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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절에가다 Jan 04. 2024

온순한 여백의 일상

<내향 육아> 이연진

“심심함과 여백을 사랑한다. 온순한 일상에 쌓이는 착실한 무게감을 즐거워한다.”

<내향 육아> 162쪽        


  

내향인의 육아     


이 책 한 권이 이 책을 쓴 저자와 같아 보인다. 연한 핑크빛이 살짝 도는 책의 겉표지에 창문 하나가 있다. 창문 위에는 ‘내향 육아’라는 문패가 하나 걸려 있고, 그 창문을 들여다보는 우리는 어느 엄마와 아들의 일상을 응시하게 된다. 내 몸의 형태를 그대로 간직하는 푹신하고 부드러운 감촉의 소파에 눌러앉아 한 곳에 시선을 두고 있는 두 사람. 시선을 둔 그곳은 종이 몇 장으로 무한한 세계를 그린 책 속 세상. 책장을 넘기는 손에서 나무의 향이 스미고 엄마의 따스한 목소리에서 아이는 엄마의 사랑을 감지한다. 아이의 시선은 어느덧 이야기 속에서 한참을 머물고 엄마는 그런 아이의 시선을 따라다니며 마음에 순간을 담는다.     


이 책의 저자는 내향인이자 한 아이의 엄마다. 내향인의 기질을 가진 엄마가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면서 겪은 일상을 소소히 기록한 책이다. ‘취미는 달라도 취향은 같은’ 내향인 부부의 아이는 기질상 내향적이겠지만 에너지가 흘러넘치는 활동적인 아들이다. 내향인의 정의와 특성을 책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데, 깊이 들어갈수록 나를 보는 것 같아, 우리를 보는 것 같아 가슴이 콩콩 뛰어 한동안 멍하기도 아리기도 했다. 결혼 임신 출산 육아에 이르는 과정이 각 장마다 진한 물감을 응축한 채 그려지고 있었다. 눈물 한 방울 종이 위에 톡 떨어뜨리면 이내 번져질 아이와 함께한 날들과 엄마라면 겪었을 일들이. 특히 신경이 예민하고 감각이 민감하며 감수성이 높은 그래서 타인에 대한 공감도가 높은 내향인 엄마일수록 이 책은 자신의 이야기로 읽힌다.  

   

저자는 말한다. “육아는 인생의 덫이 아니라 닻이라고(80쪽).” 우리는 엄마로 육아의 세계에 침몰하는 것이 아니라 엄마이기에 내 안에서 침잠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라 일깨워준다. 부모라면 육아의 고됨과 고단함을 경험하게 되고, 어쩌면 그것이 덫으로 여겨져 자신의 삶을 갉아먹고 생의 무게를 스스로 무겁게 짊어져 육아의 세계에 침몰할지도 모르겠다. 육아가 닻이 되어 부모로서 나아가 한 인간으로서 또 다른 우주를 생성하며 자신을 되돌아보고 침잠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시절, 그 시절 이후 닻을 올리고 가벼이 나아가기 위해 잠시 침잠이 필요한 육아의 시절. 자주 침잠하는 시공간이 필요한 내향인에게 아이가 자신의 거울이 되는 일은 가장 쉽게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저자는 넌지시 알려준다.          



“아무것도 안 하다 보면 대단한 뭔가를 하게 돼” —곰돌이 푸     


심심함과 여백을 사랑하는 엄마, 시간의 틈새와 공간의 빈틈을 허용하는 엄마, 속도 아닌 여유를 품에 안고 자 하는 엄마, 그는 ‘곰돌이 푸’ 같은 사람이었다. 아무것도 안 하다 보면 우연히 뭔가를 하게 되고, 그것은 서로의 기억 속에 대단한 뭔가로 남을 수 있다는 것을 깊이 알고 있는 엄마. ‘아이의 지적 성장의 한 축을 심심한 여백’으로 채우고자 한 저자의 따스한 사랑의 마음이 느껴졌다. 편안한 내 공간에서는 누구나 안전함과 안정감을 느끼고, 그 너른 시간 속에서 소위 뇌의 ‘비집중모드’가 작동하기 쉽다. 그때 아이는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생각의 그물을 촘촘히 엮으며 그 안에 한가로이 유영한다. 아이의 지적 성장은 이럴 때 무한히 커진다.

     

내향인 이외에도 대다수 현대인들에게 외부에서 쇄도하는 홍수 같은 자극은 내 삶을 서서히 녹이고 있다. 점점 스마트해지는 세상에 내 손에는 더 스마트한 기계가 내 몸처럼 붙어 다닌다. 근 미래에는 진짜 기계와 인간이 한 몸처럼 재탄생할지도 모르겠다. 눈만 뜨면 이미 자극이 덩어리를 이루어 내 눈앞에 와 있다. 심심함을 찾아 삼만 리 나서야만 할 것 같은 현실에 저자는 쉼 없이 아이에게 심심할 권리를 준다. 흔한 티브이나 빔프로젝터는 집에 없다. 그것들에 시선을 뺏길 자유는 없어 보인다. 그렇기에 부엌은 아이에게 놀이 공간으로, 시선을 뺏길 곳으로 자리했다. 각종 조리 도구로 과학 실험을 하고, 실험을 관찰하며 과학적 원리를 터득하는 공간. 활동적인 남자아이에게 부엌은 정형화된 블록이 가득한 키즈 카페보다 훨씬 다채로운 장난감들이 즐비한 곳이었을 테다. 오늘은 어떤 실험을 해볼까, 오늘 또 이곳은 어떤 세계가 펼쳐질까, 여기서 나는 아무것도 아닌 대단한 뭔가를 하게 될까. 책을 읽어 내려갈수록 내 아이와 나의 과거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심심하고 너른 우리의 일상이 훤히 펼쳐지는 듯하다. 아이의 4세는 우리에게 마을버스 기사님과 함께 동네 몇 바퀴를 매일매일 돌았던 기억으로 남아 있고, 아이의 5세는 매일 투명 엘리베이터를 찾아 수십 번 오르내렸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또 아이의 6세는 겨울이면 동네 언덕에서 까만 봉지 썰매를 타며 누구보다 더 신났던 경험이 있고, 지금도 여전히 아이는 심심함을 친구 삼아 뭘 하며 또 재밌게 놀까 눈이 반짝반짝인다. 뭔가 대단한 무엇을 하는 것처럼.          



책 육아, 이솝우화 ‘바람과 태양’의 태양과 같은 육아     


‘좀 더 은유적이고 순한 방법이 필요했다. 이를테면 넛지 효과 같은 것(114쪽). 나는 흔히들 말하는 책 육아를 열심히 했다. 책이 아이의 평생 친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마음이 허기질 때 내 마음을 그것에 열어 보이고 고픈 마음을 종이 향기로 채울 수 있는 책이란 친구를 만나길 바랐다. 읽어 주고 읽어주고 더 열심히 읽어주고 읽었다. 안타깝게도 아이의 시선보다 깨알 같은 활자에 줄곧 시선을 두고 읽고 있는 나에게 스스로를 칭찬하면서. 결국 엄마의 바람이 초심을 잃게 되고 어느덧 과한 욕심이 되어 아이보다 책의 존재를 사랑하게 되었다. 나는 아이를 책에서 뒷걸음질 치게 만든 장본인. 내 허기진 마음만 책 향기로 그득하게 되었으니, 나는 저자처럼 아이가 책을 품을 수 있게 도와주지 못했다. 은유적이고 순한 방법으로, 이솝우화 ‘바람과 태양’ 이야기의 태양과 같은 방법을 쓰지 못했다. 비바람이 몰아치듯 책을 읽고 읽고 또 읽고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가끔 잠에 빠지기 싫은 날 아이는 같은 책을 수십 번 읽어주길 바랐음에도, 다른 책을 들이밀기도 했다. 나는 태양이 되지 못했다.     


‘좋아하는 것에는 날개가 달리고(112쪽),’ ‘책은 분위기(132쪽)’라는 저자의 말이 오래 남았다. 아이의 선호는 취향으로 이어지고 날개를 단것처럼 좋아하는 그 무엇에 훨훨 자유로이 날 것이다. 책을 좋아하게 되면 책을 읽는 겨드랑이에는 날개가 달릴 것이다. 내 앞에 펼쳐진 이야기에 빠져 이 세계 저 세계에서 훨훨. 굳이 그곳에 가지 않아도, 그곳 인물들을 직접 만나지 않아도 그곳 그들의 마음속으로 훨훨. 그러기 위해서는 좋은 기분으로 향긋한 종이향을 맡을 수 있어야 한다. 편안히 고요히 책 속으로 침잠하는 그 순간의 분위기가 아이를 책으로 이끌 것이니.     


저자의 책 육아도 쉽지 않았다고 한다. 활동적인 남자아이가 가만히 앉아 책을 보는 것보다 책을 덮고 놀고 싶어 하는 것은 본능. 저자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책이 아니라. 아이의 취향을 존중했고, 그 취향을 따라가며 책은 보조 역할을 하게 했다. 그날의 부엌 실험이 재미있었다면 그에 관한 과학 책을 보여주고 읽어줬고, 때로는 자신이 그 책들을 즐겁게 읽는 모습을 보여줬다. 부엌 실험실에는 한두 권씩 아이가 즐겨 읽은 책을 살포시 두었고, 잠자리에서는 두런두런 일상 이야기, 책 이야기를 하며 ‘책밤’(149쪽)을 보냈다고 한다. 어느덧 아이는 책을 읽는 아이로 자라고 있고, 책 속 세상에서 자유로이 훨훨 날고 있다고.

내향인 엄마의 섬세한 육아에 감응하는 아이, 그들의 온순한 일상이 오롯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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