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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의 하루는 맑음 Sep 15. 2022

단편소설-이건 다 군대 때문이야(1)


나는 지금 퇴근 후 회사 앞 삼겹살 집으로 왔다. 삼겹살 집은 불타는 금요일을 보여주듯 자리는 만석이었고, 모두들 술과 함께 삼겹살을 먹으며 일주일의 스트레스를 풀고 있는 모습들이었다. 삼겹살 냄새는 내 코 끝에 진동을 했고, 앞에 앉아있는 지영이는 다 구워진 삼겹살을 배고팠다면서 요란을 떨며 먹고 있었다. 지영이는 만난 지 아직 1년 정도밖에 안된 사이로 소개팅으로 시작해 만나기 시작했다.


나보다 6살이나 어린 29살이지만 남을 잘 챙겨주고, 쾌활한 성격으로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능력이 있다. 앞에서 여전히 맛있게 먹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침이 꿀떡 삼켜지고 입맛이 돋았지만 내 젓가락은 삼겹살이 아닌 옆에 있는 연두부를 집어서 입으로 넣고 있었다.


-왜 고기 안 먹어?


지영이는 이해가 되지 않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물어봤고 나는 잠시 어정쩡한 표정을 지었다 풀고는 말했다.


-이제 먹을 거야


그렇게 말은 했지만 망설이고 있을 때, 계속 쳐다보는 지영이를 보고는 어쩔 수 없이 나는 삼겹살을 입속으로 넣었다. 먹는 순간 입안에는 삼겹살 기름이 순식간에 퍼졌고, 순간 이성을 잃고는 턱을 위아래로 열심히 씹기 시작했다.


그때 “윽!” 오른쪽 아래 어금니에 엄청난 고통이 몰려왔고 어금니뿐만 아니라 턱 전체가 아프기 시작해 먹다 말고 신음을 내뱉어 버렸다. 신음 소리에 지영이는


'왜? 혀 씹었어?' 물었고, 나는 어금니 안쪽 근육 신경 깊은 곳에서 오는 시리고 찌르는 듯한 고통에 대답도 하지 못하고 당장이라도 음식을 뱉고 싶었지만, 나를 걱정스럽게 쳐다보고 지영이의 모습에 애써 썩은 미소를 보이며 괜찮다고 말했다.


하지만 괜찮다고 말하는 순간에도 통증은 계속됐고, 이를 그냥 뽑아 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면서 결국 나는 식사 시간 내내 음식을 거의 먹지 못했고 애꿎은 물만 계속 벌컥벌컥 마실 뿐이었다. 그런 내 모습을 계속 지켜보던 지영이는 약간은 싸늘함이 묻어있는 말투로 묻기 시작했다.


-오빠. 아직 나한테 화났어?


그녀의 뜬금없는 물음에 얼른 집에 가서 쉬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던 중이었던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 화난 거 없어.

-그럼 식사 시간 내내 말도 안 하고, 표정도 계속 무표정에, 밥도 깨작깨작 먹지도 않고, 내 얘기는 듣지도 않았잖아!


따발총처럼 말을 하는 지영이의 말에 머리까지 지끈 거려 턱이 더 아픈 것 같았다. 오늘 만난 이유는 서로의 연락 문제로 싸우고 나서 화해의 기념으로 밥을 먹으러 나온 거였는데, 이가 너무 아파 계속 표정이 안 좋았었나 보다.


-지영아. 그게 아니라. 그렇게 느꼈다면 미안해. 오늘 몸이 좀 안 좋아서 그랬나 봐 미안”


이가 아프다고 하면 당장 병원에 가라고 잔소리를 할걸 알기에 나는 그냥 몸이 안 좋다고 말을 했다. 지영이는 화났던 눈꼬리를 내리고는 조심스럽게 말을 했다.


-그랬어? 진작 말을 하지. 나는 오빠가 아직도 나한테 화난 줄 알았어. 오랜만에 만나는 자리인데 계속 화를

내는 거 같아서 나도 좀 기분이 안 좋았어. 미안해. 얼른 집 가서 쉬자


라며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고, 나도 빨리 집으로 가서 진통제를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빠르게 주변을 정리하고는 삼겹살집에서 나와 집으로 가는 택시를 잡기 위해 차도 쪽으로 걸어갔다. 가면서 지영이는 어디가 아프냐? 얼마나 아프냐? 괜찮냐? 계속 질문을 했고, 나는 여전히 아픈 턱에 표정관리를 하면서 형식적인 대답만 해주면서 지영이가 빨리 집에 가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그렇게 지영이를 택시에 먼저 보내고 나서야 인상을 쓰며 빠르게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찬장에 있는 진통제 2알을 얼른 입에 넣고는 냉장고에 있는 물을 벌컥벌컥 마시며 얼른 고통이 사라지기를 바라면서 다급하게 약을 삼켰다.


하지만 순식간에 들어온 차디찬 물이 치아에 닿으면서 아까의 2~3배 정도의 고통이 턱에서 느껴졌고 나는 “윽” 신음을 흘리고 바로 자리에 주저앉아 통증이 가실 때까지 왼손을 턱에 짚으며 꽤 오랜 시간 약발이 돌 때까지 앉아 있었고 좀 괜찮아지고 나서야 내 상태를 보기 위해 화장실로 향했다.


거울에 있는 나는 식은땀으로 얼굴과 윗옷이 모두 젖어 있었고, 눈은 힘이 풀려있는 상태로 거울 속의 나를 보고 있었다. 눈을 돌려 아픈 턱 쪽으로 보니, 왼쪽 볼이 어린아이가 볼거리 걸린 것 마냥 빨갛게 부풀어 올라 꼭 누구한테 심하게 한 대 맞은 거 같았다.


아.. 이제는 치과를 가야겠지? 라며 한숨을 쥐며 중얼거렸다. 이가 아픈지 벌써 2달이 다 되어 가는데 진통제를 먹어가며 참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밥도 씹기가 힘들고 얼굴도 이모양이라 더 이상 참고 버틸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치과를 생각하는데 생각하자마자 등줄기에서는 땀이 미끄러지듯 하나 둘 흐르고, 손에도 땀으로 찐득해졌다. 어릴 때는 치과를 이렇게 까지 무서워하지 않았는데... 이게 다 망할 군대 때문이다.        

   

21살 때 나는 바로 군 입대를 하면서 꽤 괜찮은 군생활을 했고 2주 남은 전역날만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훈련을 받는데 어느 순간부터 신경 쓰이는 정도였던 어금니가 너무 아파 훈련을 받기 힘들 정도여서 참고 참다가 결국 군 병원으로 가서 검사를 받게 되었다. 검사 결과는 두 개 정도 충치가 있고, 오른쪽 위아래 있는 사랑니가 너무 엉키면서 자라나 신경을 계속 건드려 아픈 거라고 했다. 충치는 간단히 치료와 나중에 해도 되지만 사랑니는 신경을 계속 건들기 때문에 당장 발치와 치료를 해야 한다며 바로 그날 수술이 시작되고 나는 마취를 받았다. 마취를 받고 10분 정도 되니 턱에 감각이 없어지는 게 느껴지고 손으로 턱을 눌러보면서 신기해하고 있을 때 의사가 들어왔다. 의사는 오자마자 얼굴에 초록색 천으로 덮고 시작했다.


 천 때문에 아무것도 볼 수는 없었지만 소리와 어떤 철 막대기 같은 것들이 입안에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느낌은 느낄 수 있었다. 중간중간 “입 최대한 벌리세요”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입이 찢어질 듯 계속 벌렸고, 몇 번 기계 같은 것들이 왔다 갔다 하더니 ‘우두득 콰직’ 하고 이빨을 부수는 소리가 나기도 하고 칼로 째는 듯한 느낌도 나고 옆에서는 위이가 잉 위이가 잉 기계음이 계속 들렸다. 그렇게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끝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너무 입을 크게 벌린 탓에 턱이 빠질 것 같아 ’으.. 힘들어 ‘ 라며 버티고 있을 때 의사 선생님이 읊조리듯 중얼거렸다.


-생각보다 심각한데.. 좀 더 찢어야겠어


라며 분주히 움직였다. 의사 선생님의 혼잣말을 듣는 순간 걱정스러웠지만 설마 뭔 일 나겠어? 라며 애써 무시하고 빨리 치료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더 흐른 후 ”다 끝났습니다. “ 의사 선생님이 힘겨운 듯 말했고, 그렇게 길고 길었던 1시간의 치료가 끝나고 간호사는 주의사항을 설명해 줬다.


-지혈 때문에 솜 넣어드렸고요, 한동안은 말하지 마시고 2시간 정도 솜 물고 있어야 해요. 식사는 4시간 뒤부터 가능하고 약은 일주일치 챙겨드릴 테니까, 일주일 뒤에 실밥 빼러 오세요.


나는 1시간 동안 긴 수술로 진이 빠진 채 사무적이고 딱딱한 간호사 말을 들으며 생각보다 아프지 않아서 다행이다 잘 끝났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런 내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마취가 점점 깨면서 통증이 미친 듯이 났다. 사랑니가 있던 잇몸에 뜨거운 쇠 꼬챙이로 마구 쑤시는듯한 고통에 주어진 약보다 진통제를 더 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야지만 조금이나마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렇게 진통제를 먹으며 참으려고 했지만 전혀 나아질 생각을 안 하는 고통에 병원에 물어봤지만 원래 그렇고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는 소리와 함께 진통제만 처방해줄 뿐이었다. 그렇게 실밥을 풀고도 나는 통증 때문에 계속 진통제를 먹었어야 했고, 항상 고통을 달고 살면서 얼른 상처가 아물기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전역을 하게 되었고 여전히 계속되는 통증에 결국 개인 치과 병원에 가서 검사를 진행했다.


그 병원에서는 상태가 심각하다며 누가 치료했길래 이렇게 잇몸을 다 찢어 놓을 수 있냐고 물었고, 내가 군 병원에서 치료받았다고 했다. 대답을 들은 의사는 잠시 멈칫하더니 안쓰럽다는 듯이 한번 쳐다보고는 잇몸을 다 찢어 놓고 발치를 하면서 옆 치아까지 손상이 가서 병원 치료를 꽤 받아야 한다고 했다.


군대 병원에 가면 의료 실수가 많다고 얘기를 들었을 때 그래도 병원인데 설마 그럴까? 라며 웃으면서 넘겼는데 내가 이렇게 당할 줄은 몰랐다. 그렇게 나는 몇 달 동안 개인 치과에서 계속되는 고통을 느끼며,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하며 다녔다. 한동안의 치료 때문에 치과에 대한 공포 트라우마까지 모두 얻고 나서야 치료를 끝낼 수 있었다.


그때 이후부터 나는 35살인 지금까지 한 번도 치과를 가본 적이 없었다. 치과를 지나가기만 해도 그때의 기억이 생각나면서 힘들었고, 약간의 통증이 있을 때도 진통제로 버티며 치과를 가지 않기 위해 나름 관리도 열심히 했는데 다시 치과에 가야 한다니 절망스러웠다.    

 

치과를 가보려고 노력을 하기도 했었다. 예약까지 다 완료해놓고 가기만 하면 되는데, 시간이 다가올수록 마음은 불안해지고, 다리는 사시나무 떨리 듯 떨리고, 시침이 점점 예약시간에 다가올수록 식은땀이 나면서 옛날 기억이 계속 떠올려지면서 결국 예약을 취소하기를 몇 번이나 되었다.


그렇게 아파도 어린 여자 친구와 주변 사람들에게 말도 못 했다. 어린애도 아니고 35살 건장한 남자가 치과가 무서워서 못 간다는 게 얼마나 웃긴 일이고 쪽팔린 일인지 혼자 끙끙거리면서 버텼는데 이제는 도망칠 곳이 없었다. 나는 심호흡을 한번 내뱉고는 휴대폰을 열어 몇 번 예약을 해놓고 취소했던 치과에 전화해 가장 늦은 예약 시간인 5시에 예약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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