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1-1일 차
(모닝 크루아상, 루브르 박물관)
어제 저녁 인솔자가 던진 한 마디를 기억해두고 있었다.
“아침 조식에 꼭 크로와상을 드셔야 해요!"
런던에서도 호텔 조식 진열대에 크로와상이 등장했었다. 두 입 크기 정도로 작은 크기에 겉은 바삭하면서 속에서는 버터향이 진하게 올라오는 고소한 크로와상. 3일을 아침마다 음~하면서 그것을 입으로 가져가기 바빴다. 며칠 전이었지만 당시 런던 크로와상에 대해 인솔자는 한마디 말이 없었는데, 여기 파리 그리고 크로와상에 대해 자신의 여행 역사를 펼쳐 보이며 강조한다. "저는 파리 첫날 아침으로 먹는 크로와상이 너무 기대되요!"
이미 내 인생 잊을 수 없는 크로와상을 런던에서 맛보았지만, 이것보다 더 감동적인 파리 크로와상이 기다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른 아침 식당으로 가벼운 발걸음을 옮겼다. "엄마는 꼭 커피에 크로와상만 먹을 거야."
런던에서 먹었던 사이즈보다 3배는 더 큰 크로와상이 쟁반 위에 가득했다. 이것이 프랑스의 자부심 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커피 한 모금 홀짝이고서는 손바닥보다 큰 크로와상 한쪽을 베어 물었다. 와~ 버터향이 입 안에서 진하게 퍼지고 얇은 층이 켜켜이 채워져 있는 속이 폭신했다. 인솔자가 왜 파리 첫끼로 크로와상을 기다리는지 알 것도 같았다. (먹느라 사진으로 남기지 못해 아쉽기만 하다. 조식을 4번이나 먹었는데 한 번도 사진기를 들이대지 않을 정도로 맛있었고, 현지 파리지앵이 되어가는 듯했다)
파리 첫날의 일정은 꽤 빡빡해 보였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에펠탑 그리고 저녁 세느강 유람선까지. 점심식사로 56층 몽파르니스 타워 식당까지 예약되어 있었다. 단체 관광의 빛나는 묘미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과한 욕심이라고 해야 할까. 이 일정을 하루 만에 어떻게 소화할지가 또 하나의 볼거리 같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 방식의 자유일정이었다면, 3일은 걸릴 일정이라는 생각에 갸우뚱하면서도 내심 흐뭇하기도 했다.
루브르 박물관에 도착했다.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라는 곳. 영국에서 들렀던 영국 박물관(대영 박물관), 이탈리아 바티칸에 위치한 바티칸 미술관(박물관) 그리고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이 세계적인 3대 박물관이라고 한다. 이번 여행에서만 그중 두 곳을 여행하다니, 우리 셋은 고민 없이 다음 여행지를 선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영국 박물관에서도 현지 가이드는 아쉽게도 우리가 박물관 소장품들을 티끌만큼 본 것이라 우스개 소리를 했다. 루브르 박물관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1시간 남짓. 루브르 박물관 안내만 담당하는 또 다른 가이드의 첫마디는 이러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보러 오신 거죠?"
소장품들을 1초에 한 점씩 눈으로 찍으며 돌아다녀도 몇 개월은 걸릴 거라는 말이 이곳의 규모를 가늠하게 했다.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보러 가는 길에 우리는 '밀로의 비너스' 조각의 물 흐르는 듯한 아름다운 자태를 보았고, 승리의 여신 '사모트라케의 니케'를 감상했다.
그리스신화에서는 아프로디테라고 불리는 로마 신화의 비너스 여신의 조각상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밀로스섬이라는 곳에서 발견되어 그렇게 이름이 붙여진 '밀로의 비너스'. 아이는 그리스로마신화 만화책 전집을 지금껏 즐겨보고 있는데, 만화에서 보았던 아프로디테와 조각상이 사뭇 다른 모습에 난감한 듯 보였다. 벗은 상체에서 확연히 보이는 복근, 팔 한쪽은 떨어져 나가 있고 다른 쪽 팔은 반도 남아있지 않은 모습. 옷을 두르고 있던 천 조각은 흘러내리고 있고... 사실 왜 이 조각상에 사람들이 몰려 있는지 나도 의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8등신 비율에 얼굴은 무척 작고 허리를 비스듬히 틀고 있는 곡선에서 고대 그리스인이 지향하던 아름다움이 느껴진다는데, 내 시선은 줄곧 그녀의 복근에 가 있었다. 탄탄하게 형성되어 있는 배의 근육이 비너스를 더 건강하게 보이게 하는 것 같았고, 심지어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기립근은 그녀를 건강미인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잘 빚어져 있었다.
또 하나 루브르에서 유명한 조각상인 '사모트라케의 니케' 주변도 역시나 인산인해였다. 사실 계단을 오르기 전 멀찍이서 니케의 모습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이 훨씬 장관이었다. 뱃머리 위에서 날개를 편 채 막 내려앉는 듯한 모습은 마치 니케가 이곳에 살아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니케 여신의 조각상만 세워져 있었다면 루브르의 다른 조각상들과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선채 위에 우뚝 솟아 있는 날개 달린 여신의 모습을 특히나 계단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위치에 전시했다는 점이 이 조각상을 더더욱 살아있게 만드는 것 같았다. 오른쪽 날개는 오랜 기간 동안 복원으로 완성한 것이라고 했다. 아이는 복원이라는 말에 살짝 실망한 듯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기원전 2세기 초에 만들어진 유물을 지금껏 관리하고 보관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일이라는 사실을 아이에게 알려주기도 했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방이 하나 나왔고, 드디어 희대의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만나러 방을 따라 걸어갔다. 루브르 박물관에 왔다면 꼭 보고 가야 할 그림인 '모나리자'를 보기 전에 벽을 따라 다빈치의 작품들이 걸려 있었다. 다빈치 작품 중 기억에 오래 남은 그림은 '성 안나와 함께 있는 성 모자상(The Virgin and Child with Saint Anne).' 카메라 렌즈로 담아낼 수 없는 파란 색감이 인상적이었다. 하늘도, 성모의 치맛자락도 채도는 다르지만 파란 빛깔로 표현되어 있어, 파란 하늘을 바라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기 예수가 한 발로 슬쩍 양을 타고 있는 모습도 익살스러웠고, 아기 예수의 통통한 볼은 만져보고 싶을 정도로 입체감이 있었다. 이 작품의 성모, 성 안나 얼굴 모두 '모나리자'의 얼굴과 비슷하게 느껴지는 것을 보니 곧 모나리자를 만날 순간이 다가왔음을 직감하기도 했다.
루브르 측에서 까만 배경에 '모나리자' 작품을 둔 이유가 있겠지? 마치 밤하늘에 한 점의 별처럼 모나리자의 얼굴이 영롱하게 빛나고 있는 듯 보인다. '지금은 사람이 많지 않은 거예요'라는 가이드 말에 이 작품의 인기를 실감했다. 남편은 아이에게 산교육을 시켜주기 위해 그 많은 인파를 비집고 들어가 틈새 공략을 했다. 아이는 '모나리자' 앞에서 인증샷 여러 번을 찍고 나서야 빠져나올 수 있었다. 대체 이 그림이 왜 유명한지, 왜 기어이 인증 사진을 찍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듯한 아이의 흐린 눈동자가 찍힌 사진 속에 있었다. 나는 아이의 흐린 눈동자에 반응해 가이드에게 질문 하나를 슬쩍 던졌다.
"이 초상화가 다빈치 자화상이라는 말이 있던데 맞나요?"
그림에 대한 여러 설이 난무하다는 말을 들었다. 이 그림의 주인공 '리자 부인'이라는 정설 이외에 다빈치가 어머니를 그렸다는 말도 있고, 동성애라는 소문이 있어 자화상을 그렸다는 말도 있다고. 이 작품이 한번 도둑맞아 더 유명해졌다고 알려져 있지만, 모호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이 그림에 대한 사람들의 호기심이 작품의 가치를 높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루브르 박물관의 드농관을 빠져나오기 전에 만나게 되는 유명한 두 작품이 있다. 자크루이 다비드의 '나폴레옹 대관식' 그리고 들라크루아의 '자유의 여신'이다.
하급 귀족 출신이었지만 전쟁의 공으로 결국 스스로 황제의 지위에 오르게 되는 인물인 나폴레옹. 그에 대한 조각과 그림 작품들이 프랑스 곳곳에 전시되어 있다.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된 '다비드의 대관식'이라고도 불리는 이 그림은 우리에게도 꽤 친숙한 작품이다. 프랑스 역사에 대한 다큐멘터리에서 자주 등장하는 그림 중 하나. 나폴레옹 대관식에 나폴레옹 자신이 조세핀 황후에게 왕관을 씌워주는 듯한 장면이 오늘날 사람들에게 의아함을 자아냈다. 하지만 실제로 나폴레옹은 교황에게서 왕관을 빼앗아 직접 머리에 왕관을 썼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당시 영리한 화가였던 다비드는 후대에 기리기리 남겨질 이 그림을 마치 황후에게 자신의 왕관을 씌워주는 자상한 남편 퍼포먼스처럼 나타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나폴레옹은 이 그림을 무척 아끼고 좋아했다고 알려져 있다고 한다. 작은 키에 대한 열등감인지 몰라도 10미터에 이르는 이 그림을 특히나 사랑했다고.
우리들에게 친숙한 또 하나의 마지막 작품, '자유'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중학교 사회책인가 미술책인가 교과서에서 봤던 기억이 있다. 짓궂은 친구 몇 명이 그림 속 여인의 겨드랑이 털을 까만 수성펜으로 덧칠해 우스꽝스러운 그림으로 만들어버린 기억도 함께.
사회책에 나왔다면 프랑스혁명에 관한 부분에서였지 않을까. 사실 이 그림은 프랑스 시민혁명이 아니라 1830년 7월 혁명을 나타내는 것이라 했다. 자유의 여신상과 비슷한 모습으로 한 손에는 프랑스 삼색기를 하늘로 치켜들고 있고, 다른 손에는 기다란 총을 들고 있다. 앞서 봤던 '밀로의 비너스'처럼 맨발에 상반신이 벗겨져 있는 모습이기도 하다.
이 여인이 쓰고 있는 빨간 모자가 '프리기아'라고 하는데, 프랑스에서 자유를 상징하는 것이라 한다. 올해 2024년 파리 올림픽의 마스코트가 프리기아였다고. 어느 한 나라의 문화를 알려면 그 나라의 역사를 알아야 하고 역사를 알면 그들의 생각과 행동을 이해할 수 있다. 약 200년 전 그려진 이 그림에서 오늘의 파리 모습을, 그들을 어렴풋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안녕, 프리기아!
여행 Tip
- 파리에서는 꼭 크루아상을 드셔보는 걸 추천합니다. 자유 여행을 할 당시 바게트만 주구장창 먹었었는데요, 버터향의 풍미가 진한 크루와상이 오래도록 기억날 듯합니다.
- 루브르 박물관에 Cloakroom 이라고 쓰여진 물품보관소에 짐을 보관해두고 다니시면 편할 것 같네요.
- 루브르 박물관은 특별히 프랑스 공인 가이드만 안내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미리 일반 사설 업체의 공인 가이드 투어를 예약해도 좋을 것 같네요. 저희는 1일 자유 일정이 있을 때 '유로자전거'라는 사설 가이드 투어를 신청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