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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절에가다 Nov 29. 2023

일구이무(一球二無)

<인생은 순간이다> 김성근

“야구는 매 게임이 순간의 움직임으로 결정된다.

투수가 던진 볼이 타자와 만나는 그 순간 승부가 난다.”

<인생은 순간이다> 182쪽

 

 

현재 11살인 아들이 야구를 즐겨본다. 현재 시즌오프 기간이라 아이는 무료한 나날을 근근이 보내고 있겠으나, 그런 만큼 내 일상은 평온해졌다. 매일 아침 아이는 눈뜨면 전날 야구 경기 결과를 찾아보고 본인이 응원하는 팀의 데이터를 분석하는 게 하루의 시작이었다. 하교 후 전날 야구 하이라이트 영상을 20분 정도 보는 게 하루의 낙이기도 했고. 주말이면 온 가족이 거실에 모여 벽면 가득 띄워진 화면으로 라이브 경기를 시청하기도 했다. 공 하나에 울고 공 하나에 웃는 일희일비의 순간들이 허다했다. 수비수의 어이없는 실책에, 제구가 안 되는 투수의 사투에 아이는 자주 탄식했고, 역전포 홈런 한방으로 전세가 뒤집어졌을 때는 환호성을 내지르며 집안 곳곳을 뛰어다니기도 했다. 장장 3시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아이는 나름의 전략 분석을 하며 감독이 되기도, 선수가 되기도, 해설가가 되기도 했다.

사실 남편은 한때 이승엽 선수가 삼성을 빛내고 있었을 그때, 한참을 야구에 빠져있기도 했었다. 덕분에 나는 야구라는 스포츠가 인생과 같다는 말의 함의를 충분히 공감하게 되었고, 내 아이의 야구 사랑을 나서서 응원하지 못하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었다.

 


일구이무(一球二無), 김성근 감독의 좌우명

 

‘일구이무’라는 것은 ‘공 하나에 다음은 없다’라는 뜻이다. 김성근 감독이 사인할 때 꼭 쓰는 자신의 좌우명이라고 한다. 공이든 사람이든 야구 경기장 안에서는 순간 찰나의 움직임으로 승부가 나버린다. 그래서 공 하나에 승패가 갈린다는 말은 비약이 아니다. 공 하나에 일희일비하는 냉정한 운동이 야구다.

공 하나에 다음이 없기에 주어진 기회를 한껏 이용해야 한다. 마운드에 우뚝 서 있는 투수, 그에 대적하기 위해 타석에 들어선 타자, 각 베이스와 경기장 곳곳에 단단히 수비하고 있는 선수들 모두 기회의 순간을 마주하고 있다. 투수의 투구로 시작되는 순간, 공의 행방에 따라 경기장 모든 선수가 순간 일제히 움직인다. 기회의 순간을 잡은 선수들과 그렇지 못한 선수들이 발생하고, 그에 따라 탄식과 탄복이 반복된다. 프로의 세계에서 실책은 기회의 순간을 잡지 못한, 혹여나 패배의 쓰라림을 가져올 수도 있는 행동이고, 그 공 하나에 앞으로 다음은 없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그만큼 절박하게 절실함을 담아서 공 하나에 집중해야 한다는 의미로 김성근 감독은 ‘일구이무’를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듯하다.

 

‘일구이무’가 공 하나에 다음은 없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달리 말해 ‘누구에게나 기회가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고 감독은 말한다. 인생에서 기회란 세 번 오는 것이고,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무수한 차이를 만들어 낸다고 한다. 나에게 오는 기회를 붙잡고 놓치고의 차이는 ‘준비’에서 오고 평소 준비된 사람이라야 기회가 오면 즉시 잡을 수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것을 혹자는 ‘순리대로 이루어졌다’라고 표현할지도 모르겠다. 매 순간 자신을 갈고닦아 준비를 해 온 사람에게 기회라는 것이 언젠가 찾아오고, 그것이 절호의 기회라는 사실을 단번에 알아채고 그 기회를 잡아 기량을 펼치는 일, 그것이 순리가 아니면 무엇일까.

 

 

"나는 야신보다 잠자리 눈깔이 좋다"

 

김성근 감독의 본래 별명이 ‘야신(야구의 신)’이란 얘기는 예전부터 들어왔다. 신격화가 될 정도로 야구를 잘한다는 말. 선수 시절보다 감독으로서 야구의 신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선수로서 야구의 신이 꼭 감독으로서 야구의 신이 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각각 다른 영역의 포지션일 뿐, 그 역할에 맞는 재능과 기량이 다를 수 있고, 역할에 맞는 또 다른 훈련과 공부가 필요할 것이다.


김성근 감독이 ‘야신’이란 별명보다 더 선호하는 별명이 있었으니, 그것은 ‘잠자리 눈깔’이라고 한다. 그만큼 관찰력이 뛰어나다는 소리. 어느 순간도 놓치지 않고 사방을 현미경처럼 본다는 말. 아슬아슬하게 세이프가 된 선수에게 미세하게 늦은 스타트에 대해 지적하기도 하고, 지친 선발 투수의 미세하게 낮아지고 높아진 공을 구분해 이내 마운드에서 내려오게 만들기도 한다. ‘나는 1mm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다(162쪽)’라고 할 정도로 선수들을 꿰뚫어 보고 미세한 차이를 찾아내 제대로 알려주고 지시했다고 한다. ‘제일 중요한 건 눈과 귀(163쪽)’라고 두 개씩 존재하는 눈과 귀를 잘 이용하라고 선수들에게 자주 이야기한다고 한다. 관찰력은 야구 소질을 넘어서게 해 주고, 순간을 붙잡을 수 있는 힘을 주기 때문에 결국엔 그것이 이기는 법이기도 하다고.


관찰력은 타고남보다는 훈련의 문제라고 덧붙인다. ‘보려는 의식’이 있으면 볼 수 있고, 보려는 의식은 보려는 그것에 얼마큼 열정과 애정, 몰입이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한다. 예를 들어, 경기 시작 전 그는 국민의례와 애국가 제창 시 국기 게양대 맨 위에 작은 크기의 공을 뚫어져라 쳐다본다고 한다. 그것 또한 관찰력과 집중력을 키울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라면서. 숨 쉬는 매 순간 야구만 생각하는 ‘야신’이 맞나 보다.

 


선수들의 의식 변화시키기, 리더의 덕목

 

이 책에서는 ‘참된 리더의 덕목’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리더에 대한 김성근 감독의 생각이 언급될 때마다 우리나라 해전사의 성웅 ‘이순신 장군’이 떠올랐다. 김성근 감독은 리더의 부재는 곧 커다란 위기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자신의 암 수술을 가족에게도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약한 리더의 모습은 전쟁터에서 위기를 불러오고 이미 패배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으로. 수술 직후 기저귀에 피가 흥건할지라도 아랑곳하지 않고 선수들에게 공을 던져줬다고 한다.


쌍방울 감독 시절에는 어떤 해에 가장 많이 퇴장당한 감독이었다고 한다. 경기 도중 심판에게 여러 번 항의하고 결국 퇴장하는 일을 여러 번 겪었다고 한다. 감독의 태도로 인해 팬들에게도 손가락질을 받았으나 사실 내막은 이러했다고. 팀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서 일부러 한 행동. 당시 상대 팀과 기량 차이가 약 100배 정도 났고, 선수들의 사기는 바닥이었다고 한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선수들의 투지를 불태울 수 있게 해야 했다고. 감독이 억울하게 퇴장하자 선수들은 곧 싸울 기세로 덤벼들었다고 한다. 냉정한 승부의 세계에서 기량 차이로 인해 뻔히 결과가 보인다 할지라도 감독의 기지로 선수들이 과정의 아름다움을 경험하게 한 것이다. 자신의 희생으로 선수들의 사기를 올리기 위해. ‘이순신 장군’도 매번 분리한 전쟁에서 ‘병사들의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 있도록’ 자신의 배를 앞세워 자신을 희생하고 모범을 보였다고 한다. 참된 리더란 그런 것일까. 투철한 위기의식으로 희생을 각오하고 매 순간 승리를 위해 모범을 보이는 수장. 역사에 남을 리더의 모습은 동일해 보인다.

 

 


이 책은 남편이 야구를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 구매한 책이지만, 아이에 앞서 내가 손에서 놓지 못했다. ‘인생은 순간이다’라는 제목에 어찌 매료되지 않을 수 있을까. 야구는 그에게 인생이고, 인생은 순간이라고 하니 야구는 순간의 미학이자 순간의 승부인 세계였다. 정확한 데이터에 기반한 확률 게임이지만 그 안에는 인간이기에 발생하는 순간의 변수들도 존재했다. 공과 함께 순간의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선수들이 있고, 선수들 뒤에는 감독이 있었다. 한배를 탄 선수들과 수장인 감독이 이뤄내는 너무나 인간적인 스포츠, 야구. 앞으로 아이의 야구 사랑을 적극적으로 응원하려 한다. 야구에서 인생을 배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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