는지, 의식조차 없이 움직이고 있다.
아무 생각이 없이, 수영하는 나만 남게 되었다. 낯설었다. 생각의 흐름을 바라보는 내가 보였고, 그 생각에 허우적거리면서 헤매는 내가 보였고, 그 생각에서 빠져나와 몸의 감각을 느끼는 나도 보였다. 평생 착 달라붙어서 한 순간도 떨어진 적 없던 내가 한 뼘 만큼 떨어져서 보였다.
선생님은 내가 원한 게 아니었다. 엄마에게 사랑받기 위한 선택이었다. 엄마는 한 번도 나에게 선생님이 되라고 요구한 적 없었다. 나는 엄마의 흐뭇해하던 표정이 잊히지 않았다. 선생님이 된다면 평생 엄마의 흐뭇한 표정을 볼 수 있다고 믿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는 중요치 않았다. 그렇게 나를 외면했다. 대학을 입학할 때부터 내가 원한 길이 아닌 줄 알았지만, 결국 유치원 선생님이 되었다. 나는 일을 하면서 행복할 수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 아니었다. 엄마의 흐뭇한 표정은 더 이상 나를 행복하게 만들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