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생 삶의 낙 1, 개그 공연

혼돈의 재수생 시절(2)

재수학원의 정규 수업은 저녁 6시에 마쳤다. 한 시간의 저녁 식사 시간을 갖고, 그 이후 시간을 어떻게 쓸지는 개인의 자유였다. 교실에 남아서 자율학습을 하거나, 각자 집이나 독서실에 가서 공부를 하거나, 추가로 다니는 단과 학원을 다니는 등 선택할 수 있었다.



굳이 독서실이나 다른 학원을 선택하지는 않았다. 정확히는, 부모님이 선택하지 않으셨다. 고3 시절, 독서실에서 혼자 공부하게 뒀더니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 너무나 잘 알고 계셨다.



하지만 다같이 공부하는 분위기 속에서 있다보면 눈치보이고 휩쓸려서라도 열심히 하게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셨던 모양이다. 학원 마감 시간까지 자율학습 하다가 집에 올 것. 주 중 나의 의무사항(?)이었다.



부모님이 간과하셨던 것이 있다. 그런다고 열심히 공부할 내가 아니었다. 학교에서의 자율학습과 달리 재수학원에서의 자율학습은 말 그대로 자율이었다. 끝까지 남아서 공부를 하건, 일찍 귀가를 하건 개인의 자유였다. 즉, 내가 학원 밖으로 나가건 말건 아무도 터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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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 시절이 '만화책'에 눈 뜬 시기라면, 재수생 시절은 '개그 공연'에 빠진 시기였다.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스탠딩 개그 프로그램 '웃음을 찾는 사람들(이하 웃찾사)'에 미쳐있던 나는, 주 1~3회 정도 학원 정규 수업을 마치고 홍대로 향했다. 웃찾사에 실제 출연하는 개그맨들이 정기적으로 개그 공연을 여는 소극장이 홍대에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공연은 유료이고 관람료가 3만원 정도 했었기에, 공연장에 들어가진 못하고 그 주변에서 서성이다 오는 날이 많았다. 그러다보면 가끔 TV에서 보던 개그맨들이 공연장 주변을 지나다녔다. 눈빛과 표정으로 존재감을 뿜어내다가 어느정도 그들의 눈에 내가 익었을 것 같다 싶으면 용기내어 말을 걸고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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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들과도 슬슬 얼굴을 익히고, 공연장 주변에서 자주 마주치는 팬들하고도 친분이 쌓였다. 공연장 옆 떡볶이집 사장님은 절친이 되었다. 추위나 더위를 피해 떡볶이를 먹고 있으면 사장님이 "오! 방금 OOO 지나갔어!" 하고 알려주시곤 했다.



관객이 적은 날엔, 운이 좋으면 개그맨들이 공연장 밖으로 나와서 팬들에게 다가와 "공연 볼래?"라고 묻기도 했다. 그것도 몇 번 반복되고 나니 공연 내용을 줄줄 외울 지경이었다. 그래도 우리 개그맨 오빠들(?) 기죽지 말라고, 마치 세상 이렇게 웃긴 것 처음이라는 듯 큰 소리로 박장대소를 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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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 끝난 뒤 막차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 학원 마감시간까지 공부하다 돌아오는 시간하고 거의 비슷했다.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으면 우리 딸 목이 다 쉬었을까', '얼마나 집중했으면 저렇게 먼 길 다녀온 듯 지쳐 보일까' 라고 부모님은 걱정하셨으려나. '근데 왜 저렇게 스트레스 하나 없이 개운해보이고 기분 좋아 보일까?'라고 갸웃하셨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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