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란 무엇인가

혼돈의 재수생 시절(1)

거창하고 화려하고 눈부신 스무살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재수학원에서 고3과 다름없는 생활을 하는 스무살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고등학생 때까지는 싫어도 억지로 앉아서 공부해야 하니, 힘들다고 투정이라도 부릴만 했다.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은 왜 이 모양이냐며, 왜 파릇한 청소년들을 이렇게 괴롭히냐며, 왜 다들 좋은 대학 타령하는거냐며 불평불만을 가질 수 있었다.




study-1629888_1280.jpg




재수생이 되니 더 이상 아니었다. 공식적인 의무 교육은 모두 끝났다.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이 싫다면 공부를 그만 두어도 된다. 좋은 대학 타령이 지겨우면 대학을 포기하면 된다. 그렇다고 해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결국 그렇게 불만스러웠던 교육 시스템에서 떠나지 못 한 채, 다시 1년을 투자해보겠다고 선택한 것은 나 자신이다. 그 하루를 감당하며 버티는 것도, 떠나는 것도, 도전하는 것도, 포기하는 것도 모두 나의 자유이다.



그렇다고 지금 여기에 앉아서 공부를 하고있는 내가 완전히 내 자유 의지로 있는 것이냐 한다면, 그것도 아니었다. 딱히 다른 선택지가 있는 것도, 마땅히 하고 싶은 것도, 그렇다고 강한 의지나 목표를 가지고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어쩌다 주변의 권유로 체대 입시의 길을 걸었던 고등학교 1학년 시절처럼, 수동적으로 공부를 하고 있었다.



기계처럼 문제집을 풀다가 문득 고개를 들면 '의무와 선택' 사이 어딘가에 앉아 있는 N수생들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애처롭기도, 안쓰럽기도 한 등짝들. 나 같기도, 남 같기도 한 뒷통수들. 누구나 각자의 고유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재수학원 교실 안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classroom-2093744_1280.jpg




3월부터 재수학원에 등록하면서 입시 체육 학원은 아예 다니지 않았다. 그저 보통의 입시생들처럼 아침 일찍 등원하고 밤 늦게 귀가하며, 주말엔 학원에 나가 자율학습을 하거나 독서실에 다녔다.



재수학원 생활이 시작되고 나서야 지난 체대입시 학원 생활이 정말 행복했다는 것을 실감했다. 함께 준비하던 고3친구들과 N수생 언니오빠들, 선생님들과의 관계도 너무나 편했다(은따를 당하던 고3 교실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더욱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목표도, 과정도 뚜렷했기에 집중하기도 편했다.



그래.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그거다. 누군들 재수생 신분으로 수능 공부하는 것이 즐거웠겠냐만, 공부는 정말 적성에 맞지 않았다. 3번의 기회 중 3번을 실패하는 경험을 했음에도 간절함이나 목표의식이 생기지 않았을 정도로. 그렇게 또다시 마음을 잡지 못한 채, 입시 준비가 시작되었다.



올락말락하던 짧은 봄이 지나, 여름이 되었다.

keyword
이전 10화합격했어, 라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