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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절에가다 Dec 03. 2023

<음악은 친구> 더이상 친구가 되지 않기로 절교 선언

평생 음악이 친구가 될 수 있다면...

때는 아이가 6살 여름 방학이 시작될 무렵, 아이는 피아노 개인 레슨을 시작했다. 외동이라 그동안 엄마인 내가 아이의 놀이 친구를 도맡아 해야 했고, 어떻게 하면 아이 혼자 시간을 보내게 할까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우연히 기사로 접한 조성진 히스토리를 보고 나는 결심했다. 사심 가득하게. '피아노와 친구가 되게 해야겠다.' 외동인 조성진이 피아노를 시작하게 된 계기도 그러했다. 피아노가 아들에게 장난감이 되었으면 하는 엄마의 바람으로. 아이는 첫 레슨 이후 오매불망 피아노를 찾는 아이가 되었다.


피아노 연습 매일 기록장 (6세, 7세, 8세..)

사실 피아노가 아이의 친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 이전에 나는 줄곧 아이에게 음악 소리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어릴 적부터 매사 조심스럽고 작은 소리에도 깜짝 놀라는 민감한 아이에게 아름다운 음악 소리를 들려주고 싶었다. 편안한 음악 소리에 마음 편히 쉴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게다가 자신의 손가락으로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소리를 자신의 귀로 들을 수 있는 놀라운 경험을 아이가 느꼈으면 했다. 아이는 엄마의 바람대로, 바람 이상으로 눈뜨면 피아노 앞에 앉아 건반을 누르는 아이가 되었다. 줄곧.


2020, 코로나학년이라 불리던 시절

눈을 뜨면 피아노 앞에 앉아 건반을 누르던 시절. 피아노를 계속 치고 싶어 유치원에 가기 싫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신기하기도 했고, 놀랍기도 했다. 치고 치고 또 치고 또 치고... 조성진 엄마의 말대로, 피아노가 장난감이 되었다. 누르는 대로 소리를 만들어내는 멋진 장난감. 그 장난감을 혼자서 가지고 놀기도 하고, 함께 나란히 앉아 소리를 내며 놀기도 했다. 피아노 선생님이 숙제로 내주신 연습량을 훌쩍 넘기는 일이 다반사였다. 배운 악상기호를 악보에다 수십 개씩 그리며 작곡가가 되어보기도 했다. 배운 곡을 배운 적 없는 변주를 하며 장조에서 단조로 단조에서 장조로 바꾸어 치기도 했다.

"엄마, 이건 좀 다르지?" 라면서.

그때는 정말 아이가 피아니스트가 되는 줄만 알았다. 7살, 8살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어린 설익은 너, 설익어 더 눈부셨던 그때... 진도가 훅훅 나가기 시작했다. 피아노 선생님의 열정에 엄마의 기대감이 얹어지니 아이는 이미 예비 피아노 전공자가 되어 있었다. 주 2회 레슨이 주 3회 주 4회 이어지기도 했다. 레슨 하는 날이 많아질수록 아이는 되려 피아노 앞에 앉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그러다 점점 아이의 얼굴은 빛을 잃어갔다.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 배움의 과정에, 전문가가 되어가는 과정에 고통과 쓰라림은 동반된다고 믿었다. 아이의 힘듦을 옆에서 토닥여주면서도 한 발 나아가도록 이끌었다. 그게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아이는 3년을 근근이 이어가다 피아노와 절교를 선언했다. "나 이제 그만할래."


8살, 4살


아픈 손가락... 피아노는 이후 나에게 아픈 손가락이 되었다. 3년을 피아노와 함께 했던, 피아노를 친구로 생각했던 내 아이의 모습은 가족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갔다. 아이는 자신의 기억 속에서 먼저 지웠을 것이다. 한 때 죽고 못살던 친구였던 피아노를. 소리에 민감했던 아이, 민감한 만큼 아름다운 소리를 좋아했던 아이, 자신이 만든 소리에 순간을 향유했던 아이. 그런 아이를 피아노가 평생 친구가 될 수 있도록 지켜주지 못했던 나를 오래 책망했다. 거실 한쪽 벽 가득 오랫동안 뚜껑이 닫힌 채 나란히 놓여있는 두대의 피아노에 애써 눈길을 주지 않았다. 오랫동안 피아노는 집안을 장식하는 전시품에 지나지 않았다.


아이가 다시 피아노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그 같은 사치스러운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다시 쏙 올라오는 내 기대감이란 불청객을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았다. 아이에 대한 기대감이 허상을 만들어내 내 아이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지금까지 아니, 불과 3달 전까지 닫혀 있던 피아노 뚜껑이 스르륵 열리기까지 나는 그 어떤 사치스러운 기대감을 가지지 않았다. 아이가 피아노와 친구였던 그 3년 동안 내가 평생 들을 수 있는 아이의 피아노 연주를 모두 들었다고 생각하면서. 아이의 마음속 어딘가에 음악 세포가 희미하게나마 자리하고 있을 거라는, 그래서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그 세포가 요동치는 날이 올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서.


그런데 아이가 다시 피아노 앞에 앉기 시작했다.

얼마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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