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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의 하루는 맑음 Nov 17. 2023

20대의 나는 나로 살기 위해 무던히 애썼다.

벗어나기 DAY 16

벗어나기 DAY

20대의 내 모습을 돌이켜 보면 정말 무던히 애쓰던 모습이 생각이 난다.


22살까지는 정말 우울증과 집에서 벗어나고 싶고, 스스로 눈을 감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어렸던 중학교 남동생이 있어 책임감 때문에 집을 나갈 수도 스스로 눈을 감을 수도 없었다.

그렇게 버텼다. 괜찮다고 괜찮다고 스스로 다독이면서 말이다.


그러다 동생이 고등학교를 올라간 23살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어 집을 나와 독립을 했다.

그냥 집을 나왔다는 생각이 나를 옥죄이는 쇠사슬에서 벗어난 기분이었다. 

돈 30만 원을 들고 대구로 향했다. 한 달에 4번 쉬면서 정말 쉬지 않고 일해서 살이 10kg이나 빠졌는데도

자유가 너무 행복했다. 버는 돈을 온전히 내가 쓸 수 있다는 것과 술 마시고 들어오는 아빠가 없는 집이 있다는 게 나를 너무 행복하게 했다. 


처음 한 달은 월급을 받기 전이라 휴대폰 소액결제를 통해 끼니를 해결했지만 그래도 행복했다.

그렇게 2년을 꼬박 일을 해서 보증금이 높고 월세가 저렴한 부산으로 와서 자취를 시작했다.

그게 25살이었다.


25살의 나이에 내가 있는 건 고등학교 졸업장뿐 자격증 하나 없는 어린 여자 아이였다.

그래도 그 나이에 돈이 꽤 있던 나는 여행을 했다.

처음은 내일로라는 전국 기차를 5일간 지정제를 내고 무제한으로 탈 수 있는 기차여행을 했다.


처음으로 집에서 해방된 자유가 아닌 정말 내 인생의 자유를 느끼게 해 준 5일이었다. 서울에서 눈을 보고 새해의 보신각 종을 느끼고, 처음으로 연애를 하고, 강원도 정동진을 가봤다. 그 5일이 내 인생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본 느낌이었다.

25년 동안 살아본 인생에서 가장 생동감이 넘치는 시기였다. 

그때부터 1년간 여행을 하고, 주짓수를 하면서 예민하고 가시 돋친 내 모습이 점점 밝아졌다.

그때부터였다. 내가 여행을 사랑하기 시작한 것이..


그렇게 26살이 되었다. 

20대의 후반을 달려가니 다시 불안해졌다. 생동감 넘치는 생활을 했지만, 미래가 불안해졌다.

그때부터 자격증을 따고, 알바를 하고, 회사를 다니고, 학점은행제를 통해 대학학위를 땄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28살의 나이가 됐다.


근데 나름 열심히 살고, 회사에 들어갈 스펙을 만들고 회사를 다녔지만 행복하지 않았다. 

이렇게 평생을 살아야 하는 걸까?라는 생각에 다시 우울증이 자연재해처럼 예보도 없이 나를 덮쳐왔다.

그렇게 참고 참던 어느 날 나는 회사에 사직 통보를 하고 그만두게 되었다.


그러곤 또다시 20대 초반의 우울처럼 집 밖으로 잘 나가지 않고, 사회생활도 하지 않는 약간의 은둔형 외톨이가 되고 있었다.

이때부터 처음으로 심리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심리상담은 많은 것을 바꿔 놓지 않았다. 그냥 달리는 차 안에 기름이 거의 다 썼는데, 상담을 하면 반칸이 채워진다. 하지만 계속 자동차는 달려야 하기에 또 기름이 없어지고, 반칸이 채워지고 가 반복되는 느낌이었다.

생명연장 같은 치료 같달까? 그래서 그런지 나에겐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조금은 더 달릴 수 있게 기름을 채워준 정도랄까?


그렇게 나는 중간중간 알바는 하면서 은둔형 외톨이로 지내며 생활비는 충당했지만 회사에 들어가지는 않았다.

소속감을 느끼고 싶었지만, 그 소속감이 답답하고 벗어나고 싶다는 이중적인 생각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내 안락한 방 안에서 머물렀다.

말 그대로 허송세월을 보냈다. 배가 고프기에 밥을 먹었고, 잠이 오기에 잠을 잤다. 잠이 안 올 때도 억지로 계속 잠을 잤다. 그럼 하루가 간다. 그렇게 이틀, 2주, 2달, 2년을 보냈다.


특히 나는 욕구가 별로 없다. 먹는 것에 대한 욕구, 돈에 대한 욕구, 유흥을 하고 싶은 욕구, 소속에 대한 욕구, 소비하고 싶은 욕구 모두 없다. 그래서인지 일을 할 필요성이 없었다. 돈이 필요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30살이 왔다.

19살의 내가 그토록 궁금하고, 희망찬 미래가 지금의 30살인 나이다. 이런 미래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그래서 회의감이 들어 나는 나에게 생동감을 주었던 여행을 한번 더 하기로 했다. 변하고 싶어서 말이다.

나에겐 나를 위한 노력이었다.

그렇게 40일간의 혼자 유럽으로 자유여행을 갔다. 

그런데 정말 슬프게도 여행이 나에게 어떠한 생동감, 느낌, 의지, 감동도 주지 못했다. 그저 유명한 에펠탑, 콜로세움등 사진이 현실이 된 느낌뿐이었다.

그때부터였다. 정말 내 인생이 위험하다고 느낀 것이, 내가 그나마 사랑한 여행이 이렇게 무미건조하면 나는 정말 이제 무엇을 보고 살아야 하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사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름만 거창하게 사업이라고 하지만 그냥 내 일을 해야지 생각했다.

회사의 소유물이 아닌,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항상 내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선뜻 시작하지 못했다. 의지도 없었고 노력할 마음도 없었다.

그런데 돈도 다 쓰고 빛까지 쓰니 나를 움직이게 했고, 어차피 망한 거 해보자고 생각한 것이다.


아직 아무런 결과도 내지 못했다. 아직은 하지만 그래도 집에 가만히 누워있는 나 자신보다 지금의 내 모습이 조금 더 좋다. 앞으로 더욱더 좋아지도록 노력할 거니까 더 좋아지지 않을까? 그럼 삶이 즐거워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조금이라도 움직이기 시작한다.


아직 나는 만 28살이다. 생일이 늦은 탓에 아직 2살이나 어리다. 그래서 지금도 나를 위해 무던히 애쓰고 있다. 19살에 기대한 내 30살은 아직 오지 않은 게 아닐까?라고 생각하며

조금 더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것이다.

만 30살이 되는 날에 내가 아직 글을 쓰고 있다면, 그래도 조금은 나은? 아니 멋있는 사람이 되어 지금의 글을 애틋하게 바라보고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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