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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이 Apr 15. 2023

적금의 차이

퇴사를 하고 근 두 달 뒤부터 아주 약소한 금액이지만 나의 노동으로 인한 돈을 받았다. 그것도 내가 하고 싶었던 번역 프리랜서로 일을 하며. 처음의 그 소소한 금액이 내 통장에 찍혔을 때의 희열은 잊을 수가 없다. 그렇게 첫 입금을 시작으로 작년까지 그 돈은 나를 위해 썼다. 일주일에 한 번 스킨케어를 받고, 듣고 싶었던 강의를 신청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내가 쓰는 돈을 생활비에서 떼고 싶진 않았다.


그러다, 예상보다 벌이가 조금 나아지면서 올 1월부터는 일정 금액을 제외하곤 돈을 모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을 버는데도 그 달 벌어 그 달 다 써 버리고 나면 나중에 긴급하게 돈을 쓸 일이 생겼을 때 막막할 수도 있고 여하튼 비상금은 꼭 필요한 일이니깐. 그렇게 남편이 주는 월급과 내가 버는 돈을 분리하는 동시에 내가 버는 돈 또한 가족을 위한 돈, 나를 위한 돈, 저금으로 분리를 시켰다. 가족을 위한 돈은 남편 월급이 들어오는 통장으로 입금을 시켜 매달 쓰는 돈으로 나가면서 내가 버는 돈은 남편의 월급과 마찬가지로 어디론가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나를 위한 돈은 매달 얼마를 쓰겠다는 돈을 떼어서 입금을 시키고 거기서 필요할 때마다 꺼내 썼다. 마지막으로 이 둘을 떼고 남는 금액은 적금을 들었다.


적금은 예금과 달리 목돈을 일정 기간 예치하는 것이 아니라 매월 일정한 금액을 저축한다. 그런데, 나는 내가 버는 돈에서 가족을 위한 돈, 나를 위한 돈을 빼고 남는 금액을 저축하다 보니 금액을 고정시킬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고정 금액을 매월 입금하는 적금이 아닌 자유식 적금을 올 1월에 들었다. 금액이 정해지지 않은 자유식 적금이라 보니 이율도 낮은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자유식 적금을 선택했고, 적금이라면 기본 1년이지만 난 기간을 정할 때도 망설였다. 계속 일이 있을까? 만약, 이후에 번역일이 끊긴다거나 혹은 더 적은 금액을 벌어 저축할 금액이 아예 없으면 어떡하지? 미래는 누구도 모르는 일, 고민해서 답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냥 강행하고 도중에 못 넣으면 해약을 하든, 몇 달은 공백으로 가면 그만이다. 그래봐야 원금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고 이자율만 낮아질 뿐이니.


물론, 나는 안다. 돈을 모으려면 내 방식과는 반대로 해야 한다. 저축액을 먼저 고정시키고 나머지를 소비 금액으로 둬야 한다. 하지만, 나는 지금의 적은 벌이에서 저축보다는 가족이나 나를 더 우선순위게 두었다. 혹시나 추후에 더 많은 돈을 벌게 된다면 이 순서를 바꿀 것이다.






이 글을 쓰기 전, 정확히 이번주 월요일, 한 번역에이젼시와 문제가 발생했다. 나한테는 문제이지만 그 번역에이젼시 입장에서는 문제가 아닐 것이다. 나는 그 회사에 등록된 많고 많은 번역가 중 한 명에 지나지 않을 테니. 뭔가 불합리하고 억울한 면이 있었다. 하나하나 따져야 할까? 그냥 받아들일까? 고민했다. 결과는 따지지 않고 받아들이기로. 그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따져봤자 그 결과가 바뀔 거 같지가 않아서. 속이 쓰렸지만 간략하게 메일을 적어 보냈다. 


회사를 다닐 때도 이런 일이 있었다. 그런 경우, 나는 9할은 따지고, 1할은 침묵을 지킨다. 결과를 뒤집느냐 못 뒤집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내가 부당하다고 생각한 것은 반드시 그 누구도 아닌 내가 표현을 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다. 사실 그렇게 해서 상사나 회사로부터 미움을 받을 수 있지만 나를 해고시킬 순 없다. 하지만, 이 프리랜서의 세계에서, 그것도 이름 없는 수많은 프리랜서의 한 사람으로 내 생명은 너무나도 위태롭다. 물론, 내가 100% 잘한 일은 없다. 이번 일도 분명 나의 잘못이 있다. 더 꼼꼼했어야 했고 과정이야 어떻든 모든 건 결과로 보여주는 일이다. 프리랜서는 그냥 프리랜서가 아니다. 시장에서는 전문 프리랜서로 받아들이지 초보라고 봐주는 법은 없다.


결론은, 현재의 수순대로라면 자유식 적금은 당분간 불입이 힘들 것 같다. 이번 일로 인해서 다른 에이젼시를 몇 개 더 가지고 있는 것이 좋을 듯하여 몇 군데 지원을 했다. 서류에서 끝이 날지, 샘플테스트에서 떨어질지, 테스트를 통과 후 그 에이젼시에 등록이 될지 모르겠다. 서류를 넣은 한 에이젼시에서 샘플테스트와 번역료를 물어왔다. 샘플테스트에 응하기 전, 단가를 말했더니 함흥차사다. 높았나? 그럼 회사의 기본 요율을 제시하시지... 여하튼 당분간은 공부에 매진할 듯하다. 등록한 아카데미도 5월 개강. 다시 백수 생활이 시작되는 건가?


좌절도 희망도 금물. 현실을 직시하고 나아가자. 

당분간 자유식 적금은 중단하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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