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피아절에가다 Dec 18. 2023

30년 지기 친구

곁에 오래 두고 지내온 친구가 있으신가요?

나에게는 20년 지기 친구가 있다. 대학시절부터 내 곁에서 함께한 이 친구는 테이블에 놓을 수 있는 작은 크기에 두 개의 스피커가 있고, CD 플레이어와 카세트 플레이어가 장착되어 있으며 주파수를 맞춰 라디오를 들을 수도 있는 만능 소형 전축이다. 당시 전축으로 유명한 브랜드, 인켈에서 만들어 스피커 성능이 좋고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에는 울림이 가득하다. 저음 베이스부터 초고음까지 음역 스펙트럼이 넓은, 작지만 실한 소형 오디오다. 대학 시절, 내 방 침대에 누워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그야말로 낙원이 따로 없었다. 친구가 구워준 CD에서 노라 존스의 중저음 보이스가 흘러나오면 마음이 몽글몽글해져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아쉽게도 지금은 라디오 기능 이외에는 쓸 수가 없어졌다. 그동안 쓰지 않으니 CD플레이어나 카세트 플레이어는 당연히 고장이 날 수밖에 없고, 먼지가 켜켜이 쌓이다 그 둘은 수명을 다했다. CD플레이어는 아이가 갓난쟁이 일 때까지는 다행히 잘 버텨주었지만, 자주 아이의 손길을 받으니 결국 유명을 달리했고, 카세트 플레이어는 오래전에 골동품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요즘은 매일 아침 라디오를 켜면서 기도한다. 좀 더 오래 버텨서 좋은 소리를 들려달라고, 20년 지기 말고 30년 지기 친구로 내 옆에 남아달라고. 너처럼. 초등학교 6학년 때 나의 짝꿍, 너처럼.



때는 1994년 초등학교 6학년 여름 우린 교실에서 처음 만났다.


“안녕, 내 이름은 김 땡땡이야. 잘 지냈으면 좋겠어.”


낯선 학교 낯선 선생님 낯선 반 친구들 앞에서 나는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 비어있는 자리에 가서 앉았다. 너와 짝꿍이 되었고, 너는 내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이후로도 죽. 눈길이 뭐야 책상 중간에 푹 선을 긋고서 내 팔이 그 선을 넘어가면 넘어간 만큼 내 자리가 사라지는 이상한 논리를 펼치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도 죽 내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며. 예를 들면, 짝꿍인 나를 두고 옆 분단 여자아이와 조잘대며 나를 투명인간 취급하질 않나, 말을 걸면 못 들은 척하질 않나, 멜빵에 딱 붙는 바지를 입은 나를 두고 다른 남자아이들과 놀리질 않나… 지금 같았으면… 말을 말자. 말해서 뭐 해. 지금 내 옆에서 쿨쿨 자고 있는 너는 그때 그 녀석. 꿈은 아니겠지? 그때가 꿈인 건가. 가끔 너를 보면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싶기도 하지만.


넌 지금 이렇게 말하더라, 하필 설거지를 하면서 “아빠가 어릴 때 엄마를 많이 괴롭혀서 지금 이렇게 살고 있잖아.” 그리고 한 마디 더 덧붙인다.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해, 아들아.” 그러다 나름의 결론을 내린다. “아빠는 엄마를 사랑해서 그랬다.” 이상한 논리는 여기에도 등장한다. 넌 항상 이상한 논리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 같다. 그때 걔가 걔냐고 하는 당시 너의 예비 장모님은 혀를 내둘렀지. “너 걔 때문에 집에 와서 얼마나 많이 울었는데, 걔가 걔라고?” 지금은 그때 걔를 안 만났으면 어쨌겠냐고 너를 둘도 없는 사위라 하시지만, 역시 우리나라는 결과 중심주의 사회인가 보다. 너의 한때 지독함이 평생 지극함으로 변모하여 우리 함께 해피엔딩을 그리고 있으니 말이야. 참으로 다행이다. 그렇지 않니? 그러니까 앞으로도 잘 부탁해. 평생 내 짝꿍으로 남아서 설거지를 비롯해서 집안일 종종 기대할게. 그리고 꼭 말해주고 싶었던 것. 책상 선은 이젠 내가 그을 거야. 알았지?


그런데 참 희한하지. 너 말대로 사람은 정말 착하게 살아야 하나 봐. 당시 짝꿍인 나를 그렇게 울리더니 자식이 울고 오니 하늘이 무너지나 봐. 자식이 친구에게 이러저러해서 놀림을 받았다고 불평을 늘어놓으니 부들부들 붉으락푸르락. 너의 얼굴 표정이 이렇게 다양한 줄은 몰랐다. 눈썹이 치켜 올라가고 미간에 주름이 가득하며 눈빛은 이리 날카로울 수가. 눈매 끄트머리가 살짝 올라가 짓궂어 보이는 네 얼굴은 익히 잘 알고 있었는데 말이지, 6학년 때부터. 특히나 장난기 가득한 행동과 더불어서. 좀체 그동안 안면 근육이 다양하게 움직이지 않던 네가 아이의 푸념 한마디에 그렇게 다채로운 얼굴을 보여주다니, 오래 살고 볼 일인가 봐, 그리고 자식을 낳아볼 일인가 보고. 나는 덕분에 되려 침착해질 수 있었어. 아이의 속상한 마음을 충분히 공감하면서, 속상해하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지.


“걔 아무래도 너 좋아하나 봐."


어린 시절 우리의 경험을 전하면서 말이야. 그때 그 지독하게 날 속상하게 했던 짝꿍이 실은 날 너무 좋아해서 지독했었다는 사실을 아이에게 알려주면서. ‘다 지나간다’가 아니라 ‘그럴 수 있다 ‘로 설명하며. 다 지나가니 참아라가 아니고 널 좋아하면, 너에게 호감이 있으면, 너와 친해지고 싶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그때는 일방적이었으나 책상 선을 그으며 자리싸움을 하던 풋내 나는 우리의 경험이 지금 함께 웃으며 떠올릴 수 있는 추억이 되지 않았다면, 과연 나는 아이의 속상함에 어떤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아이의 울분에 붉으락푸르락 다양한 표정을 보여준 아빠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때로는 이상한 논리로 이어지기도 하니까.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아이의 눈물을 고스란히 되돌려주고 싶으니까. 아이의 작은 상처에도 내가 더 깊이 쓰라리고 아리니까. 상처 따위는 내 아이와 무관한 일이어야 하니까. 그것이 아이를 더 연약하게 만드는 일인 줄 모르고서. ‘그럴 수 있다, 너를 좋아하니까 너와 친해지고 싶으니까 그럴 수 있다, 그렇기에 너는 친구들에게 그런 사람이다’를 알려주고 싶었다. 우리 둘의 찐 과거 경험을 들려주면서.


담임 선생님의 말씀에 다행히 아이는 엄마의 말이 진실이라 믿게 되었다. 자신을 놀린 그 아이가 정말로 자신과 친해지고 싶어서라는 것을, 친해지고 싶은데 방법을 몰라 그런 것이라는 것을, 친구들에게 자신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아이는 알게 되었다. 과거 그때 그 시절 날 울렸던 내 짝꿍이었던 너 덕분에 나는 아이에게 ‘그럴 수 있다’ ‘너는 사랑받는 사람이다’라는 것을 나의 경험으로 가르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아이의 눈물에 차분한 나를 내 짝꿍은 잘 이해하지 못하는 듯 하지만.


사실 말이야. 그때 그 시절 너의 마음도 사랑이었지 않았을까. 설익어 풋내 나지만 그건 그런대로 아름답고 소중한 너의 마음 한 조각.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절에 우리 둘, 나를 향한 너의 마음과 그 마음을 받은 나. 비록 나에겐 눈물과 오해로 점철된 기억이었으나, 지독한 만큼 사랑의 크기와 깊이는 지독함을 넘어서 있다는 것을 지금의 나는 안다. 그때 그 너의 무심함이 나에 대한 사랑이라 읽을 수 있는 현재의 나. 그것이 사랑이 아니면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하는 현재의 나. 그 시절 내 눈물을 현재 진행형의 사랑으로 무한히 퍼주고 있는 지금의 너. 내 고민을 들어주며 ‘그럴 수 있다’ ‘넌 잘하고 있다’ ‘너는 할 수 있다’라고 항상 옆에서 응원해 주는 든든한 지원군. ‘엄마를 어릴 때 많이 괴롭혀서 지금은 이렇게 살고 있다’고 아이에게 토로하면서도, 글 쓰고 있는 나에게 힘과 용기를 북돋아 주는 너를 보며 이게 사랑이 아니면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눈먼 사랑의 지독함이 때로는 상처로 다가올 수 있지만 상처는 사랑의 지극함으로 아물고 그곳에는 더 뽀얀 새살이 돋기도 한다. 이 징글징글한 우리의 사랑은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더 깊어지고 있다. 곧 있으면 우리가 처음 만난 지 어느덧 30년이 되어간다.

이전 04화 놀자 놀자 어려서 놀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