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
코로나가 막 온 세상을 서서히 잠식시키기 시작할 때즈음이었다. 코로나 세대로 불렸던 당시 2020년 초등학교 입학생들은 유치원 졸업식도 초등학교 입학식도 제대로 치르지 못했다. 유종의 미도, 새로운 시작의 기대감도 흐릿했던 그때, 아이는 다행히 도전 하나를 하고 성취감을 쌓는다.
태권도 1품 합격!
남자아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태권도 도복을 입은 경험이 있을 만큼 요즘 초등학생들에게 태권도는 필수 운동이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주 5일 매일 한 시간씩 땀을 흘리며 운동을 할 수 있는 곳이다. 품세를 익힐 뿐 아니라 요즘은 놀이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줄넘기, 쌍절곤, 피구 등 여러 가지 운동을 배울 수 있다. 무엇보다 도장은 아이들에게 만남의 장소이기도 하고. 놀이터에서 하나 둘 사라진 아이들이 다시 만나 몸으로 놀 수 있는 곳. 특히나 부산하게 움직이는 남자아이들에게 더더욱 필수, 태권도.
새로운 걸 선뜻 시작하지 못하는 내 아이는 운동 역시나 그랬다. 당시 또래 아이들은 도장에 가기만 하면 땀을 뻘뻘 흘리며 논다고 집에 올 생각을 안 한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매번 이 아이, 거절의 연속이다. 뭘 하나 시키려면 삼고초려로는 택도 없다. 내 입에서 “뭐 배워볼래?”라고 말문을 떼는 순간 날아오는 말, ‘아니.’ 거절당하는 일은 절대 만들며 살아오지 않았던 내 인생에 이 아이는 그야말로 넘어야 할 산. 내 인생은 첩첩산중. 앞으로 한 고개 두 고개 넘는 여정이 바로 내 삶이자 이 아이의 삶이라 생각하니 앞이 깜깜했다. 앞이 까마득하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는 자각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이는 나를 닮았으니까. 나를 빼닮은 아이. 누구를 탓하리오. 같이 한 고개 두 고개 넘을 수밖에. 이참에 나도 변할 수밖에. 새로운 도전에 두 눈 질끈 감고 풍덩 빠질 수밖에.
아이가 6살 여름쯤 동네 태권도장에 무심한 척하며 들렀다. 아이 없이 혼자 덜렁 온 나를 보고 관장은 고개를 살짝 갸우뚱했다. 마치 내가 태권도를 배우고자 방문한 것처럼, 나는 주저했고 몹시 머뭇거렸다. “아이가 시도를 어려워해요, 큰 소리를 싫어해요, 부대끼며 지내는 게 익숙하지 않아요.”라는 말을 주저리주저리. 자발적으로 상담차 방문한 그곳에서 나는 아이가 거기서 수련할 수 없는 이유를 주저리주저리 대고 있었다. 시도가 어려운 건 아이보다 나라는 사실을 절감한 순간이었다.
다행히 아이는 별 무리 없이 1년간 태권도장을 다니며 수련을 했다. 그곳에서 친구를 만나기도 하고, 줄넘기와 쌍절곤을 하며 즐겁게 운동을 했다. 피구를 하는 금요일이면 빠지지 않고 등원하기도 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아이는 1품을 땄고, 어느새 태권소년이 되어 있었다. 하얀 도복에서 파란 도복으로 갈아입고 품띠를 동여맨 자신의 모습을 보며 말한다.
"엄마 나 멋있지? “
올해 4월 마라톤 대회에 출전했다. 우리 가족 셋, 지인 가족 셋 총 여섯 명이 함께. 아빠 둘, 엄마 둘, 아이 둘. 아빠들은 고등학교 동창, 아이들은 태어나자마자 둘도 없는 친구. 서로가 같은 해에 태어난 네 남자의 끈끈함이 세월이 갈수록 빛을 발하고 있고, 그래서 함께 도전하기로 했다. 첫 마라톤 도전. 처음이라 그리고 함께하기에 더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첫 도전이니 다음을 위해 가장 쉬운 코스에 출전하기로 했다.
5km 걷기.
엄마 아빠와 함께하는 도전에 다행히 아이는 거부감이 없었다. 매번 거절이 일상인 아이지만, 이번에는 친구와 함께 한다니 더 흔쾌히 참여 의사표시를 했다.
“땡땡이랑 출전해서 훨씬 재밌겠다. 10km 걷기는 없어?”
점점 아이는 가족의 반경에서 벗어나 친구와 함께 하는 활동을 선호하기 시작한다. 새로운 도전에 아이는 친구와 함께 하길 바란다. 서로 의지하며 응원하고 끌어주는 관계에서 친구와 함께 시도하는 새로운 도전은 아이에게 그리 큰 산이 아닌 듯 보였다. 마치 쿠파를 없애기 위해 마리오와 루이지가 함께 힘을 합쳐 난관을 극복하는 것처럼. 아이들에게 5km 걷기 마라톤이 쿠파를 없애는 것만큼의 도전은 아니지만, 둘의 시너지는 쿠파도 없앨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함께라면 시도의 두려움은 반으로 줄어들고, 함께 하는 시도에 기대감은 배가 되니. 1+1=2가 아니라 1+1= 헤아릴 수 없는 수가 되는 듯 둘은 서로 의지하며 함께 했다.
시도가 어려운 내 아이는 앞으로도 친구를 자주 찾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 때부터 인생은 혼자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듯. 날 태어나게 한 부모의 존재 아래에 항상 혼자인 자신. 사랑이 넘쳐흘러 자신은 곧 사랑의 다른 말이지만, 점차 함께 시도할 친구를 찾아 나서는 아이의 미래 모습. 그러면서 차츰 혼자여도 괜찮고, 혼자여도 씩씩하게 시도하며 1 (자신) 그 자체도 헤아릴 수 없는 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며 어른이 되겠지. 가족의 테두리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것처럼, 친구를 찾아 나서는 것처럼, 어른이 되어가는 것처럼. 어른이 되어 함께여도 혼자여도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겠지. 함께는 함께여서 좋고, 혼자는 혼자여서 좋은 사람. 이 모든 것은 커가는 과정이니까. 시도하고 도전하는 경험, 시도한 도전을 잘 완수하고 성취하는 경험이 쌓일수록 아이는 더 나은 사람이 되어있겠지.
새로운 시도는 누구나 두렵다. 가보지 않은 길은 낯설고 그래서 긴장과 불안이 동반하기도 한다. 모두가 쉽게 지나가는 길이라고 나에게도 그러하리라는 법은 없다. 익숙하지 않으면 익숙해질 때까지 누구나 시간과 애씀이 필요하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존재하고, 처음은 시간과 애씀으로 더 이상 처음이 아니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갔으면 좋겠다. 두렵지만 시도하는 사람, 익숙하지 않지만 곧 익숙해진다고 믿고 도전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가보지 않은 길이지만 옆에 있는 사람에게 손 내밀고, 그의 내민 손을 맞잡고 그 길을 따라 흔쾌히 나설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건 모두 나에게 하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