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나, 다군 모두 불합격. 대학에 가기 위한 첫 입시에서 3번의 기회 중 3번을 불합격했다. 깍두기도, 추가 합격도, 패자부활전도 없었다. 완전한 실패였다.
이화여대를 탈락한 이후부터는 '불합격'이라는 현실이 훨씬 쉽게 납득이 되었다. 동국대나 경희대를 합격했다면 오히려 그것이 더 거짓말처럼 느껴졌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마 일찌감치 받아들이고 각오했던 모양이다.
대학에 안 갈 생각은 아니었으니 자연스럽게 재수를 준비했다. 마침 집 근처에 유명한 재수 학원이 있었다. 등록을 하려면 테스트를 봐야했는데, 시험 날이 하필 고등학교 졸업식이었다. 당연히 졸업식은 참석하지 못했다.
예체능 반 학생들 중에서는 그나마 시험 성적을 좋게 받았던터라 졸업식에서 학업우수상인지 뭔지를 받게 되었다고 들었다. 기쁘지도 자랑스럽지도 않았다. 친한 친구가 대리 수상을 해서 상장을 전해줬다.
친구들을 만나 근황을 나눌 때면 "나는 가,나,다군 전부 떨어지고 라군에 합격했어~ 대성학원이라고 있어~ 바로 집 앞이라 엄청 가까워~"라며 자조 섞인 농담을 했다. 그러면 대학에 합격한 친구들은 숙연해졌고, 같은 처지의 친구들은 함께 껄껄 웃었다.
그렇게 또 '어쩌겠어'라는 마음으로 현실을 받아들였다.
여고를 나온 나에게 재수 학원은 그냥 남녀 공학 고등학교였다. 시간표에 맞춰 수업을 듣고, 점심 시간에 점심을 먹고, 잠시 전쟁 같은 매점 타임(?)을 치르고, 수업이 끝나면 자습을 하다가 집에 갔다. 단지 학생들 연령이 다양하고 남학생들이 함께 있다는 것이 차이점이었다. (아, 가끔 어디선가 누군가에게서 술냄새가 나기도 했었다는 것도 차이점이다.)
체대 입시를 포기한 것은 아니지만, 체대 입시 학원은 다니지 않았다. 정확히는 부모님께서 등록을 미루셨다. 결국 우선은 수능 성적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셨던 모양이다. 체력이나 운동 감각이 떨어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워낙 작년 수능을 망했던 터라 조용히 따랐다.
교복이 아닌 사복을 입고서 사실상 고등학생과 다를 바 없는 하루를 보낸다는 것. 똑같은 규율 안에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이 자리 앉아 있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라는 것. 자연스러워 보이면서도 기묘하게 모순이 느껴지는 하루하루.
그 하루가 익숙해질 때쯤, 더 이상 내가 고등학생이 아니라는 사실이 실감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