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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절에가다 Dec 05. 2023

<음악은 친구> 음악이 흐르는 집

평생 음악이 친구가 될 수 있다면...

대학시절부터 함께 한 내 친구

우리 집에 없는 것 중 하나는 텔레비전이다. 결혼하며 혼수품으로 장만한 벽걸이 TV를 아이가 태어나면서 집에서 치워버렸다. 신혼을 즐기느라 TV를 켤 일이 그리 많지 않았던 우리 부부는 아이가 태어나면서 TV를 창고로 보내버렸다. 아이와 좀 더 눈 맞춤을 하고자 하는 바람으로, 그리고 백색 소음으로 TV를 이용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그 대신 내가 대학 때부터 사용하던 인켈 소형 전축을 친정에서 가져왔다. 테이블에 놓을 수 있는 작은 크기에 두 개의 스피커가 있고, CD 플레이어가 장착되어 있으며 주파수를 맞춰 라디오를 들을 수도 있는 만능 소형 전축.

 그 당시 인켈은 전축으로 유명한 브랜드였다. 스피커 성능이 좋았고 스피커에서 퍼져 나오는 소리에 울림이 가득했다. 저음 베이스부터 초고음까지 음역 스펙트럼이 넓었고, 작지만 실한 소형 오디오였다. 대학 시절 내 방 침대에 누워서 라디오를 켜고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연주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그야말로 낙원이 따로 없었다. 영어 전공자였던 나는 영어 소리보다 악기 소리를 더 즐겨 듣기도 했다. 성능 좋은 전축으로 영어 소리를 듣기에는 전축에 대한 예의가 아니니까.

 

TV가 없는 거실, 그 공간을 아름다운 음악 소리로 채우며 지냈던 아이와 나 우리 둘만의 시간. 아이와 나 단둘이서 우리들만의 시간을 우리 둘만의 공간에서 보내야 했던 그때 그 시절. 남편은 집 밖에서 신입의 딱지를 떼어내려 부단히 노력했던 때였고, 나는 눈뜨면 아이와 단둘이서 하루를 어떻게든 보내야 했던 그때, 다행히 우리 집에는 내 오랜 친구, 이 소형 전축이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으레 하나의 의식처럼 전축으로 가서 항시 주파수 93.1 FM에 맞춰져 있는 라디오를 튼다. 온종일 틀고 있어도 라디오에서는 매번 다른 음악이 흘러나온다. 아름다운 음악의 선율에  우리의 귀는 하루종일 즐겁다. 특히 저음의 베이스 소리는 이 전축의 압권. 지금까지 이 오래된 소형 전축에서 흘러나오는 베이스 소리만큼 심장을 요동치게 만드는 스피커를 만난 적이 없다. 남편이 몇 년 전에 산 하만카돈 스피커도 내 소형 전축을 따라오지 못한다. 정말 작지만 실한, 내 손때 묻은 이 친구가 곧 수명이 다하지 않길, 오랫동안 우리와 함께 지내길 바랄 뿐.

 

지금도 매일 한 번은 이 소형 전축의 전원 버튼을 눌러 클래식 라디오를 듣는다. 매일 아침 아이를 깨우기 위해 클래식 라디오를 틀어 두는 것은 나의 오래된 습관. 기회를 놓칠 때는 아이가 아침밥을 먹을 때쯤 틀기도 한다. 일어나면서도 밥을 먹으면서도 귀는 항상 음악으로 가득하고, 마음은 음악을 따라 잔잔해지고 서로를 향한 눈빛은 부드러워진다. 적막할지도 모르는 둘 만의 공간에 배경음악은 공기처럼 잔잔하게 채워진다.


온종일 클래식 라디오를 들어왔던 이유는 적적한 공간을 잔잔하게 채우기 위함이기도 했지만, 실은 육아에 지친 내 마음이 아름다운 음악 소리로 살포시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이야 서울 생활 15년이 되어가고 아이 친구 나의 친구 등 주변 지인들과 좋은 인연을 이어가고 있지만, 아이를 이제 막 낳아 키울 때는 아이와 나의 고요한 그 공간이 마냥 적적함과 공허함으로 다가왔었다. 젖을 물리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놀아주고 재우며 무한반복 도돌이표를 그리고 있었던 우리들의 시절. 그 시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음악은 우리들의 물리적인 공간을 채우기만 하지 않았다. 매 순간 내 마음을 편안하게 돌봐주는 아름다운 소리를 가진 친구이기도 했다. 엄마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고, 아이의 마음 또한 잔잔하게 만드는 마법 주문 같은 클래식 음악.


지금도 그 친구는 우리와 함께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친구는 거절 없이 우리 집 곳곳을 아름답게 채운다. 밥솥에서 김 빠지는 소리에 자지러지게 놀라던 내 아이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에는 이내 편안해진다. 작은 소리에도 민감했던 아이가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 소리는 집중할 때도 놀이할 때도 방해되지 않는 편안한 배경음악처럼 생각했다. 간혹 배경음악이 틀려있지 않을 때는 직접 피아노 연주를 하며 공간을 음악 소리로 채웠다. 자주 들어 익히 알게 된 클래식 음악이 하나 둘 많아지고 있고, '캐논 변주곡'을 듣고 직접 피아노로 연주해 보기도 했다. 아이가 한때 피아노로 쳤던 '모차르트 작은 별 변주곡'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면 잠시 모든 동작을 멈춰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도 했다. 내 마음을 치유하고자 집안 가득 채웠던 클래식 음악이 어느덧 아이에게도 친구가 된 것 같다. 오늘도 집에는 음악이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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