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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절에가다 Oct 28. 2024

봉쥬르, 파리

파리 0일차

(유로스타, 옆자리 마이애미출신 음악하는 아저씨)

유로스타 기차역, 안녕 파리

유로스타를 타고 파리로 이동하기 위해 런던의 세인트팬크라스(St.Pancras International) 역에 도착했다. 어느 나라나 기차역은 짐을 들고 어딘가로 이동하는 사람들이 붐비는 곳이다. 이곳은 유럽 내 5개 나라(영국,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독일)를 기차로 이동할 수 있어 낯선 언어들이 떠다니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는 기차 출발시각보다 2시간 일찍 도착했다. 여행은 기다림의 연속이라는 암묵적 사실에 동의하며 역 안에서 저마다의 시간을 보냈다. 스마트폰이 생기고 나라마다 지역마다 사람들의 모습이 동일해져 간다는 것을 해외여행을 하면서 체감한다. 대학 때 캐나다에서 잠시 영어 공부를 하던 시절, 당시 내게 생경한 풍경 중 하나였던, 지하철 안에서 거친 질감의 페이퍼백을 꺼내 읽던 그들의 모습은 이제 사라진 듯 보였다. 종이로 된 책, 신문 그리고 종이 기차표까지, 그것들은 이제 손 안의 작은 거대한 세계에 쏙 빨려 들어가 있다. 그럴수록 나는 보이지 않는 그 무언가에 묘한 저항감을 느끼며 이곳 여행지에서만큼은 스마트한 세계에서 벗어나려 한다. 내 곁에 있는 아이의 시선을 따라가며 이 공간 함께 하고 있는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 모습을 묘사하기 바쁘다.


유로스타에 탑승 완료.

2명씩 앉는 구조라 남편과 아이를 함께 자리하게 하고 나는 뒷자리에 혼자 앉았다.

내 옆에는 좌석 한 자리가 부족해 보이는 외국인 아저씨가 앉아 있었다.

가깝게 자리하고 있는 옆사람과 (특히 비행기나 기차 옆자리 혹은 Bar 옆자리?) 인사하고 가벼운 대화를 나누는 것이 그들의 문화라는 것을 나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옆에 앉은 사람에게 눈인사라도 해야 서로가 무해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표 같은 것이라 들은 적 있다.  


머쓱하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척 'Hello'라고 하며 앉았다. 아저씨도 눈인사를 하며 내게 ‘Hi'라고 한다. 그러더니 노트북 선들과 씨름하며 낑낑거린다. 그는 좌석과 좌석 사이 정중앙에 위치해 있는 콘센트를 찾고 있는 것 같았다. 복도 쪽에 앉아 있는 나는 몸을 일으키고 다시 굽히고서 콘센트 구멍을 찾아갈 곳 잃은 코드를 제자리에 끼워줬다. 'Thanks'라는 화답이 오고 그렇게 우리는 짧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Where are you from?" 내가 먼저 운을 띄웠다. "I'm from Miami in Florida" 그러고는 노트북을 보여주며 자신은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을 낯선 동양 아줌마에게 소개하는 그의 얼굴은 참 행복해 보였다. “Wow!" 라며 추임새를 살짝 넣고 "I'm from Korea" 그리고 나는 가족과 여행 중이라고 답했다. 앞 좌석에 앉아 있는 아이를 가리키며. 그리고는 런던에서 파리로 간다는 말도 덧붙였다. 마이애미 출신 음악하는 아저씨는 입꼬리 양끝을 한껏 올리며, 자신도 어릴 때 엄마와 여행을 많이 다녔다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이렇게 그와 나의 짧은 대화는 끝이 났다. 아저씨는 헤드셋을 끼고 음악 작업에 돌입하고, 나는 두 눈을 지그시 감고 곧 만날 파리를 상상했다.



파리에 곧 도착한다는 소식은 기차 안 여기저기 분주해지는 소리로 알 수 있었다. 앞자리에 앉은 아이는 좌석 사이 틈 사이로 보이는 엄마에게 싱긋이 웃음을 지어 보인다. 파리를 상상하며 눈을 감고 있었던 나는 파리보다 더 아름다운 아이의 눈웃음에 마음이 녹아내린다. 아이는 자리에서 곧장 일어나 내게 오더니 내 얼굴에 자신의 입을 맞추었다. 아이의 그 입맞춤이 어떤 의미인지 아이가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엄마는 알 수 있다. 아이의 시선이 줄곧 내 옆자리에 앉은 외국인 아저씨에게 가 있었으니. 자신의 존재감을 한껏 드러내며 엄마에게 뽀뽀 세례를 하는 아이의 마음. 자신의 일을 행복해하는 마이애미 출신 음악가 아저씨만큼, 나도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더없이 행복해지는 순간을 지금 이 순간 파리에 도착하면서 만났다.



드디어 파리 북부역(Gare du Nord)에 도착. 신사의 나라 영국에서 2시간 반 만에 프랑스 파리에 도착했다. 이제는 헬로가 아닌 봉쥬르를 몸에 장착해야 한다. Bonjour Monsieur! Bonjour Madame! Bonjour Paris!


새로운 여행을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랄까. 런던 피쉬앤 칩스에 익숙해지려 하던 찰나, 또 다른 세계에 불시착한 느낌이 든다. 우리 셋은 며칠 전 여행을 막 시작하던 그때처럼 캐리어 하나씩 맡아 기차역을 빠져나왔다.


저녁 6시 즈음 만난 파리의 첫 얼굴은 뭐랄까 어둑어둑했다. 해가 지고 있었고 어둠을 밝히는 불빛은 그리 밝지 않았다. 파리의 저녁거리가 더욱 어둡게 느껴졌던 것은 바로 기차역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흑인들 때문이었다. 우리를 인솔하고 있는 가이드는 파리에서는 가방 소매치기범들을 더 조심해야 한다며 연신 주의를 주었다. 기차역 곳곳에 포진해 있는 흑인들, 그들의 시선으로 인해 아이는 파리와의 첫 대면을 몹시 불편해 하기도 했다. 이것이 우리가 만난 파리의 첫날 밤의 풍경이었다.


'아들아, 내일 아침 파리는 또 다른 얼굴로 우리를 맞을 거야. 파란 하늘에 우뚝 솟아 잇는 아름다운 자태의 에펠탑을 보면 생각이 달라질 거야. 아니다! 그전에 조식으로 먹을 크로와상에 불편했던 마음이 녹아내릴지도 몰라'


파리의 첫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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