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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쏭 Feb 28. 2019

낯선 이곳, 3살 꼬맹이와 발리 여행

우리가 여행을 할 수 있을까


아이와 여행은 그 자체로 즐겁기도 하지만, 별탈없이 돌아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성공으로 느껴진다. 하와이 여행이 그랬다. 해변에서 셋이 함께 노래를 부르는 꿈같은 시간과 아침마다 전부치고 설거지를 하는 지독한 현실이 완전히 믹스되어있었지만 우리는 여행에 성공했다. 아무도 아프지 않았고 추억만 한아름 안고 돌아왔으니 말이다. 특히, 아이와의 여행에서 가장 큰 허들이라는 비행은 이제 껌인듯 보였다. 무려 경유 비행기까지 타고 20시간을 공항 또는 비행기에 있었으니, 이제 아이와는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걸 보장받은 셈이었다.


하와이를 다녀온 봄이 지나고 가을이 되었다. 모든 직장인에게 축복받은 달력이 내 손에 들렸다. 휴가 1, 2개만 쓰면 10일 연속으로 쉴 수 있는 연휴. 몇 년 전부터 이 날이 오기만을 기다려왔더랬다. 여러 여행지를  타진해보았다. 왠지 연휴가 길어서 최대한 멀리가보고 싶었는데 또 한편으로는 아직 30개월이 갓 넘은 아이와 모험을 할 수는 없었다. 우리는 발리로 낙점을 보았다. 지금 돌아보면 나는 조금 자만했던 것 같다. 아무것도 모르는 여행지를 그냥 가보고 싶다는 이유로 우리는 잘 해낼 수 있다는 이유로 결정하다니. 나 홀로 여행이라면 그러는 것이 마땅했지만 나에겐 아이가 있었다. 하와이, 괌, 제주도는 모두 내가 이전에 한번은 다녀와 익숙한 곳이었다면 발리는 생경했다.  우리의 발리 여행(모험)이 시작이었다.



우리가 여행을 갈 수 있을까


얌전히 가을의 발리 여행을 준비하던 초가을의 어느 날, 우리 하마의 어린이집 등하원을 책임져주시는 이모님이 나에게 문자를 보냈다. 사정이 생겨서 우리 집에 더 이상 올 수 없겠다고 말이다. 그 사정으로 들은 것이 허리가 아팠던가 가족문제였던가 기억이 안나지만, 이모님이 말한 그 사정이라는 것은 우리 집에 오지 않을 이유를 만들기 위해 급조된 문제라는 걸 알았다. 이모님은 부모님의 지인의 지인이었다. 생활이 안정된 분은 아이를 언제나 여유로운 상태에서 돌볼 수 있지만 조금이라도 마음에 안드는 일이 생기면 큰 미련 없이 떠나기 쉽다는 것을 주변에서 그렇게 보고도, 나는 화목한 가족과 안정된 생활을 하는 이모님을 택했다. 오래 계셔주십사 한없이 잘해드려서 어느 날 부터는 누가 고용인이고 누가 고용자인지 모르겠는 상태가 되었지만 오이에 소금을 치지 말아달라 우리 하마는 생오이도 잘 먹는다는 그 말이 그 날 따라 아무것도 모르는 애엄마의 훈계로 느껴진 건지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는데 잘못한게 있다면 너무 굽신거리며 잘해드린 것 뿐인데  그만 둔다는 것이다. 즉, 생활이 안정된 분은 쉽게 자리를 뜰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 나를 빗겨가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워킹맘의 3대복 중 1대 복이라는 이모님복은 나에게 없었다. 모든 것을 다 떠나 마음을 다해 섬겼던 분이기 때문에 배신을 당한  했다. 다시 이모님 면접을 봐야했고 이제 마음이 급했다. 발리 여행 날짜가 다가오고 있었지만 그토록 기다린 여행은 이제 내 안중에 없었다. 나는 시터넷 단디 헬퍼 등을 뒤지며 조건이 맞아보이는 이모님들께 연락을 하거나 연락을 기다려야했다. 모르는 번호들에 우리 아이를 돌봐주는 조건으로 내가 제시할 수 있는 것들을 정성스레 적어 보내며 연락이 오길 기다리며 한편으로는 오지 않기를 바라며 자괴감이 들었다. 시터를 구하다보면 새로운 그 사람이 혹시 아이에게 해코지는 하지 않을지 아이가 나도 모르게 마음 쓸쓸할 일이 있지는 않을지하는 그 걱정들을 눈 앞에 마주하게된다. 남(시터)에게 아이를 맡겨본 사람은 이 마음을 알 것이다. 이렇게까지 알 수 없는 사람들에게 내 아이를 맡기고 일을 해야 하는걸까 생각하며 무너지는 마음을 겨우 붙잡았다. 당장 빠른 답으로 보이는 나의 퇴직이 최종적으로는 아무런 문제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다른 해결책이 없어  결국엔 정답이 아닐 그 선택지를 집어들수 밖에 없는 상황이 올까봐 두려웠다.  당장 사람을 구할 수 없었기에, 오이에 소금을 치지 않는 다는 이유로 기분 나빠하는 그 분에게 다음 사람이 구해질때까지만 기다려달라고 읍소해야했다. 회사에서는 화장실로 미처 달려갈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이 빠르게 차오르는 일이 꽤 자주 왔다. 자리에서 몰래 울었다 (몰래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 이제 이 마당에 발리가 무슨 소용인가.


그러는 때에 발리 아궁산의 용암이 끓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여행 카페에 간간히 글이 올라오더니 점점 화산 폭발은 기정사실이며 언제 폭발하느냐 시간 문제일 뿐이고 1달내에 폭발할 확률이 90프로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취소했다. 우리 일정은 아궁산에서는 많이 떨어져있었지만 충분히 걱정될만한 상황이었다. 상황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오랜 시간 기대했던 여행을 어떻게든 추진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나쁜일은 한꺼번에 몰려온다. 상대가 준비되었는지 여부는 봐주지 않는다.


하지만 결국엔 모든 상황이 발리를 가지 말아야했을 상황이었음에도 우리는 발리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모님 문제로 마음이 너무 상하고 얇아져서 여행을 엎는다는 결단을 내릴 에너지가 우리에겐 없었고, 어차피 한국은 휴일이었고 무엇보다 쉼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전날 밤 영혼없이 짐을 꾸렸다. 자연재해가 발생할 때 최대로 커버해준다는 보험에 가입하고 폭발했을 경우 공항이 폐쇄될 수 있다는 가정하에 체류하기 위한 호텔도 추가 예약하고 화산재 방지용 마스크를 왕창사서 가방에 넣었다. 이렇게까찌 해서 가야하나 싶었지만 결국 떠났다. 어찌어찌 비행기에 오르고 나니 어쨌든 현실을 떠나오는 것에 감사했다. 예약해둔 발리의 리조트, 수영장, 미리 알아두었던 맛집들을 떠올리며 여행감을 애써 예열했다. 리의 마음 고생을 알 턱이 없는 우리집 세살배기는 흥에 겨워 알 수 없는 노래를 부르며 공항을 뛰어다녔다. 여행을 떠나는데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처음 발리행을 결정했을 땐 그저 휴양일 뿐이었지만 이제는 현실 탈출의 명을 가지고 있었다.




낯선 이 곳, 발리 도착

자정이 넘은 시간, 덴파사르 공항



새벽 1시경, 비행기는 이제 7시간 비행쯤은 거뜬한 하마와 우리를 덴파사르 공항에 내려주었다. 내리자마자 열대 지역 특유의 습도가 확 몰려들어왔다. 이미그레이션을 나오자마자 바로 야외였다. 이 곳이 바로 동서양 막론하고 가장 사랑받는 도시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듯 공항은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사원스러운 구조물 앞에는 그들을 픽업해가려는 여행사 사람들, 각종 호객 활동을 하는 현지인들이 뒤엉켜 인파를 이루었다. 어두운 밤기운, 습한 공기, 팔짱을 끼고 관광객을 바라보는 현지인들, 발리의 첫인상이었다. 밀려들어오는 낯선 감정에 적잖히 당황했다. 비행기에 내릴때만해도 기대감이 공항을 뚫고 나갈 정도였는데 지금 느끼는 감정은 그것과 대척점에 있었다. 남편이 유심칩을 사러 간 사이 나도 모르게 아이 손을 꽉 잡았다. 그리고 그 순간, 여행을 준비해야할 기간에 현실에 치여있느라 미처 생각지 못했던 사실이 불현듯 떠올랐다. 나조차도 그간 유럽, 미국, 일본, 두바이 처럼 도시화된 여행지나 좀 더 자본이 많이 투입된 여행지를 다녔던 터라 이런 분위기는 철저하게 생소하다는 것. 아찔했다.

아이도 내 손을 붙잡으며 흔들리는 눈으로 여기가 어디인지 파악하고 있었다. 덴파사르 공항의 분위기는 다른 공항의 흔한 설렘의 공기와는 결이 달랐다. 분위기 만으로도 명상을 하러 온 것이 분명해 보이는 결연한 표정의 배낭객들, 지나치게 자유로운 복장의 사람들, 인도네시아 옷을 입고 바삐 걸어가는 호주 사람들과 발리땅의 부조화가 가득했다. 발리에 이제 막 발을 들이밀었을 뿐인데 극단적으로 이국적이고 복잡한 가운데 묘한 기분이 몸을 휘감았다. 이런 생각치도 못한 감정이라니.

3살 꼬맹이와 함께 나조차도 생경한 이 곳에 떨어졌다. 지금 내가 어떤 상황에서 왔는데. 여행지에서까지 힘들어버리면 무너질지도 몰라. 괜찮을까 이번 여행? 내 안의 낯선 두려움이 올라왔다. 아이와 3번째 여행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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