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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절에가다 Jan 18. 2024

놀이가 일처럼 되는 순간까지

<매일 아침 써봤니?> 김민식

"노는 것이 직업이 되는 순간이 와요. 그냥 논다고 해서 직업이 되진 않아요. 열심히 일하듯 놀아야 합니다."

<매일 아침 써봤니?> 9쪽



받자마자 하루 만에 읽어 내려간 책. 유튜브 채널들에 나와 눈을 반짝이며 자신의 삶을 뱉어내는 그가 궁금했다. 일분일초가 아쉬울 정도로 자신의 삶이 너무 재미있어 못 견디겠다는 표정을 하고 있는 그를 알고 싶었다. 그가 쓴 '매일 아침 써봤니?'라는 책은 블로깅을 하고 있는 나에게 시의적절하게 느껴졌고, 책을 보자마자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누구나 읽기 쉽게 쓰여있었지만, 쓰는 사람이면 누구나 무한 공감할 만한 메시지들이 즐비했다. 내가 가진 생각과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대신해 써놓은 느낌을 받기도 했고, 내가 놓치고 있었던 부분에 절절히 탄식을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내가 고수하고 싶은 부분만 기억하고 싶은 나란 인간의 정체성은 그리 달라지지 않을 것 같기도 했다. 정체성인지 고유성인지 아집인지 고집인지 모를 어떤 것이.



“노는 인간의 시대”


첫 페이지부터 보기만 해도 신나는 말을 만났다. 앞으로는 '노는 인간의 시대'라는 말. 인공지능의 시대라 불리는 지금, 저자는 앞으로 우리는 노는 인간의 시대를 만날 것이라 예측한다. 지금도 어디 구석에서 혼자 어디 하나에 빠져 놀고 있는 인간이 있다면, 어쩌면 그는 미래 인재상의 표본이 될지도 모른다는 말처럼 들린다. 얼마나 어떻게 잘 놀고 있는지가 인재상의 기준이 된다는 것은 사뭇 획기적으로 들린다. '앞으로 최선을 다해 주어진 것만 열심히 하는 성실한 사람은 어디에도 쓰이지 못할 것입니다. 최선을 다해 적극적으로 열심히 노는 사람은 어디에나 잘 쓰일 것입니다' 는 듯한. 하지만 이것에 한 가지 조건이 있다면, 놀아도 그냥 노는 게 아니라 미친 듯이 놀아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노는 인간의 시대, 그냥 노는 것이 아닙니다. 미친 듯이 놀다 결국 그 놀이가 일의 경지에 이르러야 합니다 (21쪽).' 미친 듯이 무엇에 빠져 놀다 보면 그것에 전문가의 수준이 되고, 소위 지금껏 '전문가'라고 불리는 사람만큼 혹은 그보다 더, 자신만의 고유함을 그 전문성으로 알릴 수 있는 시대가 왔다고.


책에서는 '나'의 정체성을 '일하는 나, 공부하는 나, 노는 나' 이렇게 세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대개가 불가피하게 일하는 나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며 지낸다. 먹고살기 위한 생존의 영역에서 누구도 벗어날 수 없으니. 가끔 공부하는 나와 노는 나를 만나려 하지만 일하는 나에 밀려 대부분 등한시된다. 그래서 저자는 세 가지의 '나'가 자주 협업을 하며 삶을 즐겁게 향유할 수 있기를 조언한다. 특히나 잘 '노는 나'는 앞으로 더욱더 일의 기회를 무궁무진하게 줄 소중한 나이기에 잘 보살펴야 한다는 말을 덧붙여서. 일하지 않는 여유시간에 나는 무엇을 하며 지내는지, 나는 무엇을 할 때 가장 즐겁고 행복한지, 앞으로 어떤 노후를 보내고 싶은 건지 등에 대한 생각이 ‘노는 나’를 보살피는 일이고, 노는 내가 미친 듯이 놀다 보면 불현듯 일하는 나로 확장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오기도 한다는 것. ‘놀이가 일’이 되지 않더라도 잘 노는 것만으로 자아 만족 혹은 자아실현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방법이기에 손해는 아니라는 것도. ‘노는 인간의 시대’에 우리는 뭘 하고 놀면 잘 노는 걸까?



블로그, 기록의 도구


‘노는 인간의 시대’에 사는 우리는 각자의 취향대로 놀며 여유 시간을 보낼 것이다. 미친 듯이 빠져 놀 수 있는 그 무엇이 내 하나의 정체성이 되기까지 미친 듯이 놀고 또 놀며. 운동이 되었든 악기 연주가 되었든 혹은 요리가 되었든 독서가 되었든, 그 어떤 것이든 그것에 몰입해 시간을 보낸다. 취향과 취미의 영역에도 성장에 대한 욕구는 존재한다. 어제보다 조금 더 나아진 오늘의 미친 놀이였으면 한다. 뚜렷한 목표가 없는 혹은 없어도 되는 놀기지만, 그 즐거운 순간조차 뭔가가 나아졌으면 좋겠다. 향상이라고 할지 성장이라고 할지 모를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으면 한다. 미미할지라도 앞을 향해 가는 변화가 없다면 정체되어 있는 고인 물처럼 느껴진다.


어제와 다른 오늘, 작년과 다른 올해, 몇 년 전과 다른 지금을 선명히 응시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기록이다. 소소한 내 일상이 고스란히 찍혀 있는 앨범 사진첩처럼, 블로그는 기록의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다. '블로그에 육아일기를 쓰는 것은 그 자체로 좋은 부모 공부이기도 하고, 훗날을 위한 알리바이이기도 합니다. 나중에 아이들이 "아빠가 해준 게 뭐야?라고 따지면 블로그 육아일기를 들이대려고요(7쪽).' 저자의 블로그 시작 또한 육아하는 일상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우리들의 역사의 산증인처럼 아이들에 훗날 전시하기 위한 알리바이처럼.


내가 블로그를 시작한 이유도 그러했다. 아이가 태어나고 10년이 지난 어느 날 문득, 우리들의 10년이 허무하게 흩어진 것처럼 느껴졌다. 내 옆의 아이가 내 과거 10년의 산증인이 될 순 없었다. 그동안 아이가 성장했듯, 나의 성장도 분명 존재했을 것이다. 가시적으로 남은 것은 없지만, 너와 나의 기억 속에 자리하고 있을 그 무엇이, 함께 울고 웃었던 순간 너와 나의 추억이. 그때부터 나는 일상을 블로그에 남기기 시작했다. 보잘것없는 우리들의 소소한 일상이 훗날 너와 나의 역사로 남길 바라며. 일기장을 펼쳐 보듯 언젠가 아이가 이곳을 찾아와 자신의 과거를 찾을 수 있길 바라며. 너를 바라본 엄마의 시선과 마음도 함께 엿보길 바라며. 이곳을 내 놀이터처럼 여기며 미친 듯이 이곳에서 놀고 또 놀았다. 타인의 삶을 글로 만나기도 하고, 내 삶을 글로 타인에게 전시하기도 하며 놀고 또 놀았다. 내 하루가 축적되고 있고, 너와 나의 역사가 만들어지고 있으며, 타인에게 다가가기도 타인이 나에게 다가오기도 하며 이곳에서 소통하고 있다. 휘발되지 않고 고스란히 축적될 나의 일상을 남기기 위해 나는 오늘도 이곳에서 글을 쓴다.



꾸준한 실패와 우연한 성공


저자는 말한다. "놀 때 우리는 실패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35쪽)"라고. 놀이의 영역에 있는 대부분은 승패가 있을지라도 우리에게 무관하게 작용하기도 한다. 놀이에서 실패의 경험이 놀이를 그만두게 만든다면 그것은 나에게 놀이가 아닌 것이다. 실패의 경험이 쌓이더라도 꾸준히 할 수 있는 그 무엇이 나에게 놀이인 것이다. 실패해도 그리 큰 좌절감을 주지 않고, 어떤 조건에도 재미있고 즐거운 그 무엇. 심지어 실패에도 자유로운 그 무엇이 나에게 제격인 놀이가 될 것이다.


책에는 롤플레잉 게임에 대한 내용이 잠깐 언급된다. '롤플레잉 게임의 즐거움은 꾸준한 실패와 우연한 성공을 통해 캐릭터가 성장하는 데 있어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아야 성공한다는 교훈을 우리는 게임을 통해 배웁니다(34쪽).' 게임을 하며 숱한 실패를 경험한다. 그럼에도 도전하고 또 도전해 언젠가 우연히 딱 한 번 성공을 경험할지도 모른다. 그 딱 한 번의 성공 경험이 또 도전하게 만들고 게임을 하게 만든다. 놀이도 이와 같다. 꾸준한 실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도전하게 만들고 그러다 우연히 아주 우연히 성공 경험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견디는 실패가 아니라 아랑곳하지 않는 실패를 우리는 놀이를 통해 경험할 수 있다. 우연히라도 만나지 못하는 성공일지라도 그것조차 아랑곳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 진정한 놀이일지도.


저자는 블로그 글쓰기가 그야말로 놀이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블로그에 글을 쓰는 일이나 블로그 글을 읽는 것이나 모두 돈이 들지 않는 일이기에 숱한 실패에 아랑곳하지 않을 수 있다고. 실패라면 내 글을 읽어주는 독자가 없다는 것일 뿐, 읽고 난 후 공감 하나 눌러주지 않고 휙 지나쳤다는 것일 뿐. 내가 쓴 글에 우연히 공감 하나 달리면 그것도 우연히 작은 성공을 이룬 게 될지도 모른다. 또 다른 작은 성공을 위해 내 글을 읽을 독자를 생각하고, 독자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글을 쓸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자신의 성장이 될 것이다. 독자가 많아진다는 것 또한 내가 내 글로써 타인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고. 지난날 자신을 향해 쓰던 글에서 독자를 향해 쓰는 글은 숱한 실패에도 꿋꿋하게 이어갈 수 있는 일종의 놀이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놀이여야만 한다. 일이 아니라. 일이라면 꾸준한 실패에도 지속적으로 이어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재미가 의미가 되기까지 우선 놀이여야만 한다. 미친 듯이 놀다 보면 어느덧 그것이 내 일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그 일이 결국 업이 될지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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