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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절에가다 Mar 16. 2024

<그릿 육아> 이타적인 목적의식은 그릿을 지속하게 한다

아이의 정체성은 올해도 리코더인

학교 가는 재미가 생겼단다. 작년부터 학교 음악 시간마다 친구들 앞에서 리코더를 부르기 시작하더니, 아이 따라 친구들 앞에서 리코더 연주를 들려주는 여자 친구들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다고. 리코더 재야의 고수들이 하나 둘 출현했다고 아이는 전했다. 처음에는 반 친구들 중에 본인이 가장 잘 부른다고 하더니, 학년 말에는 여자 친구 한 명의 이름을 대면서 고개를 절레절레했다. “걘 진짜 손가락이 안 보여..”


올해도 역시나 아이는 음악 시간에 친구들 앞에서 리코더 연주를 했다고 한다. 학년이 시작하고 일주일도 안 되는 시간인데 말이다. 쉬는 시간에 담임선생님께 미리 말씀드려 허락을 구하고 수업 시간에 리코더를 불렀다고 했다. ‘인생의 회전목마 ost’ ‘캐리비안의 해적 ost’ ‘이웃집 토토로 ost’ 등등을 친구들에게 들려줬다고 한다. 신학기 초부터 반 아이들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제대로 보여준 듯, 아이는 스스로 학교 가는 재미를 만들어가고 있다.


“다음 음악 시간에는 어떤 곡을 들려주지?”


매년 친구 관계로 불편을 겪었던 아이가 이제는 작은 사회인 학교에서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 얼추 감을 잡은 듯 보인다. 덩치는 또래보다 크면서 남자아이들의 장난을 제대로 응수하지 못하고 매번 힘들어하며 지냈다. 친해지고 싶어서 장난을 거는 아이를 이해하지 못했고, 비꼬아 말하는 아이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학교보다 더 작은 사회인 우리 가정은 비슷한 어른 둘과 어른 둘을 똑 닮은 비슷한 아이 하나가 지내고 있고, 비슷한 종족은 서로가 서로를 잘 알고 있으니 그리 갈등이나 불편함이 없이 지낸다. 그래서 집은 언제나 고요하고 편안하다. 형이나 동생 때문에 속상하거나 시끌시끌한 상황이 없으니 가정을 벗어나 만난 학교 사회는 아이가 적응하기에 쉽지 않았을 것이다. 말뿐인 간접 경험은 그리 와닿지 않고, 직접 경험만이 아이의 마음속에 남을 것을 알면서도 시간의 도움으로 아이가 좀 더 성장하길 기다리는 내 안일한 마음도 없지 않았다.


이제 올해로 아이는 5학년. 시간이 아이를 그리고 나를 도와주리라 믿어야 했던 시절들이 지나 아이는 벌써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다. 다행히 아이는 그동안 시간의 도움을 받아 잘 크고 있는 듯 보인다. 경험치가 쌓이고 있다고 생각하면 될까. 매년 달라지는 담임 선생님과 반 친구들 그들의 만들어내는 풍경 그리고 분위기. 지금까지 네 분의 선생님을 만났고, 네 분의 선생님이 각자의 방식으로 만들어내는 교실의 분위기를 경험했다. 그 안에서 스무 명이 넘는 아이들과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를 배웠고 배우고 있다. 마치 한 명의 지휘자와 스무 명이 넘는 단원들이 일 년 동안 하나의 오케스트라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아이는 올해도 리코더를 맡은 오케스트라 단원이다. 반 친구들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는 방법으로 리코더 악기를 이용하고 있다. 올해도 역시나 음악 시간의 목표는 리코더 연습인 듯 보였고, 아이는 반 친구들에게 좋은 곡들을 들려주기 위해 리코더 연습에 매진하고 있다.


간단한 악기일지라도 어떤 악기든 손에 익을 정도로 연습을 해야 하는 것은 자명하다. 아무리 간단한 악기에 쉬운 악보라도 내 손으로 직접 해보지 않으면 제대로 된 소리를 내기 어렵다. 특히 다른 사람들 앞에서 연주하는 것은 더더욱 연습을 요하는 일이다. 아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곡을 직접 연습하면서 즐겁고, 그 연습한 곡을 친구들에게 들려주는 경험을 하면서 더욱 행복해한다. 작년부터 일 년이 넘도록 아이가 집에서 혼자 리코더 연주를 하게 하는 것은 앤젤라 더크워스의 <그릿>에 나오는 것처럼, '이타적인 목적의식'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음악 시간마다 내가 연습한 곡을 친구들에게 들려주겠다는 그 의지가 리코더 연주를 지속하게 하고, 열정적인 끈기가 발현되면서 어제보다 더 성장한 자신을 만나게 되는 것.


이 모든 것이 음악을 사랑하기에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릿을 키우기 위해 가장 선행되어야 하는 '관심사'찾기에서 아이는 음악에서 그것을 찾았다. 아름다운 곡은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귀를 즐겁게 한다는 것을 아이는 일찌감치 알고 있다. 그 아름다운 소리를 스스로 연주하면서 만들어내는 경험은 아이에게 무한한 행복감을 주고 있기도 하고. 자신의 행복을 반 친구들에게 공유하는 것에서 아이의 음악 사랑은 지속되고 있다.


열 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빠른 곡만 선호하던 아이는 이제 본인이 듣기에도 아름다운 곡들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빠른 곡 연주만이 멋지다고 생각했던 아이는 방학 동안 여러 오케스트라 공연을 봐오면서 귀가 편안한 아름다운 곡들도 좋아지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작년과 다르게 올해는 반 친구들에게 아름다운 곡들을 들려주기로 마음먹었다고 하면서. 반 친구들 중에서 '엘리제를 위하여'라는 곡을 신청한 친구를 위해서 들려주기도 했다고 한다.


아빠 회사에서 선물로 준 입학 선물 꾸러미에 있던 ‘모닝글로리’ 리코더를 여전히 애용 중이다. 며칠 전 나는 좀 더 음악인에 가깝게 보이도록 ‘야마하’ 리코더로 바꿔줬다. 소리가 다른 것 같다면서도 오래 자신의 손때가 묻은 모닝글로리 리코더를 놓기가 어려운 듯 보였다. 뭐든 길들이는 과정이 필요하지만, 그것 또한 아이의 의지와 선택이니 아이 의향을 존중하기로 했다. 손때가 묻은 오래된 것과 이별하는 과정도 필요하고, 새로운 친구와 적응하는 시간도 필요하니까. 사실 도구가 뭐가 중요하겠나, 몇 천 원짜리 리코더로도 가치를 매길 수 없는 연주를 엄마에게 들려주는데 말이다. 아이의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한다. 다시 오지 않을 지금 이 순간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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