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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절에가다 Oct 24. 2024

다시 또 만날 그때까지, 런던 안녕

런던 3일 차.


'마지막'이라는 말은 항상 애달프다. 마지막 소식, 마지막 인사, 마지막 식사, 마지막 여행 등 어떤 말 앞에 붙게 되는 '마지막'이라는 말은 뒷따라오는 말을 괜스레 슬프게 만든다. 오늘이 바로 영국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이틀을 꼬박 런던 시내도 구경했고, 런던 외곽 마을들도 들렀었지만 이제 영국과 작별인사를 하기에는 너무나 불충분하고 불성실했다. 여행자 중에서도 단체 관광객은 잘 짜여진 일정에 맞춰 그 누구보다 알차고 성실하게 시간을 보내지만, 뭔가 모를 여한이 남는 건 왜일까.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틈새도 허용하지 않는 치밀함이 관광객의 시간에 채워지지만, 틈을 발견해 그 틈 사이로 나만의 시간을 욱여넣고 싶은 충동이 자주 번지곤 했다. 일상을 떠나온 지 3번의 밤이 지나 오늘, 영국 런던에서 마지막 날, 하지만 다행히 이 마지막 작별인사를 각자의 방법으로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되 시간의 틈 사이로 나를 끼워 넣고 싶었던 묘한 충동은 잠잠해질 수 있었다.



내셔널 갤러리 입구

그날 오후 3시경 유로스타를 타고 프랑스 파리로 넘어가야 하는 일정 때문에 오전 3시간가량 런던에서의 마지막 자유 일정이 모두에게 주어졌다. 코벤트 가든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분들도 있었고, 우리처럼 '내셔널 갤러리'에 가서 그림을 보고 오려는 분들도 있었다.


자유일정이 시작되자마자 우리 셋은 단체 관광객에서 자유 여행자가 되어 거리를 누볐다. 코벤트 가든에서 트라팔가 광장까지는 걸어서 10분이 걸리지 않았다. 넬슨 제독 동상이 우뚝 솟아 있는 트라팔가 광장 앞쪽에 멋들어지게 서있는 '내셔널 갤러리'가 있었다.


(이번 여행 중에 '내셔널 갤러리'에 대한 웃지 못할 아니 너무 웃어서 배를 잡았던, 우리 가족 에피소드가 하나 생겨서 이곳에 남겨본다. 런던에서 첫 식사 '피쉬 앤 칩스'를 함께 여행 온 다른 분과 먹게 되었다. 함께 여행 중이지만 같은 테이블에서 함께 식사를 하는 건 꽤 어색하고 불편한 일이다. 우리 가족은 셋이기에 혼자 여행 중인 여자분과 자주 함께 식사를 했다. 그 분과의 첫 식사. 그 어색한 분위기에 튀긴 생선이 어디로 넘어가는지도 모르는 찰나, 남편과 나는 몇 마디를 나눈다. 남편이 툭 던진다 (대구 사투리를 진하게 풍기며). "트라팔가 광장 앞에 서있는 게 대영 박물관 아이가! 대영 박물관! 야! 공부 좀 해라!" 안 그래도 어색한 공기 속에 나는 쓴웃음으로 응수한다. "컥, 나랑 지금 싸우자는 거제?" 내 옆에 있던 여자분은 말없이 튀긴 생선과 튀긴 감자를 씹고 있었다. 트라팔가 광장 앞에는 내셔널 갤러리가 서있다.)


내셔널 갤러리는 무료입장이지만 워낙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기도 해서 그 전날 남편이 미리 연락해 둔 덕분에 많이 기다리지 않고 들어갈 수 있었다.

(내셔널 갤러리 Tip: 미리 전날 온라인으로 예약하고 가면 pre-booked 줄에 서서 빨리 들어갈 수 있어요. 이른 시간은 다 차서 11시 예약을 했는데, 시간과 상관없이 빨리 도착하면 바로 들어갈 수 있었어요)


프랑스뿐만 아니라 영국도 박물관에 들어가기 전 꼼꼼하게 가방 검사를 한다. 검사를 받기 전에 줄을 서 있는 우리를 향해 관리인이 무슨 말을 하는데, 와 영국 영어 참 난감했다. 우리가 매고 있는 배낭을 보고 뭐라 말하는 중인데, 내 얼굴은 시뻘게지고 있었고 우리는 관광객임을 한껏 티 내고 있었다. 눈치 빠른 남편이 주위 사람들을 보더니 배낭을 앞으로 매기 시작했다. 그제야 우리는 그들 문화의 에티켓을 장착하고 들어갈 수 있었다.


1층 그랜드 피아노 앞 일반인 연주자

오디오 가이드도 없고, 도슨트 안내도 없어 그 많은 그림들을 그냥 눈으로 찍고 지나가야 했다. 엄청난 그림들 앞에서 난감해할 찰나, 남편은 휴대폰을 꺼내 검색을 하더니 몇몇 작품만 보면 된다며 우리를 가이드했다. 갤러리라는 공간에서 그림들을 가까이하는 것만으로도 아이에게 충분히 좋은 자극이 될 것 같았다. 그림을 보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이곳을 찾아온다는 사실만으로도 아이의 인생에서 커다란 공부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심하게 그림들을 훑으며 지나가다 아이의 시선을 한껏 잡은 그것이 나타났다. 그랜드 피아노 그리고 피아노 연주자. 미술과 음악의 협연이라고 해야 할까.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들의 예술세포를 한껏 고양시키는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아이의 음악세포는 아이를 그 공간에 한껏 머무르게 했다. 한 곡이 끝나면 청중들과 살며시 눈 맞추고 인사한 뒤 다른 곡을 이어가는 연주자를 아이는 오래 지켜보았다.

아이는 말했다. "엄마, 나 목표가 하나 생겼어. 나중에 꼭 여기 다시 와서 피아노 연주할 거야."

그림을 보러 왔다가 음악을 알아버렸다. 그림과 음악, 그 예술의 향연 속에서 아이에게 무언가가 새록새록 자라고 있었다.


내 기억에 남았던 작품들, 고흐‘Two Crabs’, 에드가 드가‘Young Spartans Exercising’
아이 기억에 남았던 작품들, 페르디난드 호들러 'The Kien Valley with the Bluemlisalp Massif', 폴 들라로슈 '제인 그레이의 처형'

내셔널 갤러리 200주년 기념 '반고흐 특별전'을 하고 있었지만, 미리 예매하지 못해서 들어갈 수 없었다. 하지만 다행히 곳곳에서 고흐의 그림 몇 점을 볼 수 있었다. 그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그림, 'Two Crabs'. 아이가 한국에 돌아가면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이 간장게장이기도 했고, 이 그림의 배경색 초록이 내 시선을 끌었기 때문이다. 푸른색과 붉은색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이 작은 사이즈의 고흐 그림이 좋았다. 고흐는 게 한 마리를 가지고 엎어놓았다가 뒤집어 놓았다가 하면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다음 그림은 에드가 드가의 'Young Spartans Exercising'이란 제목의 그림인데, 여자 아이들과 남자아이들이 아주 순수한 모습으로(?) 함께 놀고 있는 듯한 장면이 재미 었었다. 스파르타인들은 어릴 때부터 남녀 구분 않고 이렇게 전쟁놀이를 하며 지내지 않았을까라며 아이와 이야기를 나눴던 그림.

아이가 가장 좋았다는 그림은 페르디난드 호들러라는 화가의 'The Kien Valley with the Bluemalisalp Massif'. 좋았다고 하는 이 그림을 보니 참 내 아들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의 풍경인 산과 숲 나무들이 그려져 있고, 집 근처에 있는 북한산 같은 바위산이 멀리 서 있다. 등산을 할 때마다 매번 꼭 산 정상에 다다르고자 하는 아이의 마음을 얼핏 느낄 수 있는 그림이기도 했다.

갤러리에서 나가기 전에 우리 시선을 끌었던 마지막 그림, 폴 들라로슈의 '제인 그레이의 처형'. 이 그림은 크기만으로도 공간을 압도했다. 굳이 제목을 보지 않아도 처형을 막 앞둔 장면 같았고,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한 여인이 하얀 천으로 눈이 가려진 채 더듬거리는 듯한 두 손이 보는 이에게 안타까움을 더했다. 아이는 흔들리는 눈동자로 이 그림에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슬픈 역사적 사실이 그림 속에 그려져 있겠지만 배경을 모르더라도 이 그림은 충분히 우리들의 마음을 아리게 했다.


Pret-A-Manger 카페, 점심 식사

런던 내셔널 갤러리를 마지막으로 런던과 작별인사를 하고 나왔다. Pret-A-Manger 라는 오가닉 커피와 프레쉬한 샌드위치를 파는 곳에서 우리 가족은 한국인의 식성을 한껏 뽐내고 나왔다. 점원이 놀라며 "이걸 다? 와! 너네! 고마워"라고 할 정도였으니. 요거트가 2개, 파스타가 2개, 샌드위치가 1개, 치킨 샐러드가 1개 그리고 콜라. (이렇게 먹어도 아이는 살이 쏙 빠져왔다)


코벤트 가든에서 만난 연주자들

자유 일정의 시작 장소, 코벤트 가든으로 다시 왔더니 작별인사를 했다고 생각했던 런던이 다시 인사를 하는 기분이었다. 유료 화장실 옆 중정에서 음악 연주가 한창이었다. 바이올린과 첼로 4중주. 흑인 연주자가 메인이라며 아이는 유심히 그녀의 연주를 지켜보았다. 심지어 아이가 가장 즐겨 듣는 곡, '캐리비안의 해적 ost'를 연주하는데, 아이는 박수로 환호했다.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한 지 반년이 넘은 아이가 느끼는 그들의 연주는 사뭇 다를 듯했다. 연신 와와를 외치는 아이의 모습에 남편은 마지막 남은 동전 5파운드를 그들에게 기부했다.






여행 Tip

- 트라팔가 광장에 있는 내셔널 갤러리를 가실 때는 하루 전에 미리 예약을 하고 가시면 빠르게 입장할 수 있습니다. 내셔널 갤러리도 무료 입장이 가능합니다.

- 미술관 안에서 배낭은 앞으로 매는 것이 의무라고 합니다. 

- 내셔널 갤러리 안 그랜드 피아노는 누구나에게 열려 있다고 합니다. 

- 런던 곳곳에 Pret-A-Manger 푸드 체인점이 보이는 데요, 기다리지 않고 프레쉬한 식사를 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간단히 커피와 샌드위치를 드셔보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 코벤트 가든 내에 유료 화장실이 있습니다. 1.5파운드였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그 앞 중정에서 미니 음악회를 감상하는 것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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