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피아절에가다 Dec 13. 2023

하루의 취향이 모여 나란 색을 만들다

<하루의 취향> 김민철

"나만의 취향 지도 안에서 나는 쉽게 행복에 도착한다."

<하루의 취향> 76쪽     

     



카피라이터 김민철, 사귀고 싶은 사람     


이 책은 카피라이터인 작가가 쓴 취향 존중에 대한 에세이다. 들고 다니기에도 가볍고, 읽고 다니기에도 술술 읽히는 문장들로 쓰여있다. 가볍게 들고 다닐 수 있고, 가볍게 읽을 수 있지만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는 오랫동안 여운이 남기도 한다. 나에게도 취향이란 게 있었나, 마음이 줄곧 그리로 가는 그 무언가가 있었나 하는 생각으로. 평소 ‘취향 저격’이라는 말을 자주 쓰기도 했지만, 그것이 진짜 나의 취향이라 여긴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프롤로그에서 작가는 말한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작가들의 문체를 닮고 싶어 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개성을 훔치고 싶어 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안목을 가지고 싶어 했는지’라고. 책을 즐겨 읽는 주변 사람들에게 책을 선물하면서 나도 김민철 작가가 생각하듯, 선물한 책을 쓴 작가의 문체를, 개성을, 안목을 훔치고 싶었던 적이 많았다. “이 책 정말 내 취향이야!”라면서 건네곤 했다. 하루의 취향’도 그러한 책 중 하나였다. 작가의 문체, 개성, 안목을 모두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얄미운 책. 얄미워서 한번 만나보고 싶은 사람. 나이도 나랑 비슷한 듯하고, 동향인 데다 한 시절 어쩌면 같은 곳 같은 모습으로 고군분투하고 있었을 그 사람을 만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만나다 사귈 수도 있겠고. (오해는 마시라. 성별이 진하게 느껴지는 이름을 갖고 있지만, 작가는 나처럼 여성이다. 친구로 아니면 언니 동생으로 사귀고 싶은 사람이다.)     

얄밉도록 부러워 만나보고 싶은 데는 다른 이유도 있다. 재미와 위트가 가득한 문장에서 사람 냄새가 진하게 풍겨왔으니. 사람이 글을 쓰지만, 글이 사람을 쓰기도 한다. 글을 보면 사람이 보인다. 글에서 그 글을 쓴 작가의 모습이 얼추 그려진다. 따뜻한 사람이 쓰는 글은 따뜻함이 묻어 있고, 상처 가득한 사람이 쓰는 글은 내가 모르는 슬픔까지 읽어내야 한다. 뾰족한 사람이 쓰는 글은 읽는 내내 그 뾰족함에 찔려 쓰라리기도 하다. 김민철 작가는 분명 삶을 즐기려 하는 사람일 것이다. 재미와 즐거움을 양손에 쥐고 필요할 때 하나씩 벗겨 먹는 맛으로 사는 사람. “아, 이 한심한 세상이여, 아직도 대화가 된다고 믿는 불쌍한 중생이여”(91쪽), “자리에 앉자마자 지리적 감각이 0을 향해 수렴하는 남편이 내게 물었다”(163쪽), 아니면 “이제는 그 말의 문제점을 십이지장부터 새끼발톱까지 느끼게 되었다”(191쪽)와 같은 문장을 읽으면 누구나가 작가의 모습이 나와 같이 그려지지 않을까.     


           

나의 취향, 나는 어떤 색깔의 사람인가     


취향의 사전적 정의는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 또는 그런 경향’을 뜻한다. 방향과 경향이므로 그것은 언제나 변화할 수 있는 속성을 가진다. 한때 오랫동안 젖어있던 취향도 어느 순간 희미해지며 다른 취향으로 옮겨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선호하는 이성상이 달라지기도 하고, 애호하는 주종이 달라지기도 한다. 즐겨 듣는 음악의 장르가 달라지기도 하고, 싫어하는 것들의 취향도 변한다. 사람의 기질이나 성향은 달라지기 어려우나, 각자의 취향은 언제든 달라질 수 있다. 그렇기에 성향보다는 취향이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잘 나타내주기도 한다. 나의 관심사를 비롯한 현재의 취향에 따라 지금 만나는 사람이 다르고, 현재 즐겨하고 있는 일이 달라진다. 나라는 사람의 색깔이 취향에 따라 달라진다.      

책을 읽으며 떠나지 않았던 생각 중 하나는 김민철 작가와 내가 참 닮았다는 사실. 예를 들어, ‘이놈의 집순이 DNA’를 가지고 있고, 집의 창문이 액자처럼 쓰일 정도로 계절의 변화를 집안에서 느끼기도 한다고. 또 소위 MBTI 검사에서 내성적인 경향, 즉 ‘혼자 있는 시간에서 얻는 에너지로 살아가는’ 사람이기도 했다. 게다가 무한 공감하며 맥주 한 모금씩 들이키며 글을 읽을 수밖에 없었던 ‘술에 대한 애호’에 대한 이야기. 양적 술이 아니라 질적 술을 즐기는 작가의 모습에서 나를 찾았다. 저녁 무렵 남편과 마주 앉아 맥주 한 잔에 그 하루를 풀어내고 서로의 삶을 공유하는 모습은 나의 삶과 닮아있었다. 함께 하는 술자리에 대한 애호, 그것은 책에서 언급한 ‘술 한 잔이 노후 준비’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늙어가는 서로를 마주하고 오늘은 얼마큼 늙었나 서로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는 시간에 맥주 한 잔은 수단일 뿐이라는 사실.      

다시 돌아가 스스로 자문해 보자. 나는 현재 어떤 취향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어떤 색깔의 사람인가. 개인적으로 집순이에 내성적이라 혼자 있는 시간에서 에너지를 얻고, 그래서 혼자 끄적이는 이 시간이 나의 활력이기도 하다. 가끔 북맥 (book+맥주)과 글맥 (writing+맥주)을 하고, 자주 남편과 마주 앉아 담맥 (담소+맥주)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하나뿐인 내 아이의 취향을 존중하는 만큼 내 취향을 존중받기 위해 오늘도 글을 쓴다. 현재 나는 어떤 색인가.      

     


취향 저격, 즉흥 여행 속 분절의 시간     


또 한 가지 작가의 취향 중에는 여행이 자리하고 있었다. ‘모든 요일의 여행’이라는 책을 앞서 출간했고, 그것으로 이름이 알려지기도 했을 만큼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개인의 취향으로 여행만큼 색다른 게 또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익숙한 공간에서 벗어나 훌쩍 낯선 공간으로 떠나는 일은 벅찬 일이기도 하다. 그 낯선 공간은 매번 달라지고 낯선 공간의 공기도 매번 낯설다. 일상의 고뇌와 번뇌를 일순간에 잠식시킬 수 있는 즉흥적인 떠남! 작가는 그 짜릿함을 몸소 알고 있는 듯했다. 휴가가 주어지면 로마로 남프랑스로 훌쩍 떠나는 작가의 모습에서 또다시 얄미움과 함께 부러움이 쏙 올라오기도 했다.      

즉흥 여행을 좋아하는 작가는 여행의 순간만큼이나 여행 전 준비 과정을 좋아한다고 한다. “말하자면 여행 준비를 공상에 다 쏟아붓는 사람이 바로 나다.”(74쪽)라고 할 정도로 여행 장소와 숙소를 고르는 재미를 즐긴다고. 여행의 시작은 여행의 준비 과정에서부터 라더니. 장소와 숙소만 고를 뿐, 이외에는 모두 현지에 도착해서 되는대로 돌아다니는 것이 작가의 여행 취향이었다. 또 작가는 책에서 여행의 시간을 이렇게 표현한다. “이제부터 시간은 연결이 아니라 분절이었다. 매 순간, 나의 선택에 따라 제각각의 시간은 제각기 살아 움직일 것이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오롯이 내 것이 될 것이다.”(246쪽)라고. 하루하루 여행을 준비하는 시간이 더디게 가는 만큼 여행의 순간은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지나간다. 일상의 시간과 여행의 시간은 다른 속도 다른 밀도로 움직인다. 같은 시각 하지만 다른 공간, 낯선 공간에서 여행자의 시간은 다르게 움직인다. 모든 것이 새롭다. 모든 것이 생경하다. 모든 것이 새롭고 생경한 자극이다. 그래서 여행자의 시간은 분절로 흐른다. 밀도 높은 분절의 시간. 그곳에서는 즐거운 시간이 걷잡을 수 없게 흐르지만, 그 시간은 고밀도로 촘촘하게 나뉘어 있는, 그래서 우리가 유일하게 잡을 수 있는 시간이다.      



에세이 장르에 생소한 남편에게 한 꼭지 ‘제 전공은 짝사랑입니다’ 부분을 읽어줬다. 남편은 듣다 말고 “일기네, 일기”라고 했고, 나는 일기가 아니라 에세이라고 일러줬다. 일기와 에세이의 차이점을 이렇게 덧붙이며. “일기는 작가도 독자도 모두 자신이지만, 에세이는 타인이 독자가 되는 글”이라고. 타인이 보는 내 일기는 나만 보는 일기와는 달라야 한다. 나의 경험으로 타인에게 다가가 공감을 자아내는 글은 일기와는 다를 것이다. 김민철의 ‘하루의 취향’은 누군가에게는 일기처럼 느껴지고 그래서 일기처럼 술술 읽히겠지만, 작가의 취향에서 나의 취향을 떠올려보기도 하고 나의 취향을 새롭게 만들어보기도 하며 ‘나’란 사람을 만나는 경험을 독자에게 준다. 내 취향이 하나 더 생긴 것 같다. 가볍게 읽히지만 가볍지 않은, 일기 같지만 여운이 남는 그런 취향 저격 에세이를 쓰고 싶다.

이전 06화 '나의 글이 인쇄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