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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이 May 05. 2023

60분 집안일

회사를 다니며 가장 소홀히 했던 일은 집안일이었다.

퇴근 후 집에 도착해서 집안일보다 더 우선을 두었던 것은, 아이가 어렸을 때는 육아, 그리고 아이가 커 가면서는 교육이었다. 회사를 다닐 때 아이의 교육을 포기할 수 없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과장, 차장 시절에 야근이 가장 많았던 나는 늦은 시간에 집에 와서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아이가 학교 숙제를 다 했는지를 확인하고 아이가 버거워하는 학원 숙제를 봐주었다.


그렇다 보니 집안일은 자연스럽게 친정엄마가 하게 되었다. 아이가 어렸을 때는 집에 같이 거주하면서 평일을 고스란히 육아와 집안일을 맡아하셨다. 아이가 어렸을 때나 커 갈 때나 달라지지 않는 건 가사이다. 기본적인 청소, 설거지, 빨래 등 달라지는 게 별로 없다. 워낙 깔끔하셨던 엄마는 힘드시면서도 집안을 반짝반짝하게 만들었고 어느덧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고서야 엄마에게 일주일에 한 번만 와서 도와달라고 부탁을 했다. 하지만, 사실 엄마에게는 일주일에 한 번 온다고 해서 집안일이 더 쉬워지는 건 아니었다. 일주일 동안 손대지 않았던 곳곳을 청소하느라 하루 종일 앉을 새가 없었을 것이다.


나는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대며 집안일은 거의 손대지 않았고, 만약 내가 퇴사를 하게 된다면 TV에서나 보듯, 깔끔한 냉장고 안을 상상했다. 냉장고 속에 있는 반찬통들은 가지런하게 정리가 되어 있고, 가끔은 얇은 빨간 테두리의 견출지에 날짜 같은 것도 적으리라 생각했다. 




퇴사 후 나의 집안일은 어떻게 되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회사 다니기 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 나 스스로도 놀라면서 아, 이럴 수도 있구나 싶었다. 회사를 다니고 안 다니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집안일을 대하는 내 마음가짐이 문제였다. 퇴사를 하고 제 아무리 시간이 많아도 나라는 사람은 집안일을 좋아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고, 잘하지도 못하고, 무엇보다 잘할 마음도 없다는 걸 알았다.


그러면서도 차곡차곡 쌓여가는 집안일에 스트레스가 쌓였다. 결국, 나는 나 자신을 인정하고 집안일은 적당히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회사를 다닐 때보다 더 잘할 필요도 없고 무엇보다 내가 집안일에 관심과 소질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사실 퇴사 초반에 나름 열심히 해 보려고 노력을 했다. 하지만, 열심히 청소했던 거실 바닥이 단 하루도 안되어 먼지가 쌓이고 머리카락이 여기저기 보이고, 거기다 욕실은 대체 뭐냐? 그 독한 락스 냄새를 맡아가며 청소를 하고, 물 때를 지우느라 있는 있는 힘을 다 쓰고, 얼룩진 거울에 입김을 불며 닦아도, 아이의 샤워 한 번에 모든 것은 초토화! 마치 마법처럼 눈 깜짝할 사이 나의 모든 노고가 사라져 버린 걸 몇 번 목도하면서 나는 나름의 방법을 찾았다. 대충 하는 나만의 방법. 바로 하루 딱 60분만 집안일하기. 더도 말고 덜도 말고 60분. 


그렇게 나는 타이머를 60분으로 맞추고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집안일을 하기 시작한다. 생각보다 빨리 끝났을 때는 더 할 게 없나를 생각하고 찾아서 하고, 시간은 다 되어 가는데 아직 집안일이 남았으면 대충 마무리를 하고 내일로 미룬다. 물론, 이것마저도 지키지 못할 때가 있다. 마감일이 촉박해 엉덩이에 땀띠 날 정도로 앉아서 주야장천 번역을 해야 할 때는 가족들의 식사도 챙기지 못해 배달음식을 시키고, 급행 번역으로 밤을 새워야 할 때는 모든 생활 리듬이 며칠 동안은 엉망이 된다.


하지만, 결국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고 나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이 60분의 집안일을 가능한 지키고 있다. 더 늘리고도 더 줄이고도 싶지 않은 딱 60분 만의 집안일이 내게는 가장 알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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