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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절에가다 Nov 30. 2023

한 마리 새의 날갯짓

<제인 에어> 샬롯 브론테

“당신의 관심만 주시면 돼요. 저도 당신께 관심을 돌려 드리면, 채무가 해결될 거예요”

<제인 에어> 391쪽    


      

새장 안의 한 마리 새, 당시 여성의 사회적 위치     


<제인 에어>는 700페이지에 달하는 긴 서사를 담고 있는 고전 소설이다. 책의 저자 샬롯 브론테는 또 다른 고전 소설 <폭풍의 언덕>을 쓴 에밀리 브론테의 언니이기도 하다. 자매가 모두 길이 남을 고전 소설을 쓴 문학소녀라는 사실에 놀라며 그들의 성장 과정이 궁금해진다. 결핍은 성장의 원동력이라는 사실, 굶주림과 허기는 절절한 창작의 시작이라는 사실을 그들의 삶이 증명하고 있다. 샬롯은 당대 여성들의 삶을 비롯하여 자신이 살아온 삶을 <제인 에어>라는 긴 서사 속에 절절히 녹여냈고, 그랬기에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이 책을 통해 그 시대를 생생하게 경험해 볼 수 있게 되었다.     

<제인 에어>는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쓰였다. '제인 에어'라는 여성의 성장기라고 볼 수 있는 이 소설은 19세기 여성의 삶을 독자들에게 생생하게 보여준다. 헌신과 내조로 '가정의 천사'로 길러지는 여성들, 아버지의 유산 혹은 남편의 재력 없이는 독립적으로 살아가기 어려운 사회적 위치의 여성들, 또한 남성의 필요에 의해 쓰이는 소유물에 불과한 여성들. 이들이 그 시대의 여성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들과 달리 제인은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때론 분노로 자신을 둘러싼 상황이나 인물에 저항하는 여성으로 그려진다. 로체스터와 결혼을 하기로 약속하면서, “당신의 관심만 주시면 돼요. 저도 당신께 관심을 돌려 드리면, 채무가 해결될 거예요.(391쪽)”라며 결혼 후에도 가정교사를 유지하며 당당히 자신의 옷은 직접 벌어 사 입겠다는 말을 한다. 또한 사랑이 점차 소유욕으로 변하고 있는 그에게 제인은 "전 천사가 아니에요. 죽을 때까지 천사가 안될 거예요. 저 자신이 될 거예요.(377쪽)" 혹은 "전 새가 아니에요. 그리고 어떤 그물로도 저를 잡을 수 없어요. 저는 독립적인 의지를 지닌 자유로운 인간이에요. 제 자유 의지로 당신을 떠날 거예요.(367쪽)“라며 자신의 주체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사촌으로 판명된 세인트 존이 사랑 없이 단지 부부의 연으로 선교 활동을 강요할 때, 제인은 자신의 생각을 정확히 전달하기도 한다. 자신을 다 바치지 않고 선교사 일만 할 거라며.      

21세기 지금도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당당히 밝히는 것은 용기와 기개가 필요하고, 어쩌면 고된 수고로움이 수반되기도 한다. 19세기 빅토리아 시대 특히나 여성이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밖으로 표출하는 것은 용기나 수고로움의 영역이 아닌 생존, 생사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마녀사냥이나 미친 여자 취급을 받는 일이 다반사였고. 그래서 샬롯 브론테는 직접적으로 입 밖에 꺼낼 수 없던 당대 문제의식을 허구의 형식을 입혀 펼쳐 내보였을지도 모른다.           



대화, 서로를 알 수 있는 수단     


이 소설의 시작은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제인이 친척 집에 살게 되면서 겪는 고통과 억압의 경험에서 출발한다. 순종적이지 않고 여자아이답지 않은 모습에 친척들은 그녀를 '불협화음' '반항하는 노예'처럼 여긴다. 결국 외숙모는 그녀를 '붉은 방'에 가두는 벌을 주었고, 분노로 가득 찬 제인은 세상 밖(로우드 기숙학교)으로 쫓겨나듯 도피하게 된다. 세상 밖이 아무리 지옥이라도 이곳보단 나을 것이라 생각하며.     

로우드에서도 삶은 그리 달라지지 못한다. 고아 여자아이들이 교육을 받기 위해 모인 이 자선 학교에서 제인은 또 다른 고통과 억압을 당한다. '유용하고 겸손한 아이'를 길러내는 것이 이곳의 방침이고, 추위와 배고픔이 일상인 이곳에서 또 다른 시대의 요구, 인내와 절제 헌신 등을 내면화당한다. 제인은 그곳에서 8년 동안 다행히 지적으로나마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 그것을 무기로 '새로운 노역'을 위해 그곳을 떠난다.

자유를 찾으러 손필드(가시나무밭)라는 곳에 가정교사로 가게 되고, 그곳에서 로체스터라는 '주인님'을 만난다. 고용주와 고용인의 관계인 그들이 점차 사랑의 감정으로 서로를 인식하고, 신분과 부 그리고 성의 차이를 넘어서게 된다. 대저택을 소유한 부유한 집안 출신인 로체스터와 가정교사였던 제인의 첫 만남이 그리 낭만적이진 않았다. 우연한 곳에서 우연히 말에서 떨어진 그를 제인이 도와주면서 만남이 시작된다. 제인은 그에게 먼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고 로체스터는 그녀의 부축을 받는다. 그 후로 둘은 손필드 저택에서 시간을 보내며 간간이 대화를 나누게 된다. 꽤나 자존심과 자부심이 강했던 로체스터는 처음에는 제인에게 퉁명스럽게 말하며 변덕을 부리기도 했다. 그러나 제인은 '타고난 공감' 능력으로 그에게 경청하며 다정하게 대답을 하기도, 인내심을 가지고 그의 대답을 기다리기도 했다. 때로는 그의 말에 소소한 저항을 하며 자신의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저보다 나이가 많고 세상 경험이 많다고 해서 내게 명령할 권리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정말 우월한지는 시간과 경험을 어떻게 활용했느냐에 달려 있죠.(193쪽) "라고 말하며. 로체스터의 말에서 제인의 성향을 알 수 있기도 하다. "나는 가끔씩 새장의 빽빽한 창살 사이로 호기심에 찬 새의 시선을 보았소. 새장 속에 생생하고 불안해하고 결의에 찬 포로가 있소. 자유롭기만 하면 구름까지라도 날아갈 거요.(201쪽)" 현재는 새장 속에 있는 새일 지도 모르지만, 언제든 자유와 해방을 누리게 된다면 저 하늘로 날아갈 듯한 제인.  

   

사랑의 싹은 첫인상으로 시작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첫인상이 끝까지 이어지려면 서로를 알아가는 대화는 필수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서로를 몰랐던 과거도, 대화를 주고받는 지금 현재도, 함께 살아갈 미래의 삶도 알아갈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서로가 주고받는 대화를 통해서 일 듯. 대화는 서로를 알아보게 만든다. 서로를 끌어당길 수도 있고 멀어지게 만들 수도 있다. 멀어지다 다시 돌아보게 될 계기를 주기도 하고, 멀어지다 영영 만나지 못하게 만들 수도 있다. 신분과 계급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로체스터와 제인이 서로 사랑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도 서로가 주고받은 대화에 있지 않을까.    


      

여성 연대의 방법, 우정 그리고 멘토  

   

이 소설에 등장하는 여성들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은 '헬렌 번스'와 '템플 선생님'이다. 두 사람은 제인이 로우드 기숙학교에서 지내며 고통과 억압을 당할 때, 제인에게 따뜻한 손길이 된 인물들이다.

헬렌 번스는 제인보다 몇 살 많고, 책을 무척 좋아하는 책벌레. 수업 시간에 자주 공상에 빠져 주의가 산만하다는 꾸지람을 받기도 하고, 물건 정리나 규칙을 잊어버리곤 해 칠칠치 못하다고 비난을 받기도 한다. 그럼에도 분노나 화를 표출하지 않고 자신에게 화살을 돌리거나 그 상황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피할 수 없으면 따르는 게 네 의무야. 인내가 운명인데 견딜 수 없다는 말을 하는 것은 나약하고 어리석은 짓이야.(77쪽)" "증오를 가장 잘 극복할 수 있는 것은 폭력이 아니고, 상처를 가장 확실하게 치료할 수 있는 것은 복수가 아니야.(81쪽)"라는 말을 한다. 인생을 해탈한 것만 같은 태도로 삶을 대하는 그녀에게 제인은 우정 이상의 경외감을 느낀다. 브로클허스트 목사가 제인에게 거짓말을 일삼는 나쁜 아이라는 인식을 낙인찍고 벌을 줄 때도, 헬렌 번스는 모멸감에 떨고 있는 제인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 학교에 널 경멸하거나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널 동정하는 사람의 수가 더 많을 게 틀림없어." "세상 사람이 다 너를 미워하고 사악하다고 믿어도, 네가 양심적으로 잘못한 게 없고 죄가 없다면 친구가 있을 거야."라고 알려준다. 그리고 제인과 헬렌은 기대어 서로 껴안는다.

이 학교의 교장인 템플 선생님도 제인에게 위안이 되는 인물로 제인이 벌을 받아 힘들어할 때 더 가까이 다가와서 따뜻함을 건넨다. 눈물로 슬퍼하는 제인에게 말한다. "우린 네가 보여주는 모습을 믿을 거야." "지금도 난 네가 결백하다는 걸 믿는다."라고. 자신이 경외하고 존경하는 선생님의 믿음과 신뢰의 한 마디가 그 당시 제인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을지. 낯선 곳에 내 편이 하나도 없을 것이라 생각한 그녀에게 템플 선생님의 따뜻함은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되었을 것이다. 추위와 굶주림이 일상인 그곳에서 템플 선생님은 슬퍼하는 제인에게 자신의 몫을 떼어 따뜻한 차와 빵을 내어놓기도 한다.     


성차이가 성차별로 작용해 여성의 지위가 낮았던 사회에서 여성들에게 위안이 될 수 있었던 건 또 다른 여성이지 않았을까. 그 당시 여성들의 제한적인 자유와 절망적인 위치에도 서로가 있었기에 보듬어주고 울어주고 공감하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지 않았을까. 서로 응원하고 북돋아 줄 수 있는 우정의 관계와 내가 지향하는 삶의 방향을 가고 있는 멘토의 존재는 분명 지금도 우리 각자에게 꼭 필요한 삶의 요소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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