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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절에가다 Dec 14. 2023

식물처럼 사는 삶

<식물의 사유> 뤼스 이리가레

"우리에게 여전히 부족한 것이 사랑과 사유에 참여하는 것"

<식물의 사유> 145쪽



이 책은 목차이기도 한 16가지 주제에 대해 두 명의 저자가 주고받으며 쓴 편지를 묶었다. 1부는 벨기에 출신 페미니스트 철학자 루스 이리가레의 글, 2부는 스페인 대학 철학과 교수인 마이클 마더의 글로 이루어져 있다. 같은 주제에 대한 서로의 의견을 손 편지라는 수단으로 주고받았다고 한다. 서로의 답장을 받을 때까지 그 주제에 대해서 한껏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의도적으로 가질 수 있었다고. 요즘같이 시간적 공간적 제약 없이 비대면 실시간으로 대면할 수 있는 시대에 고전적인 아날로그 손 편지를 선택한 그들의 의도가 새삼 흥미롭다.

이 책은 인문 철학서라 읽어내려 갈수록 두 철학자가 나누는 생각들에 깊이 공감하기가 어려움을 느꼈다. 번역의 문제로만 치부하기에는 내가 가진 사고의 그릇이 작고 얕아 보였고, 제목에 이끌려 무작정 읽기로 선택한 나를 자책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읽고자 한 시도가 있었기에 내 그릇의 한계를 알게 되고 앞으로는 선택에 신중을 기하자 다짐하게 되었으니, 어떤 책이든 읽어 남주지 않는다.   


              

자연 vs. 서구 문화      


제목이 '식물의 사유'라 식물이 어떤 사유를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원제는 'Through Vegetal Being'. 식물을 사유하다 혹은 식물의 존재를 통해서 우리를 사유해 보다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두 저자는 절체절명의 전 지구적 환경 위기에 놓인 우리 인간이 자연과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식물 존재를 닮아 살아가는 것이라 주장한다. 그렇다면 식물이란 어떤 존재인가. 식물의 세계는 어떤 세계인가.     


책에서는 '자연'과 '서구 문화' 두 가지 요소를 극명하게 대비하여 환경 위기를 자초한 우리에게 각성을 촉구하고 있다. 먼저 자연은 우리에게 무한한 생명을 준다. 식물은 호흡으로 산소를 내뿜고 우리는 식물이 생산한 산소로 호흡한다. 식물과 인간은 지구상에서 공기를 공유하고 있고 공유된 공기 속에 함께 살아가고 있다. 자연에서 채취한 것들로 인간은 생명을 유지하는 것은 물론이고, 책에서 원소라고 표현하는 자연의 요소인 '공기, 물, 불, 흙'을 기반으로 삶을 유지하고 있다. 봄에는 꽃이 피고 여름에는 짙은 푸르름으로 무성해지고 가을에는 열매가 맺고 겨울에는 다시 돌아올 봄을 위한 에너지를 비축하며, 식물은 계절의 흐름에 따라 늘 변하고 생성하는 존재다.      

늘 변하고 생장하는 자연의 영토 위에 우리 인간은 우리의 공간을 만들어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필요한 공간보다 훨씬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점차 확장시켜 함께 살아갈 땅을 시멘트로 잠식시켜 버렸다. 마치 우리가 이 땅의 본래 주인이라는 듯 그들을 이 땅에서 사라지게 내몰았다. 인간의 욕망은 자연을 우리에게 유익하게 이용하는 것을 넘어서 그것을 정복하기에 이르렀고, 지상 낙원을 폐허로 만들어버렸다. 누구도 제대로 숨 쉴 수 없는 땅,  폐허의 땅으로 만든 우리도 결국 살아가기 어려운 곳으로 만들었다. 본래 더불어 존재하는 본성을 가진 자연은 항시 침묵했고, 그들의 침묵을 당연한 듯 여기고 심지어 그 침묵을 더 해치는 방향으로 경청 없는 주장만 있는 말하기를 서구 문화는 주되게 사용해 왔다. 서구 문화는 스스로가 세상의 지성이자 진리라 주장하며 자연의 침묵을 묵살했다.            


    

성차화 그리고 감각적 초월      


이 책에서 언급한 '성차화'와 '감각적 초월'이라는 개념은 이 책의 핵심인 만큼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었다. 식물의 삶에서 얻은 지혜를 인간의 삶에 적용시키고자 만든 개념이지만 여전히 모호하다. '성차화'에 대한 개념을 뤼스 이리가레가 이렇게 말한다. '살아있는 모든 존재는 성차화되어 있다'라고. '성차화'는 남성과 여성처럼 성이 다른 타자의 대등한 관계를 전제한다고 한다. 누구 하나를 보편적 자아로 보지 않고, 너와 나 각자가 모두 주체적으로 대등한 관계. 주체인 나에게 너는 나와 대등한 타자, 너 역시 주체이자 나와 대등한 타자. 그 관계는 서로가 개체이며 주체이고 동시에 서로에게 대등한 타자이며, 그렇기에 서로는 서로의 타자성을 존중해야 한다. 인간을 포함하여 살아있는 모든 존재가 성차화되어있고 식물 또한 살아있으므로 성차화되어 있으며 그래서 그들도 주체로서 우리와 대등한 관계라는 사실.

'감각적 초월'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한다. '감각적 초월의 경험은 무엇보다 먼저 수평적 차원에서 서로 다르게 성차화된 두 신체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다. 감각적 초월이 일어나려면 물질적 신체가 존재해야 하고, 또한 신체에 생기를 불어놓고 한 신체를 다른 신체와의 관계 속에 놓는 성적 속성이 존재해야 하고, 두 신체가 같은 성이 아니면서 자신의 자연적 속성에 충실할 때 초월이 일어난다'라고. (95쪽)      


'감각적 초월'이라는 것은 우리가 자연 속에 있을 때의 황홀경 혹은 무아지경을 성차화된 인간들 사이에서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인 듯 보인다. 숲길을 걸을 때를 생각해 보자. 숲 속 깊은 곳에서 대자연의 아름다움에 흠뻑 젖어 온몸으로 자연을 감각한다. 평생 이렇게 숲에서 자연과 함께 살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인간은 타인의 존재 없이 홀로 살아갈 수 없다. 우리는 뼈와 살과 피로 이루어진 신체를 가진 인간이고, 그러므로 필연적으로 서로의 살결을 어루만지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물질로 느낄 수 있는 타인의 신체와 함께 살아야 하고, 서로의 신체에 생기를 불러일으키는 성적 속성도 필요하다. 즉 서로 대등한 성차화된 신체에 생기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성적 욕망이 함께 한다면, 우리는 자연에서 느낄 수 있는 그 황홀경과 무아지경을 인간 세계에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는 말처럼 들린다. 그것이 '감각적 초월'이고 우리도 식물처럼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한 가지가 그것이다.


           

시 쓰기     

 

이 책을 읽으며 무척 반가웠던 부분이 있었다. '시 쓰기'에 대한 내용. 뤼스 이리가레는 자연에서 경험했던 행복한 기억을 잃지 않기 위해 매일 시를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자연이 인간에게 선사하는 아름다움을 시로써 자연에 다시 보답했다는 의미로 읽혔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낀 충만함으로 인간은 시를 쓰고, 시를 쓰며 아름다운 자연처럼 살고자 노력하는 삶. 그거야말로 식물의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스스로 충만하고 스스로 아름다워지는 삶. 더 나아가 내가 아닌 타인에게도 그 충만하고 행복한 감정을 전이하는 삶. 시를 쓰는 일이 자연을 감각하는 일이자, 식물을 닮아가는 삶일지도. 자연과 우리가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너와 나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보는 일의 시작은 자연에 대한 소중함과 감사함을 느끼는 것에서부터 이지 않을까.



인간 되기의 과제      


‘식물의 사유’에서 주고자 한 메시지는 결국 우리 인간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지구라는 행성에서 숨을 쉬며 살고 있는 생명들 중 우리 인간은 일부지만, 일부인 우리를 위해 다른 생명들은 인간 생존의 수단에 불과하다. 그 결과 매 계절 다른 형태로 기후 위기는 찾아와 우리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올해 여름이 앞으로 가장 덥지 않을 여름이라고 보도되고 있고, 장마철 물난리는 장마철만의 문제가 아니라 수시로 일어나는 현상이 되고 있다. 이 상태로 간다면 이 땅에서 우리 지구인에게 더 이상 희망적인 미래는 없어 보인다. 시한부 삶을 살아가고 있는 지구의 운명이 유예되기란 어려워 보인다. 지금껏 해온 관성의 힘을 거스르기란 쉽지 않고. 도시의 삶을 청산해 자연 속에서 야생의 삶을 살아가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우리는 살과 피로 만들어진 인간이고 인간의 삶에 타인의 존재는 필연적이다. 사회적인 동물인 인간이 사회 속에서 다른 동물과 함께 살 부대끼며 살아야 함은 숙명이다. 이 땅에서 인간의 숙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연의 세계, 식물의 세계와  공존해야 함은 운명이다. 자연이 우리에게 공기, 물, 불, 흙과 같은 원소를 공유하며 인간을 사심 없이 환대했듯 우리도 자연에 환대하고 환대를 다시 돌려줄 수 있는 태도가 우리에게 시급하다. 그것을 자연으로 대표되는 식물의 존재를 생각하면서 우리도 그를 닮아 살아가야 함을 이 책에서 두 저자는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우선 숲을 찾아 나서야겠다. 식물을 눈에 담고 그들과 교감을 시도해 봐야겠다. 침묵하는 그들에게 무한 경청을 시도해 보려 한다. 이제는 그들도 침묵을 깨고 우리에게 다가와 조언을 시도하고자 할 것이다. 우리가 시급한 만큼 그들도 시급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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