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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절에가다 Dec 07. 2023

'나의 글이 인쇄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쓰기의 감각> 앤 라모트

“현실을 살 것, 그리고 감탄할 것“

<쓰기의 감각> 171쪽  



희귀한 노동 계층, 작가

     

<쓰기의 감각>은 미국의 작가 지망생들에게 필독서라 불린다. 글을 잘 쓰는 비책이 책 속 곳곳에 숨겨져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작가의 신선하고 유머러스한 문체들이 빛이 났을 뿐, 역시 글쓰기에 뾰족한 묘안은 없었다. 무작정 쓰고, 쓰고 또 쓰다 보면 어느덧 쓰는 사람이 되어있게 되고 그래서 쓰지 않을 수 없게 되며, 쓰는 행위 자체가 자신에게 커다란 보상으로 작용해 글쓰기가 고난이 아닌 즐거운 놀이가 될 수 있는 그러한 경지에 이르는 것이 비책이라면 비책일 것이다.     


이 책은 앤 라모트의 어린 시절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아버지는 글을 쓰는 작가였으며, '전날 밤 아무리 늦게까지 일을 했어도, 매일 아침 새벽 다섯 시 반이면 일어나 두어 시간 동안 글을 쓰고, 그 후에는 신문을 훑어보셨다'라고 한다. 시집을 즐겨 읽으셨고, 글을 쓰는 사람들을 집에 자주 초대해 책 이야기를 하며 그들과 소통했다고 한다. 또한 아들 앤 라모트에게 글쓰기에 대해 다음과 같은 조언과 충고도 하셨다고. "얼마간은 매일매일 써라,” "글쓰기를 피아노의 음계 연습하듯이, 체면상 갚아야 할 빚처럼 다루고, 그 일들을 어떻게든 끝맺을 수 있도록 헌신하라"라고.     


글쓰기 훈련과 피아노 연습의 유사성은 글 쓰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수긍할 것이다. 매일 조금씩이라도 백지를 채워가는 훈련과 매일 꾸준히 악보의 음표를 하나하나 손가락으로 소리 내어보는 연습은 동일한 메커니즘을 가진다. 매일 일정 분량의 훈련과 연습이 필요한 기술 연마의 영역. 더 나아가 글쓰기라는 것을 갚아야 할 빚처럼 여겨야 한다는 비유에서 작가의 아버지가 평생 안고 살아야 했던 생계형 글쓰기에 대한 절절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글을 쓰는 행위 자체만으로 큰 즐거움이 되는 경지에 도달하더라도, 작가로서 나의 글이 밥이 되어 내 생계를 유지해 나가는 일은 마치 빚을 갚아나가는 일과 흡사하게 혹독할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수많은 작가 지망생들은 글쓰기가 빚을 갚아나가는 일처럼 느껴질지라도, 자신의 글이 밥이 되는 순간을 상상하며 오늘도 음표 없는 백지 악보를 마주하고 피아노 음계 연습을 하고 있다. 글쓰기라는 것은 즐거움과 혹독함이 뒤섞인 극단의 감정을 느끼게 하는 모순적인 행위고, 작가라는 사람들은 이 모순적인 행위를 해야만 하는 참 희귀한 종족이다.     



나만의 이야기를 쓰고 다듬기     


앤 라모트는 소설과 에세이를 쓰는 작가이자, 글쓰기 수업을 하는 강사이기도 하다. 이 책은 작가 지망생들에게 쓰기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는 에세이다. 작가로서 직접 글을 쓰면서 느꼈던 경험과 강사로서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 느꼈던 경험을 책 속에 잘 녹여내었다. 쓰는 사람이라면 알아야 할 중요한 쓰기의 방법들이 나열되어 있고, 그 방법들이 쓰는 사람에게 꽤 익숙하기에 새롭지 않을지라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을 풀어내는 작가의 생각과 목소리는 참신했다.     


한 가지 팁으로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 앉아서 무작정 쓰기를 추천했다. 하루 중 쓰는 시간이나 장소는 각자의 상황에 맞게 선택하고, 중요한 것은 '빈 문서를 한 시간가량 바라보라'라고 조언한다. 빈 문서를 바라보기만 하면 될까. 바라보기만 하면 머릿속 부유하는 생각을 끄집어낼 수 있는 걸까. 빈 문서를 바라보라는 의미는 곧 글을 쓰는 몸, 즉 글 쓰는 습관을 형성하라는 의미로 읽혔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매일 그 시간에 그곳에 앉아 머릿속 생각을 손으로 찍어내는 과정을 반복하며 글쓰기 근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 '나는 글 쓰는 사람'임을 나의 몸에 반복적으로 인지시키는 과정이 글쓰기의 시작일 지도 모른다.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자리에 앉았다면, 어떤 글이든 상관없이 매일 할당량만큼 채워내기만 하면 된다고 이른다. 경험이 많을수록 쓸 거리가 많을 것이고, 풍부한 경험의 산실인 유년 시절의 이야기들로 글을 시작하는 것을 작가는 추천한다. 또한 날 것으로 써낸 '조잡한 초고'에 완벽주의는 '압제자의 목소리'와 같다고 덧붙인다. 초고가 아무리 무질서할지라도 빈 문서를 채우는 데만 집중하라고 강조한다. ‘예술가의 친구’이기도 한 무질서, 그것이 난무하는 초고 쓰기는 글쓰기 시작에 필수 요소다.      


만약 소설을 쓴다면 플롯보다 등장인물을 먼저 잘 매만지는 게 중요하다고 이른다. 서사의 장르인 소설에서 이야기의 줄거리는 사실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혼합물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경험하지 않은 상상은 없고, 상상은 모두 경험에서 비롯되는 것이기에 작가가 만들어내는 인물들도 작가의 일부, 작가의 삶의 조각들이기도 하다. 인물을 상상할 때는 인물의 성격, 버릇 혹은 몸짓이나 표정, 흡연 여부나 정치적 성향 등 자세히 그려야 한다고. 그 인물이 실제 살아숨 쉬는 것처럼. 그리고 인물의 내면까지도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고. 더 나아가 그려진 인물이 작가에게 말을 걸어오길 기다려 그 목소리를 ‘들어보라’라고 조언한다. 작가는 천진난만한 어린아이가 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상상의 인물과 대화 시도.     



쓰는 작업에 도움이 되는 것들, 소통과 이타성     


앤 라모트는 책 후반부에 쓰는 작업에 도움이 되는 것들을 소개한다. 메모는 망각의 세계로 사라지기 전 그 순간을 포착하는 작업이다. 작가는 집안 곳곳 메모지와 펜을 두고 순간 떠오르는 생각이나 기억을 기록한다고 한다. 헨리 제임스는 “작가는 아무것도 잃어버리지 않는 사람이다”라고 말하며 글 쓰는 사람에게 메모가 필수적임을 말한다. 부유하는 생각들을 낚아채기 위해서는 그래서 아무것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기록해야 한다. 작가라면 기록하는 습관은 필수적이다.     


쓰는 작업에 도움이 되는 것들 중에서 가장 기억하고 싶은 것 두 가지는 창작 모임에 참여하는 것과 이타성에 대한 부분이다. 창작 모임에 참여한다면, 동굴 속에서 외곬으로 빠지지 않고 타인과의 소통을 통해 세상을 만날 수 있다. 일의 특성상 작가는 동굴에서 오랫동안 외부와 유리된 채 빈 문서를 마주하고 지내야 한다. 글 속에 파묻혀 지내는 작가들에게 가끔 소통이 숨통처럼 필요할지도 모른다. 서로의 글을 공유하고 응원하며 격려하는 일이 글을 쓰는 모두에게 필요하다.

두 번째는 작가의 이타성. 글을 쓰는 작가와 이타적인 마음은 그리 어울려 보이지 않았다. 앤 라모트는 작가는 글을 통해 독자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하는 행위로 ‘독자들에게 용기를 주기도 하고, 이전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되게 하기도 하고, 다시 세상에 대해 열린 사람이 되도록 도울 수 있다’고 말한다. 내가 쓴 글로 누군가를 도울 수도, 살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전율이 일었다. 이타적인 마음을 담아 쓰는 글은 한 사람을 변화시킬 수도, 세상을 변화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역으로 나의 글이 누군가에게 비수가 되어 상처를 입게 할 수도, 좌절을 맛보게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돋기도 했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펜이 언제든 칼이 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내 글을 읽는 타인의 존재를 항상 생각해야 한다. 나의 글이 생생 살아 숨 쉬듯 누군가를 살리는 글이 되도록 말이다.          



미국의 작가 지망생들이 꼭 읽어야 하는 필독서인 <쓰기의 감각>은 개인적으로는 작가 앤 라모트의 위트 있는 문장들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작가의 장벽’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거기에 한번 부딪히게 되면 당신은 텅 빈 페이지만 한없이 응시하며 해부용 시체처럼 앉아서, 심장은 딱딱하게 굳어 버린 것만 같고, 재능은 다리를 타고 양말 속으로 흘러내린 것 같은 느낌에 휩싸일 것이다 ‘라고. 심장이 딱딱하게 굳은 해부용 시체… 다리를 타고 양말 속으로 흘러버린 글쓰기 재능…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만나게 된다는 ‘작가의 장벽‘을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언제쯤 만나보게 될까. 내 글이 인쇄되는 날, 나는 비로소 존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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