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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절에가다 Dec 06. 2023

삶의 본질, 모순

<모순> 양귀자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는 이 모순, 이 모순 때문에 내 삶은 발전할 것이다.”

<모순> 296쪽   


                 

모순: 모든 방패를 뚫는 창과 모든 창을 막아내는 방패의 관계     


소설 '모순'을 읽고서 모순의 한자어가 방패와 창을 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모든 방패를 뚫는 창과 모든 창을 막아내는 방패를 파는 중국 초나라 상인의 이야기를 한 번쯤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상인은 논리에 맞지 않는 말을 하며 방패와 창을 동시에 팔았고, '그렇다면 모든 방패를 뚫는 그 창으로 모든 창을 막아내는 그 방패를 찌르면 어떻게 되는가'라고 묻는 이들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는 이야기다. 모순이란 단어는 이렇게 이치상 서로 논리에 맞지 않는 방패와 창에서 유래된 어휘다.      

모순이라는 추상적인 단어를 책의 제목으로 정하기까지 작가는 많이 고심하고 망설였다고 한다. '모순이라는 추상적 개념어를 가장 구체적인 현실을 다루는 소설의 제목으로 삼기에는 좀 무겁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내 생각을 바꾼 이유는 '우리들 삶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모든 것이 모순투성이였다'라고 그리고 '세상의 일들이 모순으로 짜여있으며 그 모순을 이해할 때 조금 더 삶의 본질 가까이로 다가갈 수 있기에' 이것 이상 모순 덩어리인 현실을 구체적으로 그리는 제목은 없을 것이라 말한다. 지극히 추상적인 제목과 더없이 현실적인 이야기의 만남조차도 모순적이다. 작가는 이야기 안에서 시종일관 삶의 모순, 모순적인 삶을 보여주고자 한다. 보인 삶을 통해 우리는 삶의 본질에 쉬이 닿을 수 있다. 삶은 모순 투성이고, 그 모순 투성이 삶을 우리가 살아가고 있고 그 모순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삶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다.

          


'안진진' 그리고 아버지, 사랑의 이면을 감지하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안진진'이다. 한자로 참 진. '안진'이 될 뻔하다 아버지가 출생신고 직전 이름에 '진'이 하나면 이름이 너무 무겁다는 이유로 '진'을 두 번 써서 '진진'이 되었다. 하지만 성이 '안'이란 사실을 아버지가 그 순간에 잊은 것은 아닌지, 돌연 진진하지 않다는 의미의 이름이 되어버렸다. 그만큼 순간의 감정이 중요한 사람이 안진진의 아버지였다.

진진의 아버지는 술만 마시면 다른 사람이 되어 자주 집을 나갔고 잊힐만할 때면 돌아오곤 했다. 후에 안진진이 자신의 능력, 말술 말고도 아버지와 자신이 닮은 구석을 발견하는데, 그것은 사랑에 대한 경험 혹은 생에 대한 깨달음을 통해서다. 진진은 결혼 상대로 두 남자 사이를 오가며 저울질한다. 그중 가난한 사진작가와 여행을 떠나는데, 처음으로 그때 ‘사랑’이란 것을 느끼고 포효한다.

'아, 나는 전율했다. 그것은 아버지의 대사였다. 아버지가 처음으로 난동을 부리던 그날 밤, 아버지가 말했었다. 당신은 나를 가두는 간수 같았어, 당신은 몰라, 그 절망이 얼마나 무서웠는지...(205쪽).

진진의 아버지는 술기운에 어머니에게 털어놓는다. 사랑으로 묶인 관계가 아버지를 옥죄었고, 이곳에 갇혀있다는 것이 그토록 절망적이라 숨 쉴 수 없다는 아버지의 토로. 이상하고 모순적인 아버지의 자기 합리화를 진진은 떠올린다. 사진작가, 김장우에게 사랑의 감정을 처음 느낀 진진은 앞으로 누군가에게 묶여 지내야 하는 허한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는 낯섦에 당황한다. 마치 자신의 아버지가 연상되면서, 아버지가 이해되기 시작하면서, 아버지와 닮은 자신을 깨닫게 되면서. 사랑이 때로는 미움을 낳기도 족쇄가 되기도 하며, 행불행이 동전의 양면처럼 다가오기도 혹은 대부분의 시간 불행이 행복을 잠식할 수 있다는 것을 진진의 아버지는 이미 알았을 것이다. 가끔 그것이 망상이 되어 스스로를 고통받게 했을 것이고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현실과 거리 두기를 하려 도피했을 것이다. 진진에게는 아버지의 부재를 경험하는 일이었겠지만. 진진은 그런 아버지를 김장우와 사랑이 시작되려는 순간 이해하게 된다. 사랑이 시작되려는 순간 사랑에 내재한 본질인 고통스러운 불행을 감지했을지도 모르겠다.        


        

행복과 불행, 삶과 죽음, 풍요와 빈곤 그 모순적 삶     


주인공 안진진의 사랑 저울질 말고도, 이 소설의 서사를 이끌어가는 인물 중 한 사람은 진진의 이모. 엄마와 일란성쌍둥이인 이모는 엄마와 똑 닮은 모습으로 정반대의 삶을 살아가는 인물이다. 시장에서 양말 속옷을 팔아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는 엄마와는 달리 이모는 '무덤 속 평온'과 같은 적막 하지만 풍족한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예정된 시간을 어기지 않는 기차처럼 치밀하고 계획적인 이모부와의 삶이 행복보다 불행에 더 가까웠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이모의 자살로 말미암아 알게 된다. 반면 아들의 옥바라지와 아버지 뒤치다꺼리를 하며 고달프게 삶을 헤쳐 나가던 엄마의 불행이 불행만은 아닐 수 있다는 것도 느끼게 된다. 자신의 완벽한 삶이 ‘지리멸렬’이었다고 여겼던 이모는 쌍둥이 언니, 진진의 엄마의 지독하게 고달픈 삶을 갈구했을지도 모른다. 바람이 거셀수록 생의 뿌리는 더 단단하게 버티고 서 있듯, 진진의 엄마의 생의 뿌리는 이모보다 훨씬 단단했다.      

자신과 처지가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 그러나 낭만적인 김장우와 사랑이 시작된 듯했으나, 진진은 결국 나머지 한 명, 나영규를 결혼 상대로 선택한다. 줄곧 마음이 김장우 쪽으로 기울며 저울질하더니 마지막 선택은 ‘내게는 없었던 것을’ 가지고 있는 남자로 정한다. 반전이라면 반전이지만, 어쩌면 이 소설의 제목처럼 결말지어졌다. 이모의 행복이 불행 위에 위태롭게 서있던 신기루였고, 엄마의 불행은 뿌리를 단단하게 만든 삶의 버팀목이었다. 그래서 앞날이 뻔히 그려지는 김장우와의 삶이 행복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과 치밀하게 계획된 틀 속에서 평온하게 살아가는 나영규와의 삶이 그리 불행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진진은 깨달았을 것이다. 그리고 사랑하면서도 그것에서 벗어나야 하는 아버지를 이해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모순 투성이인 우리의 삶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안의 또 다른 모순 속에서 결국 ‘남은 것은 어떤 종류의 불행과 행복을 택할 것인지 그것을 결정하는 문제뿐’이라는 사실을 진진의 마지막 선택에서 알 수 있다. 가보지 않은 길을 선택하며 진진은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는 이 모순, 이 모순 때문에 내 삶은 발전할 것이다’라고 마무리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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