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과 촉수

나를 고백하자면,

by 박숲


나는 보부상이다. 하루치라고 하기엔 꽤나 묵직한 가방을 늘 짊어지고 다닌다. 언제든 일할 수 있는 태블릿과 다이어리, 두세 종류의 립밤과 핸드크림, 종류별로 챙긴 비상약까지. 자리에 물건을 두는 법이 없다. 언제든 이동할 수 있어야 안심이 되기 때문이다. 가방 안에 나를 쑤셔 넣어두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흩어져 버릴 것만 같아, 습관적으로 짐을 가득 채우곤 했다.


3년 전 산티아고 길에서 만난 오스트리아 친구는 가방 속에 커다란 돌 하나를 넣고 네 달간 2,750km를 걸었다고 했다. 세상의 끝 피스테라 바다에 그 돌을 던지며 펑펑 울었다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의 얼굴은 빛이 반사되어 바다에 비치는 윤슬처럼 반짝거렸다. 마침내 모든 짐을 벗어던진 사람의 표정.


나에게는 그토록 명쾌하게 던져버릴 돌이 없다. 내 가방에 든 것들은 언젠가 버리기 위해 가져온 과거의 짐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지탱하고 세상과 연결해 주는 유일한 수단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무거운 방을 등에 메고서야 겨우 밖을 내다본다. 숨어버릴 구석이 늘 등 뒤에 있다는 사실. 그것이 나를 계속 걷게 한다.


여전히 가방을 고쳐 맨다. 껍질 속에 숨어 있다고 세상과 등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안에서 끊임없이 촉수를 내밀어 바깥을 더듬는다. 눈이나 귀 대신 연약한 살점을 먼저 내어놓고 세상의 진동을 읽는 방식. "여기까진 괜찮을까" 묻고, 안전하다 느낄 때만 아주 조금씩 나를 꺼낸다.


비는 계속 내리고, 길은 젖어 있다. 친구가 던진 돌이 가라앉았을 깊은 바다를 상상한다. 나는 다시 가방 끈을 꽉 움켜쥔다. 닿을 듯 말 듯 흔들리는 촉수 끝에 온 신경을 모은 채, 한 걸음을 더 보낼 뿐이다. 비를 머금은 배낭이 조금 더 묵직해진다.

작가의 이전글내려오는 선택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