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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야 Nov 25. 2022

긴 머리의 1형 당뇨 선배님!

[나와 같은 병을 가진 사람이 있을까?]

어느덧,

1형 당뇨병을 진단받고 병원에 입원한 지

2주가 넘었다. 짧은 2주 동안에 너무나 많은 일을 겪었다.  몸도 마음도 생각도 아직 추스를 시간이

필요했다.  


"쏘야야, 이제 슬슬 집에 가야지?"

'아... 난 아직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았는데...'

'내가 집에 가서 잘할 수 있을까?'


"교수님!"

"저 아직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하루에 혈당체크는 몇 번이나 해야 하는지..."

"인슐린 주사는 얼마 맞아야 하는지..."

"이제 저 혼자서 해야 한다는 게 너무 두려워요!"

"병동에서 1형 당뇨 환자는 저밖에 없는 것 같아요."


"우리 병원에서 1형 당뇨 환자는 한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적어!"

"전국에서 1형 당뇨를 진단받은 사람들 

다 세어보면 몇 천명밖에 안 될 거야."

'1형 당뇨가 그 정도로 유병인구가 적은 병이었어?'

'그 적은 확률에 내가 포함된다고...?'

교수님 말씀을 들으니 마음이 씁쓸해졌다.


"음..."

"쏘야야!"

"마침, 병원에 입원한 1형 당뇨 환자가 있는데

그 언니를 너에게 소개해주고 싶다만..."

"먼저, 그 친구한테 괜찮은지 물어보고

그 친구가 괜찮다고 하면 소개해줄게!"

"정말요?"

"저랑 같은 병을 가진 언니가 있다고요?"


아직 언니를 만나지 못했지만

나보다 먼저 1형 당뇨와 함께 살아온 언니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군만마를 얻은 것처럼

마음이 든든해졌다.


'제발...!'

'언니 꼭 만날 수 있게 해 주세요!'


병동 복도에 나와서 창 밖을 보고 있는데

가 다가와 내 어깨를 톡톡 쳤다.


"저기... 혹시, 네가 쏘야니?"

"제가 김쏘야 맞는데... 누구세요?"

"아! 네가 쏘야구나?"

"정민철 교수님 너 한번 만나보라고 부하셔서..."

"반가워, 나는 이수진이라고 해!"

"안... 안녕하세요!"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1형 당뇨병 선배님을

만났다. 까맣고 긴 생머리에 약간 창백한 얼굴을 한 작은 체구의 그녀. 나보다 나이가 열댓 살 가량 많아 보였다. 


"쏘야야, 여기서 계속 이야기하기는 좀 그렇고..."

"공원 가서 우리 이야기 좀 할까?"


두근두근...


'언니가 무슨 이야기를 할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공원에 도착했다.


"쏘야야, 정민철 교수님이 네 걱정 많이 하더라!"

"나는 합병증 검사하러 며칠만 입원한 건데, 교수님께서 너 좀 만나보라고 부탁하셔서 

나온 거야."


"합병증 검사요?"

'교수님께서 1형 당뇨병은 합병증 검사 5년 이후부터 한다고 하셨는데...'

"그럼, 언니는 1형 당뇨병을 진단받은 지 5년이 넘었어요?"

'언니가 갑자기 빙그레 웃는 걸까...?'


"쏘야야, 언니는 1형 당뇨를 두 살 때 진단받았어."

"올해가 33년 차야!"

"삼... 삼십삼 년이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1형 당뇨 진단을 받았네?'

기나긴 세월을 이 병과 보내왔을 수진 언니를 보니

그저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쏘야야 왜 밥을 안 먹니?"

"인슐린 주사만 잘 맞으면 문제없어!"

"1형 당뇨는 단 걸 먹어서 오는 병도 아니고,

운동을 안 해서 오는 병도 아니야!"

"1형 당뇨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계속 단걸 많이 먹어서 그렇다느니 운동을 안 해서 당뇨가 왔다고 하겠지만..."

"앞으로 네가 이 병을 잘 알아가면 그런 이야기를 들어도 스트레스 받지 않을 거야."


'언니는 나보나 훨씬 먼저 1형 당뇨에 대한 오해와 편견 때문에 상처를 많이 받았겠구나...'

'나도 수진 언니처럼 그런 이야기를 들어도

상처받거나 스트레스받지 않을 날이 올까...?'


언니가 천가방 속에서 검은색 수첩 하나를 꺼냈다.

"쏘야야, 이 수첩에 네가 어떤 음식을 얼마나 먹었는지, 인슐린 주사를 몇 단위 맞았는지

적으면 돼."

"혈당 여기에 적으면 당뇨 수첩보다는 고 싶은 마음이 생길 거야."


'그래, 병원에서 준 당뇨 수첩에 기는 싫었어.'

'한 장 넘길 때마다 당뇨이야기...'

'칸 너무 작아서 불편해!'

'아니... 그냥 쓰고 싶지 않아!'


수진 언니가 건네준 검은색 스프링 수첩 한 장을 넘겨보니 언니가 내게 해주고 싶은 말이

네 잎 클로버 그림과 함께 적혀있었다.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면 언젠가 이루고 싶은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


그날 진 언니는 소중한 자신의 시간을 내주어 나에게 희망과 용기를 선물해주었다.


"쏘야야!"

 앞으로 밥도 잘 먹고, 인슐린 주사도 잊지 말고

꼭 맞고, 언니가 준 수첩에 혈당 잘 적고!"

"건강하게 잘 지내!"


그렇게 진 언니와의 만남은 핸드폰 번호도 알지 못한 채 끝났고, 언니는 그날 저녁 퇴원을 했다.


진 언니라는 천사를 만나고 나니

마음속에 알 수 없는 힘과 용기가 생겼다.


'그래, 나도 수진 언니처럼 잘 살 수 있을 거야!'

'무서워도 다시 시작해보자!' 


너를 만나고 왜 나만 이 병에 걸렸는지

화도 나고 억울한 마음이 컸는데,

나보다 훨씬 먼저 이 병과 함께 살아온 수진 언니를 만나고 나니 세상에 나 혼자만 이 병을 겪는 게 아니라는 사실 힘들 때마다 큰 위로가 되었다.


'나도 언젠가는 수진 언니처럼 1형 당뇨로 힘든 누군가에게 위로를 건넬 수 있는 날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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