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피아절에가다 Dec 25. 2023

나마스테

당신의 영혼이 안녕하길 내 영혼이 인사합니다.

고요히 나와 만날 수 있는 시간, 내 몸과 자유로이 대화할 수 있는 시간, 찰나에 머물러 그 안에 존재할 수 있는 시간이 왔다.


매트를 가져온다. 내 키보다 조금 긴 요가 매트를 가지런히 편다. 매트 옆선을 거실 바닥의 타일과 나란히 맞춘다. 매트 위에는 균형을 위한 선들이 그어져 있다. 손을 두는 위치에 하나, 발을 두는 위치에 하나 그리고 정중앙에 하나. 선들 덕분에 혼자서도 몸의 균형을 맞추며 동작을 할 수 있다. 매트를 준비했으니 다음은 자기 주도 요가를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개인 맞춤 선생님을 모셔온다. 차분한 목소리와 느린 속도감으로 몸을 천천히 열어주는 ‘구독 좋아요’를 누른 요가 영상을 켠다. 그러고 나서 내 몸이 나에게 건네는 소리를 듣고 그날의 요가를 고르면 준비는 완벽해진다.


주로 ‘빈야사’나 ‘아쉬탕가’를 고른다. 아랫배를 지속적으로 끌어당긴 채로 팔과 다리를 뻗는 힘찬 동작들을 이어가는 이들 요가는 수련에 가깝다. 선 자세로 쉴 새 없이 물 흐르듯 이어지는 요가를 선호한다. 실은 선호보다 내 게으름 때문이라 실토해야겠다. 자주 요가 매트 위에 앉지 못하니 한 번 불이 댕겨지면 힘찬 동작을 해야만 운동한 것 같은, 건강한 몸을 유지할 것 같은 생각 때문이다. 한 시간 후 송골송골 땀방울을 마주할 생각에 시작 전부터 즐겁다. 가끔 아주 가끔 옆구리를 쭉쭉 늘리는 깊은 스트레칭이 필요할 때는 ‘하타요가’를 선택하기도 하지만, 무릎이 좋지 않은 나는 하타요가를 하기 전부터 난감하다. 무릎을 접고 꿇어앉아하는 동작들이 많아 제대로 따라 할 수가 없으니 아파서 식은땀이 절로 난다. 결혼 전 키를 높이려 감당 안 되는 굽 높이의 구두를 신고 뛰고 했던 후유증이 내 몸에 각인된 채 남아있어서다. 그럴 때면 이내 ‘인요가’로 바꿔 동작을 한다. 한 가지 동작을 오래 머무르며 움직임을 최소화하는 인요가. 무릎을 접지 않고 되레 무릎을 펴 햄스트링을 늘리는 동작이 많은 인요가는 나에게 힐링이다. 가끔 몸은 피곤하지만 그럼에도 에너지가 필요할 때 인요가를 하고 나면 온몸이 개운해지며 활력이 샘솟는다.


이렇게 좋은 걸 알면서도 자주 하지 못해서 안타깝다. 요가를 좋아한다고 말하면서도 너무 좋아하면 안 될 것만 같은 요상한 마음의 줄다리기라고 해야 할까. 누구나 아는 짝사랑의 말로를 요가에 대입하고 싶지는 않은데. 혼자 마음 끓이다 결국 쌍방향의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푸시식 꺼지는 불꽃이 되고 싶지는 않은데. 좋아하면 더 자주 가까이 만나서 결판을 지어야 할 텐데. 애호가 사랑이 되든 마음을 접든. 나는 역시 줄다리기만 하다 끝내 내 마음 한 번 보이지 못하고 돌아서는 쪽이다. 그게 취향의 영역일지라도. 요가라는 취향일지라도.


사실 요가를 매일 만난 적도 있었다. 하루도 하지 않으면 온몸에 가시가, 아니 온몸이 점점 통나무가 되어가는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었던 때가. 몸을 비틀지 않으면, 목을 꺾지 않으면 몸의 세포가 점점 굳는 것만 같고 그래서 머리 회전도 멈춘 것만 같은 나만의 궤변을 늘어놓은 때가 있었다. 그때는 어깨가 항시 귀에 닿을 듯 긴장감으로 솟아올라 있었고, 그러다 문득 어깨 통증으로 이어져 양쪽 어깨 위에는 동전만 한 파스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붙여져 있었다. 모든 긴장감과 불안감을 이 어깨가 고스란히 떠받치고 있으니, 어깨를 쉬게 할 수 있는 것은 인위적인 방법뿐. 통증에 둔감할 수 있게 파스의 힘을 빌려보거나 혹은 힘을 써서 어깨를 조물조물 풀어주는 것. 파스를 붙이거나 뭉친 근육을 풀어주는 것이 통증의 근원적인 해결책은 아니겠지만 그렇게라도 해야 몸이 숨을 쉴 수 있었다. 내가 내 몸을 돌보는 일에 요가라는 운동은 탁월했고, 파스를 더 이상 찾지 않아도 될 만큼 요가는 내 몸에 숨을 불어넣어 준다.


매트 위에 수카사나로 앉는 순간부터 바짝 긴장되어 있던 몸의 세포들이 흐물흐물 느슨해지는 것만 같다. 정좌로 앉아 눈을 지그시 감고 두 손은 양 무릎에 두고 검지와 엄지를 동그랗게 붙인 채로 가만히 앉아 짧은 명상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이미 나는 요가의 세계로 들어와 있다. 몸보다 마음이 먼저 가벼워져 이 부유하는 마음을 주저앉히느라 내 몸이 곧 바빠질 예정이다. 어서 몸을 써 동작을 이어가지 않으면 마음이 하늘을 날아다녀 붙잡기 어려워질 것만 같기에 눈을 떠 내 몸 구석구석을 한껏 늘려본다.


혼자 소위 방구석 요가를 하다 최근에는 센터에서 요가를 하기 시작했다. 6개월이 넘었고 이제는 혼자 하는 것보다 함께하는 요가가 더 익숙해졌다. 동네 요가 센터에 처음 고개를 들이밀고 쭈뼛하며 구석에 자리해 이리저리 살피며 요가한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집에서 혼자서 할 수 없을 정도로 함께 요가하는 재미에 폭 빠져버렸다. 자기 주도 요가의 길은 나에게 멀고 먼 것인지, 아니면 요가는 원래가 함께하는 시너지효과가 극대화되는 운동인지, 아무튼 센터 요가의 묘미를 한껏 느끼고 있는 중이다.


사실 자기 주도 나 홀로 요가를 할 때는 규칙적이지 못했다. 자기 주도는 몸이 원할 때, 시간 여유가 있을 때 혹은 속이 시끄러울 때만 그럴 때만 요가 매트 위에 날 앉게 했다. 다른 여타의 일에 요가는 매번 밀리고 밀려버려, 내 몸은 버티고 버티다 자신을 돌봐달라 나에게 신호를 보내고 몸의 아우성에 그제야 매트 위에 앉는다. 몸은 아우성친 만큼 단단히 굳어있고, 나는 후회를 하며 굳어진 몸에 어서 숨을 불어넣는다. 후회가 몰아쳐와도 소용없다. 규칙적으로 자주 요가를 했으면 몸의 아우성이나 마음의 이물감을 느낄 겨를이 없었을 텐데, 나 홀로 요가는 아무래도 자기 주도 계획과 끈기가 훨씬 더 필요한 법이다.


문득 뭐든 타인과 함께 하는 것이 꾸준한 지속성을 유지하는 가장 쉬운 방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다 나를 이끌어주는 멘토라는 존재가 있다면 훨씬 커다란 성장이 있을 것이고. 눈앞에서 들리는 요가 선생님의 구령에 귀는 열리고 몸은 소리를 따라 흘러가고, 어지럽던 마음은 어느덧 몸과 하나가 되어 고요해진다. 함께하는 사람들의 몸도 마음도 서서히 녹아내리고 그 공간 안 우리의 에너지는 무한히 충만해진다. 특히나 쉴 새 없이 동작이 이어지며 흐름에 내 몸을 맡기는 빈야사 요가를 함께 할 때면 그 공간 전체가 하나의 덩어리처럼 힘찬 기운이 흐르며 공명한다. 서로의 에너지를 주고받으며 순간에 몰입하는 경험. 함께 하기에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그 경험. 작은 매트 위 하나의 세계가 만들어지고 그 세계가 많을수록 그날의 요가는 더 깊어지고 충만해진다.


센터 요가를 하면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길을 건너는 느낌이 스민다. 멘토의 존재 그리고 함께 하는 사람들의 기운과 시너지의 마력에 폭 빠져버려 나 홀로 요가의 재미와 의미가 희미해져버리고 있다. 매트 위에 앉기까지 마음의 거리는 나 홀로 요가보다 센터에서 함께 하는 요가가 이제는 더 가까워 보인다. 매트만 깔면 그 어디든 요가의 세계가 펼쳐지지만, 나를 반기는 멘토의 존재 그리고 서로에게 ‘나마스테’로 인사하고 ‘나마스테’로 마무리하는 함께 요가의 행복감, 이것이 현관문을 열고 집 밖으로 향하는 내 발걸음을 신나게 한다. 가끔 무기력과 나태가 찾아와 내 발걸음을 무겁게 하기도,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이내 환청이 들린다.

“땡땡씨, 요즘 뜸한 거 같아요. 우리 일주일에 한 번만 보는 사이는 아닌 것 같은데...”

요가 선생님은 나를 무척 아끼신다. 한 번 빠진 걸 가지고 무슨 앞으로 요가 안 한다고 고백한 사람 대하듯 한다. 그곳에서 내 자리는 온전한 한자리로 자리매김한다. 요가 매트 위에 수카사나로 앉는 순간 내 세계는 그 안에 안착된다. 각자의 온전한 자리가 자신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가 되고 우리는 몸을 움직이며 마음을 고요히 한다. 함께하는 그곳에 각자의 세계가 펼쳐지고 그 세계들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기운을 만들어낸다. 요가라는 세계로 들어가길 잘했다.

당신의 영혼이 안녕하길 나의 영혼이 인사합니다.

‘나마스테'

이전 05화 30년 지기 친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