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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절에가다 Dec 03. 2023

<음악은 친구> 우리 다시 친구 할까?

평생 음악이 친구가 될 수 있다면...

리코더 연습 중

아이는 현재 11살, 초4. 학교에서 리코더를 배우고 있다. 작년부터 배운 것 같은데, 올해 아이는 리코더에 빠져 한참을 연습했다. 매일 조금씩 30분 이상. 유튜브 리코더 연주 영상을 찾아보고 좋아하는 음악을 찾아 반주에 맞춰 리코더를 불렀다. 리코더가 단순히 초등학교에서 배우는 간단한 악기로 알고 있었으나 전문 연주가가 있을 정도로 리코더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관악기 중에 하나였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매일 스스로 자기 주도 연습을 하더니, 아이는 꽤 실력자가 되었다. 특히 빠른 곡을 선호하는지, '캐리비안의 해적 ost' '캉캉' 등 빠른 곡만 연습했고, 음악시간마다 아이는 친구들 앞에서 연습한 곡을 연주했다고 한다. 발표 포비아가 벌써 주류가 된 또래의 아이와 다르게 아이는 매 시간 손을 들어 발표를 한다고 담임에게 들었다. 집에서 부단히 리코더 연습을 한 이유도 친구들 앞에서 리코더 연주를 보여주고 싶어서였다고. 아이 덕분에 리코더 연습이 교실에서 주류가 되었다고 들었다. 내가 시키면 했을까. 절대. 역시 자기주도 학습은 스스로 동기부여가 되어야 함을 나는 절실히 깨달았다.

학교 오케스트라 타악기 단원

올해 5월 경, 아이 학교에서는 1기 '오케스트라' 단원을 모집한다는 공고가 있었다. 악기가 있는 학생들은 오디션 없이 통과.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보이는 피아노와 경쟁이 그리 치열할 것 같지 않는 타악기는 오디션이 필수. 아이가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기 위해서는 선택지는 단 하나, 타악기 단원뿐. 아이가 피아노와 절교한 지 꽤 흘렀었고, 그동안 다른 악기는 언감생심 시도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단 하나의 선택지가 주어져 다행이라고 여겼다. 악보 볼 줄 알고, 리듬감 충만하고 소리에 민감한 내 아이는 오디션에 합격해 학교 오케스트라 타악기 단원이 되었다.

시도를 두려워하는 아이에게 도전은 항상 난관이다. 난관을 넘어서면 그 누구보다 열심히 잘 해내는 자신을 아이는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매번 도전 앞에서 주저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아이에게는 자주 난관을 넘어서는 경험이 필요하다. 시도와 도전의 시작은 엄마의 의향이 반영될지라도 그 시도와 도전을 수행하는 것은, 난관을 넘어서는 것은 아이 몫이다. 아이는 현재 타악기 단원으로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오케스트라 연습이 있는 월요일을 가장 기대하고, 악기들의 하모니에 흠뻑 빠져있다.


사실 아이가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었으면 하는 내 바람은 이번에도 사심 가득했다. 6살 때 아이가 피아노를 배워 피아노가 아이의 친구가 되었으면 했던 그때의 내 바람처럼. 그리고 내 바람이 지나쳐 결국 아이가 피아노와 절교하게 된 과거 나의 과오를 되돌리기 위하여. 다시 아이의 음악 세포가 들썩이길 바랐다. 음계가 있는 악기를 연주하지 않더라도, 박자와 리듬감만 필요한 타악기를 연주하더라도 상관없었다. 함께 하는 음악의 하모니를 느꼈으면 했다. 여러 악기 소리가 합쳐져 하나의 소리를 내는 그 조화로움을 느꼈으면 했다. 모든 악기가 각자의 자리에서 하모니를 위해 자리매김하며 최선을 다하는 자신을 느꼈으면 했다.


아이는 또래와 형 누나들과 함께 매주 한 번 만나 오케스트라 연습을 하고 있다. 얼마 전 오케스트라 참관 수업이 있었는데, 타악기 단원 한 명이 결석해서 부모님들께 제대로 된 연주를 들려줄 수 없다며 아이들은 불만을 토로했다. 그런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이미 모두들 한 팀이 된 듯했다. 음악의 아름다운 하모니를 위해서는 단원 한 명의 부재도 인정할 수 없다는 그 의지. 단원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의 소리를 들으며 조화로운 음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었던 어느 날, 아이는 피아노 앞을 서성였다. 오케스트라에서 받아온 악보를 보여주며, "캐리비안의 해적 오케스트라 진짜 멋있어, 엄마!"라고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리코더로 열심히 연주했던 곡을 오케스트라에서 다시 만나니 기쁜 듯 보였다. 그러다 아이는 피아노를 담당하는 단원 형의 피아노 실력에 감탄했다며, '캐리비안의 해적 ost' 피아노 영상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것이 시작이라면 시작이었다. 절교했던 피아노와 다시 친구가 되기로 한 첫 악수.


그때부터 아이는 매일 피아노 연주 영상을 찾아보고 손가락의 움직임을 눈에 담았다. 매일 리코터 영상을 보고 연습했듯. 아이의 잠들어 있던 음악 세포가 깨어나기 시작했다. 피아노와 다시 친구가 되기로 피아노와 악수한 이후, 매일 그 친구를 만나고 있다. 놀다가도 문득 피아노 앞에 앉아 캐리비안의 해적을 쳐본다. 악보 없이, 귀와 머리에 저장된 감각으로. 뇌과학 책에서 말했다.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의 뇌는 본인이 직접 치지 않고 귀로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그 세포가 활성화된다'라고. 아이는 오케스트라 연주를 하며 귀로 듣고, 영상을 보며 누군가의 손가락을 줄곧 보았다. 그리고 어릴 적 한 때 몰입해서 장착했던, 지금은 잠자고 있었던 음악 세포가 아이의 손가락을 움직이게 만들고 있다. 아이는 다시 피아노와 친구가 되었다.


다시 손 내밀어 친구가 되기까지 꽤 많은 세월이 흘렀다. 더 많은 세월이 흘러갈 줄 알았다. 닫혀 있던 피아노 뚜껑이 열리지 않을 줄 알았다. 그 아픈 손가락을 보고 있기가 쉽지 않았다. 기다리고 기다리다 영원히 피아노 소리를 들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묵묵히 기다리다 잊혀갔고, 애써 언젠가는… 하며 잊어갔다. 엄마의 욕심을 비우고 비웠더니 아이가 보였고, 그런 아이를 바라보기만 했더니 아이는 다시 원했다. 6살 이맘때 눈만 뜨면 피아노 앞에 앉아 건반을 누르던 그때 그 마음처럼.

앞으로 아이는 다시 만난 친구와 어떻게 지내게 될지… 그때만큼 깊은 우정을 나누게 될지 혹은 다시 거리 두기가 이어질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안다. 내가 할 일. 옆에서 손뼉 쳐주며 언제 이렇게 늘었냐고 칭찬하고 아이의 자기 주도 연습을 응원하는 일. 이렇게 쉽고 간단한 것을 그때 나는 왜 몰랐을까.


피아노 앞에 앉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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